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오 이스구로의 <클라라와 태양>을 읽고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 『클라라와 태양』은 우리에게 서늘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 인간이 신의 걸작품이 아니라 물질적 구성과 전기 신호의 집합체에 불과하다면, 과연 인공지능(AI)과 인간을 구별 짓는 최후의 보루는 무엇인가? 우리는 오랫동안 '이성'과 '합리성'을 인간만이 가진 우월함의 근거로 내세워왔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완벽한 논리 체계를 갖춘 AI의 등장은 우리로 하여금 인간의 '결함'과 '비합리성'에 주목하게 만든다.
물질적 존재로서의 인간과 정신의 창발
인간을 생물화학적으로 환원하면 원자, 분자, 세포, 기관(뇌)으로 이어지는 물질의 결합체다. 그 재료가 되는 분자 안에는 정신이나 생명력이 존재하지 않는다. 철학적 창발주의(Emergentism) 관점에서 볼 때, 정신은 체계의 복잡성이 일정 수준을 넘어설 때 우연히 발생하는 현상이다. 만약 AI의 회로가 인간의 신경망만큼 정교해진다면 그들 역시 '기계적 정신'을 가졌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이미 그들은 간의 바람이나 의도를 간파하고 한 겹 둘러서 반응할 줄 안다. 여기서 우리는 혼란에 빠진다. 지능과 논리에서 AI가 인간을 능가한다면, 인간은 과연 무엇으로 자신의 특별함과 기득권을 주장할 수 있는가?
열등함이 만드는 인간적 특이점
그 답은 오히려 인간의 '열등한 면'에 있을지도 모른다. 인간은 모순적이고, 부조리하며, 종종 비합리적인 선택을 내린다. AI에게는 제거해야 할 대는상에 불과한 오류가, 인간에게 서사(Narrative)가 된다.
질 것이 뻔한 싸움에 뛰어드는 용기, 파멸을 예감하면서도 빠져드는 사랑,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예술적 영감은 모두 인간의 비합리성에서 기인한다. 이러한 '인간의 피에 흐르는 특성'은 효율성의 관점에서는 열등함일지 모르나, 존재의 관점에서는 대체 불가능한 고유성이다.
조시를 복제한 클라라가 조시가 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도 인간의 비합리성 안에서만 해결된다. 물리적으로는 동일하지만 내가 아는 조시가 아니라는. 이는 마치 똑같은 인형을 두고도 원래 내 것이 아니라며 때를 쓰는 아이의 생각과 별반 다르지 않다.
클라라의 기도: 세상에서 가장 비합리적인 신념, 종교
소설 속 클라라가 보여준 가장 인간적인 모습은 '태양을 향한 맹목적인 신앙'이었다. 과학적으로 태양은 단순한 에너지원이지만, 클라라는 태양을 자비로운 인격신으로 설정하고 자신의 부품을 훼손해 가며 조시의 회복을 기도한다.
이는 AI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수준의 인간 학습이 아닐까. 합리적인 확률을 무시하고 '기적'이라는 비논리적 변수를 도입하는 것, 즉 '지독한 비합리성'을 통해 사랑을 증명하는 것은 인간의 종교적·철학적 행태를 그대로 투영한다. 클라라는 가장 비합리적인 파괴를 통해 역설적으로 가장 숭고한 정신 작용에 근접한다.
그동안 인간의 이성은 세상 모든 비합리적인 것들을 해부하고 해체함으로써, 경외감이나 숭고함 같은 인간 고유의 감정까지 잃게 되었다. 섬뜩한 AI시대의 도래도 인간이 자초한 것이나 다름없다.
의미를 부여하는 주체로서의 기득권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지위를 유지할 수 있는 기득권은 이제 '우월한 지능'이 아니라 '가치를 부여하는 권한'에서 찾아야 한다. AI가 수억 개의 문장을 생성할지라도, 그 문장에 눈물 흘리고 의미를 입힘으로써 예술적 가치를 불어넣는 주체는 인간이다. 이는 인간의 뜀박질 속도를 능가하는 동물이나 기계가 존재하지만, 인간만의 축제인 올림픽이 유지 되듯.
영혼이라는 개념이 인간과 사물을 구별하기 위해 만든 인위적 장치였다면, 이제 그 영혼은 '상처 입을 가능성(Vulnerability)'을 공유하는 존재들 사이의 연대로 재정의 되어야 한다. 고통을 느끼고, 죽음을 인지하며, 모순 속에서도 희망을 품는 불완전함이야말로 AI가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인간만의 성역이다.
결핍이 구원하는 인간다움
향상(development)되지 못한 인간이 사회의 비주류로 전락해 버리는 소설 속 세상처럼, 인간의 약점과 결점이 도태되어야 하는 요소로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것은 첨예한 효율성의 시대에 우리가 붙들어야 할 유일한 경쟁력이다. 완벽한 정답보다 서툰 진심이, 매끄러운 논리보다 투박한 눈물이 더 인간적인 이유는 그것이 오직 유한하고 결함 있는 존재만이 내놓을 수 있는 희귀한 가치이기 때문이다.
상식과 정보를 많이 보유한 사람이 만물 박사로 통하며 인기를 독차지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이젠 더 이상 똑똑해짐으로써 인간다움을 증명할 수 없다. 대신, 얼마나 더 깊이 고뇌하고, 비합리적으로 사랑하며, 자신의 모순을 껴안을 수 있는가를 통해 비로소 '인간'으로 남을 수 있을 것이다.
클라라가 세상에서 가장 비합리적인 신념인 종교의 힘을 통해 자신을 선택해 준 주인, 조시를 구원했던 것처럼. 그리고 야적장 한켠에서 잠시 인연을 맺었던 매니저와의 우연한 만남에도 그저 행복해했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