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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J Jul 06. 2016

03 산 중턱의 작은 마을

꽃과 친구가 되다

매주 월요일마다 올린다고 약속해놓고

3번째 연재에서 벌써 미끄덩 ㅠㅠ

정신없는 일이 있었다는 핑계로 수요일이 다 되어서야 브런치 생각이 나 글을 올립니다

아직 읽어주시는 분은 몇 없지만 소소한 마음으로 끝까지 올려볼게요 :)



산을 내려오다 산중턱에 있는 마을 하나를 발견했다. 나는 그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외로움을 달래줄 친구를 만날 수있을 거란 기대감이 들었다. 그리고 다행히 기대했던 데로 나는 그 곳에서 여행길에 오른 후 첫 친구를사귀게 되었다.


처음 마을에 들어섰을 땐 아무도 발견할 수 없었다. 실망이 적지 않았지만 사람이 머물렀던 자취가 있었으므로 조금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산 중턱 숲 속에 가려져 있는 작은 마을. 나는 주변을 둘러보다 마을 한 구석에 곱게 피어있는 꽃을 발견했다. 난생처음 보는 종류의 꽃이었다. 나뭇잎 틈새로 내리쬐는 햇빛이 꽃이 있는 자리를 환히 비추고 있었다. 나는 그 꽃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조심이 살펴보기 시작했다. 자세히 볼수록, 관심을 줄수록 그 꽃이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특별한 존재를 가슴 속에 심은 채 하루가 저물었다. 이튿날도 나는 이 작은 마을에서 꽃을 보며 하루를 보냈다. 사람들이 돌아올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지만 그것은 더 이상 중요한 일이 아니게 되었다.

그렇게 며칠을 보낸 어느 날, 나는 여느 때처럼 꽃을 바라보다 꽃에게 말을 걸어보았다.

“안녕. 오늘도 넌 참 어여쁘구나.”


“안녕. 너는 이 마을 사람이 아니구나. 처음 보는얼굴이야.”

꽃이 대답했다.


그렇게 믿기지 않게도 내가 처음 사귄 친구는 꽃이었다. 나는 꽃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고는 깜짝 놀랐다. 나의 마을에서는 꽃에게 시간을 들일 여유도, 꽃 자체도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꽃에게 인사했다.

“안녕. 나는 여행 중이야. 지나가다 이 마을에 들리게되었어”


“여행? 그것 참 멋지다. 나는 이 마을에서 벗어나본 적이 없는데 말이야.”

꽃이 감탄하며 말했다.


“여행은 나도 처음이야.”

나는 멋쩍어하며 대답했다. 그리고 얼른 덧붙여 물었다.

“그런데 왜 이 마을에는 사람이 없지?”


“그건 다들 떠났기 때문이야.”


“떠났다고?”


“그래.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사는 곳으로 떠났어. 이곳은 아주 작은 마을이었거든. 사람은 더 많은 사람들 사이에 섞여 살길 원하나 봐. 아무튼 다들 떠났어. 이 곳에는 더 이상 아무도 살지 않아.”


나는 조금 실망했지만 꽃과 대화를 나눈다는 것이 큰 위안이되었다. 비록 사람은 아닐지라도 꽃은 여행길에서 만난 나의 첫 친구였으니까.


“여행을 한다는 건 어떤 느낌이야?”

꽃이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처음 사귄 친구에게 근사해 보이고 싶었다. 내 입에서 밝고 과장된 목소리가 나왔다.

“여행은 새로운 것들의 연속이야! 정말이지 세상은 놀라운 것들로 가득해!”


꽃이 꽃잎을 반짝이며 기대감을 한껏 표현했다.

“그전에 너도 원한다면 나의 여행길에 데려가 줄 수 있어.”

나는 혼자 여행하는 외로움을 잊기 힘들었다. 그래서 꽃에게 함께 가길 제안했다.


“하지만 나는 이 곳을 벗어나 본 적이 없는 걸. 그 전에 먼저 여행 이야기를 해줘.”

꽃은 말을 돌렸다.


“여행 이야기라……”

사실 여행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할 이야기가 별로없던 나는 말끝을 흐렸다.


“그래, 여행 이야기!”

꽃이 기대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럼 내가 살던 곳부터 얘기해 줄게. 왜냐하면 내가 살던 마을은 이 곳과 너무 다르거든.”


“너는 다른 마을에서 왔구나.”

꽃이 귀를 기울였다.


