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샌프란시스코 날씨가 좋다고 했는가
올해 7월, 뜨겁고 건조한 LA의 여름 한복판에서 샌프란시스코로 이사하게 되었다. 샌프란시스코는 5월에 짧게 여행으로만 다녀간 적이 있기 때문에 아주 좋지도, 아주 나쁘지도 않은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또 같은 캘리포니아 내에서의 이사인데 뭐가 크게 다르겠나 싶어 가벼운 마음으로 짐을 싸고 운전해서 올라오게 되었다.
평균 시속 90-100마일로 달리면서 Bakersfield라는 소도시와 캘리포니아 한가운데 어딘가 휴게소에서 잠깐씩 쉬고도 8시간이 좀 넘게 걸렸다. 생각보다 멀고 반복되는 풍경에 약간은 지루한 길이었다.
LA부터 여러 대농장을 지나 Fresno, Livermore 정도 까지만 해도 화씨 100도를 웃도는 건조하고 뜨거운 날씨가 계속 되었는데, 거짓말처럼 오클랜드 베이 브릿지를 지나면서 갑자기 창밖이 칙칙해졌다. 본격적인 페닌술라 지역으로 들어서니 날씨가 심상치 않음을 감지했다. 내가 도착한 그 날에는 하필 근처에서 불이 나서 공기가 안 좋기도 했지만, 샌프란시스코의 여름은 내가 생각하던 그 캘리포니아의 여름 날씨가 아니었다. 나에게 샌프란시스코의 첫인상은 이렇게 회색 하늘로 시작하였다.
사계절이 뚜렷해서 이해하기 쉬운 한국의 날씨와 365일 중 약 350일은 날씨가 좋은 LA에서 살다가, 안개 가득하고 매일매일 오전 오후가 다른 이 동네에서 살자니 정말 적응하기 힘들고 날씨가 사람의 기분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새삼 체감하면서, 도대체 이 동네 날씨는 왜 이모양인지 좀더 자세히 알아보고 싶어졌다.
마이크로 클라이밋, 우리말로 미기후라고 한다. 거의 매일 이 마이크로 클라이밋을 체감할 수 있는데, 아침에 내가 사는 곳에서 눈을 뜨면 안개가 자욱하다. (여름에 심할 땐 한 치 앞도 안 보일 정도) 하지만 지하철을 타고 한 30분가서 다운타운에 내리면 해가 쨍쩅하거나, 적어도 따듯하다. 하루는 친구와 날씨 불평을 했는데, 이 도시는 마이크로 클라이밋이라서 이 작은 도시 안에서도 동네마다 날씨가 조금씩 다르다고 했다. 실제로 몇 블럭 사이로 해안 쪽은 안개가 끼고 추운데, 산등성이나 볕이 잘 드는 동네로 가면 그렇게 따듯할 수가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첫 번째로는 지리학적으로 동쪽으로는 커다란 산맥 Sierra Nevada가, 서쪽으로는 태평양을 바로 맞대고 있기 때문이다. 더 자세히 말하면 대륙에서 오는 뜨겁고 건조한 공기가 차갑고 무거운 습기를 머금고 있는 태평양에서 오는 공기와 맞닥트려 상대적으로 무거운 습하고 차가운 공기들이 뭉쳐 구름들을 생성하고, 습한 바람과 안개들이 구석구석 생겨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지형학적 이유인데, 빙하기 이전에 저어기 내륙의 Sierra Nevada 서쪽 슬로프를 따라 내려오던 물줄기들은 협곡들을 생성하였고, 해협들을 만들어내었다. 그리고 마지막 빙하기가 끝날 즈음에 거대한 빙하가 녹으면서 해수면이 상승하여 지금의 샌프란시스코 및 베이 에어리어 모습을 형성하게 되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는 이 작은 도시 안에, 그리고 넓게는 베이 에어리어 전체가 지형이 크고 작은 언덕과 협곡들과 함께 바다와 대륙의 공기가 만나면서 독특한 나날들을 만들어낸다.
이렇게 복잡한 기상학적 사실들과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진 지형의 결과로 샌프란시스코는 안개의 도시, 교과서적으로 말하면 온난 습윤 기후라고 불린다. 책에서만 봤지 생전 처음 직접 겪어본 이 동네의 온난 습윤 기후는 매일 아침마다 옷을 어떻게 입어야 춥고 더운 것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에 대한 고민에 빠졌고, 반팔부터 패딩까지 넓은 스펙트럼의 옷을 여러 조합으로 돌려 입으면서 살고 있다. 거칠게 불어 제치는 바람은 나날이 까칠해지는 피부와 함께 통제불능의 머리스타일을 만들어주고 있다. 이 맘때마다 발생하는 근처 산간지방 대화재로 인해 바람을 타고 오는 잿더미와 안개 자국으로 얼룩진 나의 차는 덤!
어쩔 수 없이 인간은 다양한 지구의 환경적 현상에 순응하며 살아야 하기에, 또 적응의 동물이기 때문에 앞으로 다가올 겨울(?)을 대비하며 이 도시에서 버틸 궁리를 한다.
참고: Weather of the San Francisco Bay Region - Harold Gilli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