인생 의미 포트폴리오

결혼, 출산 필수보험인가 고위험 상품인가

by 장동혁

1. 없으면 불안했던 청약저축


한때, 내 집 마련을 꿈꾸던 서민에게 꼭 있어야 할 게 있었다.

청약통장. 그거 없으면 인생 큰일 나는 줄 알았다.

“청약통장 없어?”는 요즘으로 치면 “미장 안 해?”와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분양가 상승, 미분양 속출, 당첨 확률 하락.

시장이 급변하며,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 돼버렸다.

“점수가 65점인데, 경쟁자는 생후 3개월...”

알토란 같은 점수가 신생아 특공에 밀렸다는 웃픈 얘기도 들려온다.


이와 비슷한 곡선을 그리는 것이 있다.

결혼제도다.


어느 트로트 가사처럼 “결혼은 선택!”이란 말은,

과거, “밥 안 먹겠다”는 투정만큼이나 현실감 없었다.


무엇보다 여성에게 결혼은 생존의 조건이었다.

무엇보다 ‘안전’의 문제였다.


뭔 소리냐 싶겠지만,

조선시대만 해도 호랑이 잡는 군대인 '착호군'과 '착호갑사'가 활동했다.

들끓는 도적과 호환의 위험 속에서 여성 혼자 살아간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거미줄처럼 촘촘한 CCTV 덕에, 바보 아닌 이상 남의 것에 손댈 일 없는 요즘과는 다르다.


“짚신도 짝이 있다”는 말도, 그런 시대적 배경에서 비롯되었다.



2. 결혼과 출산이란 상품의 이율은?


산업화 초기, 이자가 연 15%를 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만 해도 적금 넣고 3년만 기다리면, ‘전 가족 소고기 외식에다 컬러 티비 장만'은 기본이었다. 그 시절 어르신은 말한다

“그땐 돈이 알아서 컸지, 암...”


결혼도 그와 다르지 않았다.

가정을 이뤄, 둘의 노동력 합치고, 경조사 챙기고 하다 보면,

번듯한 집 한 채와 '포니' 자동차 그리고 든든한 자식이 버티고 있었다.

성실하다면, 가정이 자연스럽게 굴러가는 시스템, 꽤 효율 높은 생존 전략이었다.



3. 그러나 투자환경이 변했다


이제는 예금하면 손해고, 청약은 꿈속 이야기다.

결혼 또한 ‘고 위험, 고 손실 상품’처럼 돼버렸다.

이건 거의 감정, 자원, 시간 모두를 ‘몰빵’ 해야 하는 풀옵션 패키지다.

예전처럼 “하면 무조건 안정”은커녕, 관계 유지 자체가 감정적·경제적 리스크가 될 수도 있다.

결혼하면 인생이 핀다던 사람들은, 3년마다 이사하고 5년마다 상담실을 찾는다.



4. 자녀는 더 이상 노후 대비책이 아니다


과거, 자녀는 ‘수익률’ 높은 노후보험이었다.


갓난아이는 집안에 웃음꽃을 피우고,

팔 힘이 좀 생기면 농사일에 동원됐다.

소 꼴 먹이고, 땔감 준비는 기본이고,

장정이 되면 방범, 부모 부양, 사후 제사까지 책임졌다.


지금은 어떤가.

'무이자 무상환 장기투자'다.


아침마다 아이 눈치 보고,

학원 라이딩에, 스마트폰과 합세라도 하면 무적이 따로 없다.

눈에 넣어도 아프진 않던 3년, 이미 곗돈은 받아 챙겼다.


"그래서, 어쩌라고!"라는 말 나오기 시작하면,

리모컨 가져오라는 말 붙이기도 힘들다.

알바해서 용돈이라도 주면, 그날은 기념일이다.


다 자라, 불평이라도 듣지 않으면 다행이다.

주위에서 캥거루족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교육비, 주거지원, 혼수까지 부담은 커졌고,

수익률은 형편없이 낮아졌다.


여기저기 파란불이다.



5. 왜 결혼과 출산을 미루는가


그건 단순히 개인이 이기적이어서가 아니다.

시대가 변했고, 관계의 의미, 구조, 효율이 달라져서다.

이율이 낮은 상품에 투자하지 않듯,

위험 부담이 큰 관계에 신중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본능이다.


대신, 반려견은 어떤가.

말 다 들어주고, 나를 우주로 바라본다.

산책 가자는 한 마디에 꼬리를 흔들고,

그러면서도 불평 한마디 없다.

밥 준다고 고맙게 쳐다보는 생명체가 존재한다는 건, 거의 기적이다.



6. 시대가 바뀌면 전략도 바뀌어야 한다


한때 예금은 신의 한 수였고,

청약통장은 집 장만을 위한 유용한 무기였으며,

결혼과 자녀는 생존을 위한 기본 전략이었다.


하지만 금융 환경과 투자 전략이 바뀌듯,

가족 구조와 사회 환경이 바뀌었으니, 삶의 전략도 조정되어야 한다.


그 변화는 불행도 퇴보가 아니다.

다양하고 복잡해진 생존 방식 속에서,

삶을 다시 설계하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움직임이다.

그리고 전략 못지않게 철학도 중요하다.


못나긴 했어도, 어쨌든 나는 아들을 낳았어
종년에 지나지 않았어도 내 집에는 아들이 있어
-<대지>, 펄벅


남편의 첩질로 온갖 수모를 당한 왕룽의 처 오란이, 숨을 거두며 남긴 말이다. 한 많은 삶을 마감하면서도 대를 이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안심하며 눈을 감는다. 슬하의 아들이 인생의 8할을 의미로 채우던 시대였다.


여전히 가정은 가장 오래되고, 안전한 의미 상품이다. 단란한 가정은 다음 새대로 이어지며 의미가 복리로 불어난다. 이말은 반대로 자녀에게까지 손실을 넘겨줄 수도 있다는 뜻이다.

과거처럼 가정을 유지하는 것만으로 인생의미가 쌓이는 시대는 지났다. 포트폴리오도 다양해졌다.

잘 살피고, 잘 관리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다간, 맘 고생 끝에 손실과 해지까지 고려해야 한다.


내 삶의 의미를 채워줄 인생의 포트폴리오

다시 점검할 때다. 가족, 일, 신, 여행, 자유연애, 친구, 정신 활동, 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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