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외자였지만,몸도 마음도 건강한 성인이 되었다.
마흔 중반이 넘어간다.
아직도 나는 10살, 12살, 또 16살, 23살, 29살 때의 기억이 문득문득 떠오른다.
어린시절, 나는 혼자였고, 또 혼자였다.
아버지는 본부인이 있는 사람이었고, 지방에서 일을 하던중 미소가 예쁜 순진한 아가씨와 연애를. 하고 나를 낳았다.
순진했던 아가씨는, 본부인이 있는 10살 이상 많은 사내를 철썩 같이 믿고 그와의 미래를 꿈꿨다.
그 역시, 보고자란 것이 첩실들을 들이던 시대라 굳이 본부인 운운 하지 않았지만 또 한편 순진한 아가씨를 놓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고향에까지 그녀를. 들였다. 그의 가족들도, 동네 사람들도 너무도 자연스럽게 그녀가 그의 가족인양 굴었다.
그녀가 알게된 건, 뜻밖에도 그의 가족을 만나는 자리가 아닌, 나를 임신했을 때였다. 그가 본가족이 있음을 알렸고, 이미 세명의 자녀가 있는 남자 였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그녀에게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었겠다. 이후 나는 10살 때 아버지의 가족안에 편입되었다.
어떤 가족은 이 아이는 대체 무슨 잘못이겠냐. 하겠지만 대 가족이었던 아버지의 가족안에서의 시선은 한결같이 따갑고, 냉정하고, 인색하고 표독스러웠다.
아무도 내게 다정한 말한마디 하지 않았고, 나보다 생일이 나흘 늦은 남동생이 나를 팼을 때도 아무도 나를 위로하지 않았다.
김치를 하나 집어 먹을 때도, 소를 털고 먹으면 입에 넣는 순간 불호령이 떨어졌다. 뒤적거리지 말고 먹으라고.
꽁치 통조림 김치찌게 안에 꽁치를 집어 먹다가 뼈가 후루룩 떨어지면, 꽁치 살만 먹는다고 한마디를 던졌다.
기억해 보면, 일거수 일투족이 트집거리 였다.
그러던 어느날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다.
나는 비로소 친구들이 생겼고,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집에 늦게 들어갔다.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 집, 언젠가 한번 키워준 어머니가 밤늦게 거실에 앉아있다가 내게 말했다.
너 때문에 내가 심장병이 걸렸다.
그 때는 그 말에 내가 정말 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끔 하는 따끔한 효과가 있었던 것 같은데
복기를 해보니, 늦게 들어오는 나 때문에 심장병이 생긴게 아니라, 나라는존재가 그녀에게 심장병을 앓게 했던 것이다.
훗날 알게되었다. 그녀는 무척이나 건강하고, 본인을 누구보다 잘 챙긴다. 그냥 내게 욕을 했던 것 같다. 그만큼 네가 싫고 너의 존재가 괴롭다고.
이 글을 남기는 건, 내 마음에 자꾸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올라왔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얘기들이 끊임없이 내게 말을 건네오기 때문이다.
어린시절, 내 얼굴에는 웃음이 없었다.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봐도, 행복했던 추억이 없다.
한없이 외롭고 쓸쓸했던 나. 그 때의 나를 떠올려 보니 마음이 시리다. 여전히 아프고 또 애틋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