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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동혁 Feb 11. 2023

위험한 윤무

갈등의 동력 악순환에 관하여

  무언가의 규모나 구조가 급속도로 커질 때 우리는 ‘눈덩이처럼 불어난다'라고 말한다. 겨울철 눈사람 만들기를 떠올리면 쉽게 와닿는다. 두 손으로 꼭꼭 쥐어 만든 눈덩이를 눈밭에서 데굴데굴 굴리다 보면 순식간에 커져 있었다. 일일이 손으로 붙여 키우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이다.


  그런데 빙빙 돌면서 불길하게 그리고 파괴적으로 커지는 게 또 있다. 갈등(葛藤)이다. 사소한 것에서 시작된 갈등은 감정에 휩싸여 폭력적이고 강압적인 언행을 주고받다 보면 어느새 눈덩이처럼 커져 있다. 이를 갈등의 악순환(vicious circle)이라고 한다. 맵고 날 선 언행이 그냥 더해지는 게 아니고 뭉쳐지고 굴려져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것이다.

  

  어느 순간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걸 느껴 멈추려 하지만 쉽지 않다. 마치 엘리베이터에 발을 잘못 디딘 순간 얼른 내리지 않으면 의지와 상관없이 가서는 안 되는 방향으로 가는 것과도 같다.


  눈덩이가 그렇듯 갈등의 악순환도 둥근 원을 이루고 있다. '인식'과 '감정', '행동', '반복'이 연결되어 순환하는 구조다.


  이 위험한 윤무(輪舞)는 사건을 ‘인지'하면서 시작된다. 내 의견을 구하지도 않고 회식장소를 정했다든지, 절친이라고 생각했던 동료가 승진턱에서 나를 뺐다든지 아니면 여행을 다녀온 직원이 다른 직원에게만 기념품을 사다 주었다 던 지 등 등.

  

  그런 불쾌하고 위협적인 상황을 인지한 순간 '감정'이 따라온다. 긴장되고 무시당한 것 같아 분하기도 하다. 우리 관계가 그 정도밖에 안 되었나 하는 생각에 서운함도 올라온다. 쿨하게 넘기고 관계를 재설정하기도 하지만 그렇지 못하고 거기에 집착할 때도 있다. 예민해져 감각은 상대 행동 하나하나를 모니터링한다. 층간 소음을 느낀 순간부터 귀가 열리는 것과 같다.


  그렇게 감정에 사로잡히다 보면 평소와 다른 '행동'이 나오기가 쉽다. 상대 눈을 잘 마주치지 않는다든지 아니면 다음 회식 장소 정할 때 상대에게 소심한 복수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언행이 왠지 평소와 다르다는 걸 ‘인식’한 상대도 불편한 ‘감정’을 느낄 것이다. 처음엔 왜 이러지 하다가도 그런 행동이 지속되면 상대 ‘행동’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내가 지나온 과정을 상대도 그대로 반복하는 것이다. 악순환이다.


  그렇게 서로 맞물린 채 춤을 추다 보면 갈등은 고조된다. 악순환이 갈등의 동력이 되는 것이다. 한번 맞물려 돌아가기 시작한 엔진은 쉽게 과열되고 멈추기 힘들다.


  원형 톱날과도 같은 악순환이 회전하면서 서로의 상처는 증가한다. 그리고 갈등 초기에는 상대의 행동을 평가하지만 나중에는 상대 자체를 평가하게 된다. 상대는 원래 문제가 있는 사람이고 내가 그러는 건 상대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갈수록 시각도 좁아져 상대는 나쁜 사람, 나는 좋은 사람이라는 이분법에 빠진다. 그리고 분노와 두려움, 불신이 커진다. 그러다 보면 서로 우려하던 일이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걸 자각하게 된다. 이때쯤 그만 멈추고 싶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이 단계까지 오면 갈등 당사자 스스로 악순환의 굴레에서 빠져나오기 쉽지 않다.


  눈군가는 파국으로 향하는 슬픈 춤을 멈춰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고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상대의 공격을 되돌려 주기보다는, 상대로 인해 내가 경험한 것들을 상대가 알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한두 번으로는 부족할 수도 있다. 인내도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악순환의 톱날에 심각한 상처를 입어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관계가 악화될 수도 있다.


  갈등을 없이 살아갈 수는 없다. 갈등 없는 세상이 좋을 것 같지만 그런 세상은 너무도 피상적일 것이다. 갈등은 경험하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경험하느냐가 중요하다. 잘만 해결할 수 있다면 상대에 대해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고, 서로가 서로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알 수 있으며 관계를 좀 더 건강한 방향으로 재설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비 온 뒤 땅이 굳듯 관계가 더욱 깊고 풍성해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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