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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동혁 Feb 10. 2023

관계의 신호등

분노 그리고 서운함에 관하여

  갈등은 생물과도 같다.

  두렵다고 피하거나 방치하면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힘을 키운다. 마치 수증기를 먹어치우며 북상하는 거센 태풍처럼. 사람이 갈등을 만들지만 나중에 가서는 갈등이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말도 다 거기서 나왔다.


  사소한 긴장에서 출발한 갈등은 오해와 불신, 추측이 더해지며 되돌릴 수 없는 상태로 고조되기도 한다. 그 끝은 상대를 제거하는 데 죽음까지 불사하는 공멸의 단계다. 지금도 전국 법원에서는 상대의 치명적 약점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전투가 숱하게 벌어지고 있다. 흥미로운 건 이들도 한 때는 형님동생 하며 서로 밥값 내겠다고 몸싸움을 벌이던 관계였다는 점이다.


  이처럼 한 때 서로 어울리며 의지하던 상대를 내 삶에서 제거해야 할 적으로 돌리기도 하는 갈등은 상대가 내 관심사(interest)를 침해했다는 생각으로부터 시작된다. 나에게 의미가 있고 중요한 걸 상대가 의도적으로 위반하거나 침해했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 불쑥 등장하는 불청객이 감정이다. 감정은 갈등의 시그니처와도 같다.


  그렇다면 갈등 상황에서 주로 나타나는 감정에는 무엇일까. ‘분노'와 '서운함'이 대표적이다. 둘 중 무엇이 더 큰지에 따라 관계나 갈등의 성격도 파악할 수 있다.


  분노가 다양한 관계에서 보편적으로 일어나는 감정이라면 서운함은 좀 더 특별하고 의미 있는 관계에서 나타난다. 상대에 대한 호감과 의존하려는 맘이 커서 독점하고픈 마음도 큰 그런 관계 말이다. 대표적인 게 연인이나 가족이다. 상대를 위하는 마음이 큰 만큼 기대와 인정받고 싶은 욕구도 클 수밖에.


  분노가 순간 타오르고 마는 화약이라면 서운함은 스멀스멀 올라와 이성을 마비시키는 연탄가스와 같다. 순간적으로 발산하는 분노가 알아채가 쉬운 감정인 반면 서운함은 알아차리기 쉽지 않다. 상대가 전혀 예상 못할 이유로 인해 생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서운한 마음을 상대에게 호소하기도 쉽지 않다. 괜히 속 좁은 사람 되고 싶지 않아서이다. 상대가 알아채고 달래주기 전에는 쉽게 사그라들지도 않는다. 그러다 보니 엉뚱한 데 화를 풀기도 한다. 그걸 알아차리지 못한 상대가 얄미워 서운함이 강해지기도 한다. 갈등은 이런 감정들을 먹고 자란다. 갈등이 자라며 관계가 소원해지고 소통 기회도 줄어든다.


  그런데 발화점이 분명한 분노가 문제 핵심에 제대로 접근하게 하여 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기도 하는 반면 서운함은 문제 해결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서운함에서 시작한 갈등으로 인해 수년간 절친으로 지내다 갑자기 절연하는 친구도 봤다. 서로를 위하는 마음에 변함이 없다는 걸 확인만 했어도 될 일인데 관계가 소원해지고 소통도 줄어들다 보니 그럴 기회마저 갖지 못했던 것이다.


  함께 살아가다 보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감정은 관계 점검이 필요하다는 걸 알려주는 신호다. 감정의 신호등은 불쾌한 상황에 대한 인식에서 행동으로 이어지는 사이 건널목에 위치해 있다. 그 신호를 무시한 패 바로 행동에 들어갔다간 서로 간에 보복이 반복되는 악순환에 빠질 수도 있다.


  상황을 인식하게 되면서 발생하는 감정은 본능적 이어 통제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내가 어떻게 행동할지는 통제 가능한 영역이다. 갈등이 고조되게 만드는 기폭제와도 같은 언행을 할 수도 있고, 비 온 뒤 땅이 굳듯 오해를 풀고 좀 더 가까워지게 만드는 언행을 선택할 수도 있다.


  관계의 신호등은 일단 멈춤이다. 관계에 불이 들어왔다면 일단 숨을 한번 크게 들이쉬자. 감정과 행동 사이에 멈춤 공간을 만들라는 말이다. 그리고는 지금 내가 사실이라고 확신하는 게 진짜인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나를 불쾌하게 만든 상대에게 그럴 의도가 있었는지 살펴보자. 가장 확실한 방법은 상대에게 묻는 것이다.


  대개 상대는 별생각 없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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