“내가 사는 마을은 말이야, 아주 바쁘고 정신 없고 재미있는 곳이야. 그건 나의 마을의 문화야.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생활방식이지. 사실 나는 개인적으로 다들 가만히 있어도 된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우리 모두는 쉴 틈 없이 바쁘게 움직여. 태어나보니 다들 그렇게 움직이고 있었거든. 그걸 보고 자라면서 똑같이 따라 하는 거야. 나의 마을에서는 아침에 눈이 떠지면 일어나는 게 아니라, 스케줄이 있긴 때문에 그 스케줄에 늦지 않으려고 시간에 맞춰 일어나. 피로가 풀렸던 풀리지 않았던 그건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스케줄에 맞춰 행동하는 거지.”


“어떤 스케줄인데?”


“보통은 일을 하러 가는 거야. 일을 해서 얻은 대가로 삶의 모양을 유지해야 하거든. 그것을 유지하는 건 아주 중요해. 왜냐하면 그걸 유지하지 못하는건 부끄러운 일이거든.”


“어떤 모습을 유지해야 하는데? 왜 유지하지 못하면 부끄러운 거야?”


“음, 그것을 설명하려면 먼저 등급에 대해 말해야 하는데, 나의 마을에는 사람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등급이 존재해. 어떤 등급이냐 하면 삶의 수준에 대한 등급이야. 내가 조금 전에 말한 삶의 모양을 유지해야 한다는 건 바로 이 등급을 유지해야 한다는 걸 가리켜.”


“우와, 굉장히 복잡한 세상에 살고 있구나. 이 곳의삶은 단순하고 단조로운데 말이야.”

꽃이 대답했다.


“맞아, 이 곳에 비하면 복잡하다는 말이 맞을 거야.”

나는 이 작은 마을을 한 번 휙 둘러보고는 대답했다. 나는 계속 말을 이었다.

“등급은 가지고 있는 재산이나 명예, 권력, 다른 사람들로부터 얻은 인기 등이 복합적으로 섞여서 정해지게 되어있어. 그리고 같은 등급에 속한 사람들끼리함께 어울리지. 아침 일찍 일어나 등급을 유지하기 위해 일을 하고, 저녁에는 비슷한 등급에 속한 사람들끼리 만나 파티를 하며 신나게 놀아. 아주 정신 없이 바쁘지만 재미가 가득한곳이야.”


“너는 신기한 마을에서 왔구나.”


“나는 이 곳이 신기하지만 너에게는 그럴 수도 있겠구나.”


우리는 서로를 신기해하며 바라보았다.


나는 생각했다.

‘이 꽃은 아주 작은 마을에 살아서 등급이란 걸 모른 채 살아왔구나. 사람들이 많이 살지 않는 작은 마을이라서 등급이 형성될 여건이 갖추어지지 않아서 그런 걸까? 아니면 이야기꾼의 말대로 공평한나라란 정말 존재하고 이 마을은 그 영향권 안에 속한 마을이었던 걸까? 아무튼 신기한 곳이군. 좀 더 여행을 하며 공평한 나라에 대해 알아가고 싶어.’

나는 또 생각했다.

‘아니면 이 곳에선 등급이 다른 모습으로 존재할지도 몰라. 내가 모르는 형태로 말이야. 일단 이 마을은 너무 작고 고립된 곳에 위치해 있어. 아마 사람이 많은 마을로 가면 등급의 높낮이가 있는 곳이 있을지도 몰라. 그러면 공평한 나라에는 등급이 존재하긴 하는지, 존재한다면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는지 알아낼 수 있을 거야. 공평한나라에 대해 좀 더 알아봐야겠어.’

나는 공평한 나라의 등급의 비밀이 궁금했으므로 이 마을을 떠나 여행을 계속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제 여행을 떠난 이야기를 해줘.”

그 때, 생각에 빠져있는 나에게 촘촘히 박혀있는 꽃잎을 반짝반짝 빛내며 꽃이 말했다. 나는 떠나기 전에 꽃에게 여행이야기를 조금 더 해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여행을 그냥 떠나게 되었어. 아무 계획 없이. 나는지금 언제 끝날지 모르는 여행을 하고 있어. 조금의 두려움으로 시작했지. 근데 막상 떠나보니 내가 그 동안 알던 세상과 너무 다른 세상의 모습에 나는 너무 놀랐어. 그저 놀라움의 연속이었지. 지금 우리가 있는 이 산과 마을도 마찬가지야. 내가 살던 마을과는 달라도 너무 달라.”


“그럴 수도 있겠구나.”

꽃이 까르르 웃으면서 대답했다.


“나는 잔디도 본 적이 있고 호수도 본 적이 있지만, 이 곳에서처럼 잔디가 끝도 없이 펼쳐지고 호수가 여러 가지 색깔로 빛나는 것은 본 적이 없어.”


