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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동혁 Feb 12. 2023

합리성 독점하지 않기

우리 생각보다 다양한 합리성에 관하여

석사과정 때의 일이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었고, 거리에서는 매혹적인 중저음의 '난... 행복해'로 시작하는 가요가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만들었다. 연구실에 들어서면 한쪽 구석에 자리 잡고 있는 라꾸라꾸 침대가 그렇지 않아도 썰렁한 공간을 더욱 삭막하게 만들었다.


  그때 갑자기 연구실 창에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구실 분위기는 물론이고 밖에서 보는 이들 마음도 따뜻해질 것 같았다.


  내 참신한 아이디어에 다들 박수를 쳤다. 단 한 명만 빼고, 그것도 여자 후배가. 의외였다. 나쁜 의미로 심쿵했고, 그런 후배가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 후배는 굳이 왜 그런데 돈을 쓰냐는 것이었다. 나는 겨울 분위기를 따뜻하게 내보자는 데 그까짓 돈 몇 푼이 아까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그 후배를 제외하고 돈을 걷어 창문을 작은 전구들로 장식했다.


  깜깜한 저녁 연구실을 향할 때마다 깜박이는 전구들이 지친 마음을 달래주곤 했다. 당시만 해도 지인들로부터 받은 카드를 벽에 주욱 걸어 놓고 시즌을 즐기던 낭만이 있던 시대였다. 그런데 날마다 반짝이는 트리를 보는 후배의 심정은 어땠을까. 나와 같이 설렜을까 아니면 불편했을까. 후배 성격상 별생각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당시 그 후배와 나는 서로 상대가 합리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 후배는 굳이 몇 주 걸어놓고 보자고 나중에 가서 처치하기도 곤란한 데 돈을 쓰기 싫다는 거였고, 나는 적은 돈으로 몇 주간 연구실 분위기 좋아질 텐데 굳이 그걸 반대하는 게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비합리적이라 여겼다.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Max Weber)는 우리가 합리적이란 말을 너무 좁은 의미로 사용하곤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다 보니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답답해하며 비합리적인 사람이라고 성급하게 결론 내린다.


  그런데 합리적이란 말의 의미는 생각보다 다양하다. 당시 후배는 현실적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논리적으로 행동하는 도구적(instrumnetal) 합리성을 사용했다면, 나는 사람 간 분위기나 관계에 중점을 둔 정감적(affective) 합리성과 이전 세대가 물려준 방향키를 순순히 받아들이는 전통적(traditional) 합리성을 내세웠다. 물론 두 사람 모두에게는 결과에 상관없이 더 높은 가치(value)를 따르는 가치 합리성이 깔려 있었다. 그때 우리는 나와 다른 합리성을 받아들이기에는 가지고 있는 자원이 부족했다. 그렇게 우리는 합리적이라는 말의 의미를 서로 독점하려 했다.


  그런데 세상에 단 한 가지 합리성만 사용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따라서 갈등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상대가 어떤 합리성을 사용하는지 알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는 오 그래? 그건 몰랐네! 라며 그동안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음을 상대에 밝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긴장으로 얼어붙었던 대립 관계가 녹아 느슨해지는 걸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순간적으로 점화되는 감정을 진화한 뒤 상대에게 호기심을 갖는다는 건 비용이 꽤 들어가는 일이라는 점이다. 호기심은 에너지와 시간, 관심이라고 하는 유한한 자원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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