“호수? 호수라면 저것 말이야?”

꽃이 마을 한 구석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 곳에는 작은 연못이 있었다. 하지만 호수는 아니었다.

“저건 연못이야. 호수는 연못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훨씬 커.”


“그래? 그렇다면 나는 호수를 한 번도 못 적이 없는 거네. 네가본 호수는 어디에 있어?”


나만이 아는 것에 대해 설명할 수 있게 되자 나는 조금신이 났다.

“이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 그러니까 이 산의 정상에 있어.아주 어마어마하게 큰 호수지. 이 호수는 일곱 가지 빛깔로 반짝이는데 아주 아름다워. 나는 파란색이 일곱 가지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이제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되었어.”


“일곱 가지 빛깔을 내는 호수라니. 그런 건 본 적이 없어. 여행중인 네가 부럽구나.”

산 중턱 작은 마을에 사는 꽃은 순진한 꽃잎을 살랑거리며내 이야기에 심취해있었다.


“나의 여행이 부럽다면 나와 함께 떠나지 않을래? 직접 떠나보면 더 감동적일거야. 어때? 나와 함께 가자. 이마을은 평온하고 아늑하지만 너무 심심한 곳이야. 여긴 너무 조용해.”

나는 꽃이 나의 제안에 응해주길 바랐다. 그녀는 내가 여행길에 사귄 첫 친구이니까. 하지만 꽃은 거절했다. 그녀는 자신의 마을을 떠나길 무서워했다.


“나는 떠날 수 없어. 자, 봐봐. 나는 여기 이렇게 뿌리를 내리고 있잖아.”

꽃은 떠나지 못하는 이유를 댔다.


“그렇다면 내가 널 꺾어서 데리고 다닐게. 네가 시들지 않도록 널 잘 가꿔줄게.”

나는 꽃을 설득하려 했다.


“네가 날 아무리 잘 가꿔준다고 해도 날 꺾는다면 나는 오래가지 못해. 뿌리와 멀어진다는 건 생명을 버리는 일이니까. 네가 아무리 잘 가꿔준다 해도 나는 결국 메마르고 시들어 죽게 될 거야.”


맞는 말이었다. 나는 다시 설득했다.

“그럼 내가 너의 뿌리까지 화분에 옮겨서 들고 다닐게. 그렇게 하면 시들지 않고 나와 함께 오래오래 다닐 수 있을 거야.”


그녀는 다시 떠나지 못하는 이유를 들었다.

“화분에서 나는 자유롭게 뿌리를 내리지 못해. 화분은 너무 작거든.”


“그렇다면 큰 화분에 널 옮겨줄게.”


“큰 화분으로는 너무 무거워서 멀리 여행을 떠나지 못해. 그렇다면 차라리 이 곳에 남는 게 나아.”

내가 어떤 말을 하던 그녀는 떠나지 못하는 이유를 찾아냈다. 그녀의 마음이 떠나길 거부했다.


찰나의 침묵이 흘렀다.먼저 입을 연 것을 꽃이었다.

“너는 여행가잖아. 그렇다면 얼른 떠나. 내 뿌리가있을 곳은, 내가 있을 곳은 여기야. 나는 이곳에 남아 너처럼한 번씩 지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에 만족해.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줘서 즐거웠어.”

꽃은 슬픈 듯하면서 단호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제 이별의 시간이야. 그 동안 고마웠어. 너의 여행길을 축복해 줄게. 잘 가.”


나는 꽃을 존중해주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꽃을 떠났다. 그리고 나는 다시 외로워졌다.

꽃은 나의 여행이 부럽다고 했다. 하지만 여행을 떠나고 싶어하진 않아했다. 모두에게는 자기가 지키고싶은 자리가 있는 걸까? 아니면 단순히 익숙한 것을 버리는 게 두려운 걸까?

꽃에 대한 생각으로 심오해졌다. 하지만 나는 이미 꽃을 뒤로하고 터벅터벅 걷고 있었다.


나는 문득 내가 꽃을 항상 지니고 다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야기꾼이 준 하얀 꽃, 평화를 상징하는 데이지.

나는 가방을 뒤적여 이야기꾼이 선물해준 꽃을 찾았다. 그리고 말을 걸어보았다.

“안녕. 너도 내 말을 들을 수 있니?”


“……”

꽃은 침묵했다.


산 중턱 작은 마을에서 만난 꽃처럼 시간을 들이면 이 하얀 꽃과도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바라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하얀 데이지 꽃은 꺾어진 후 말려진, 어여쁜 모습 그대로 잠든 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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