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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J Jul 20. 2016

05 오래된 마을

일주일에 한 번 꾸준히 연재하는게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란 걸 깨닫고 있어요.

새삼 (즐겨보는) 웹툰 연재 하시는 작가님들이 존경스러워 진다는... ㅎㅎ

그럼 이틀 늦었지만서도 어찌됐든 끝까지 올려보겠다는 마음으로 글 올려요~

오늘도 감사합니다



“오래된 마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환영합니다!”

“어서 오세요!”

오래된 마을이 가까워 오자 활기찬 목소리들이 투어리스트들을 반겼다. 나는 난생 처음 접해보는 생기 넘치는 분위기에 어리둥절해졌다.


‘매일 이런 분위기인 걸까?’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 때 한 사람이 내 앞으로 다가왔다.


“오래된 마을은 처음이신가요? 안내가 필요하다면 이 가이드가 마을 투어를 도와드리겠습니다!”

나는 기꺼이 안내를 부탁했다.

궁금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말 많은 가이드의 말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에 일단은 그의 말을 듣기로 했다.


“저희 마을은 놀랍게도 천 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이제 정확히 천백이십오 년이로군요!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살아남은 마을은 이 마을이 유일하답니다!”


가이드는 마을의 중심부로 나를 이끌었다. 이 마을에는 건물이 아주 많이 있었는데 허투루 지은 건물은 단 하나도 없어 보였다. 돌로 지은 건물에는 도저히 사람의 손길로 만들었다고는 믿기 힘든 섬세하고 정교한 조각들이 새겨져 있었다. 길거리에도 수백 개의 조각상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이 건물은 약 칠백오십 년 전에 위대한 건축가 산 빌레오가 당대 최고의 조각가이자 화가인 미쿠엘로와 함께 지은 건축물로 지금까지 잘 보존되어있으며 현재는 오래된 마을의 살림살이를 담당하는 시장의 집무실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일층은 투어리스트들에게도 공개되어 있으며 안으로 들어가면 정면에 스테인리스로 장식된 창을 통해 빛이 여러 가지 색깔로 들어와 온화하면서도 신비로운 분위기를 조성합니다. 자연과의 조화를 함께 고민한 설계로 창은 남쪽을 향하고 있어 햇빛이 아주 장시간 동안 잘 들어온답니다! 칠백오십 년 전에 지은 건물인데 참 대단하죠!”

그는 또 다른 건물을 지나면서 이야기했다.

“이 건물은 오래된 마을이 막 생겼을 무렵 신께 감사의 제물을 바치기 위해 지어졌던 건물인데 천장의 돔은 그 크기와 면적이 웅장하고 무거운돌을 쌓아 올려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천백이십오 년 전에 미리 완성되어 있던 수학 계산법으로 무게를 지지할 수 있는 각도를 완벽하게 계산하여 가운데 기둥 하나 지지대로 세우지 않고 이렇게 엄청난 면적의 돔을 완성할 수 있었답니다. 현재까지 이보다 더 큰 돔을 짓는 데 성공한 사례는 없답니다! 천백이십오 년 전의 기술을 아직까지 뛰어넘을 수 없다니! 대단하지 않습니까?”


나는 말 많은 가이드의 말에 어느새 푹 빠져 있었다. 나는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감탄사를 연발했다. 그의 열정 넘치는모습이 왠지 모르게 나를 기분 좋게 만들었다.


가이드가 잠시 설명을 멈춘 틈을 타 나는 얼른 질문을 던졌다.

“옛날에는 조각상과 건축물을 잘 만들수록 많은 보상을 얻었나 보죠?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혼을 다해 만들 수 있을 리가요.”


가이드는 잠시 눈을 굴리며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보상이라면 완성된 이 작품 자체가 보상이라고 할 수 있죠. 예술가에게 예술의 혼을 다 태우고있을 때만큼 행복한 순간이 과연 있을까요. 당신도 방금 혼을 다해 만들었다고 표현했듯이 예술을 향한 마음으로 예술혼을 태웠다고 밖에요.”


투어는 반나절 동안 계속되었다.

가이드는 오래된 마을이 아직까지 건재할 수 있는 이유는이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예술이라는 고결한 가치를 가장 최우선으로 두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금은 과거처럼 많은 예술가들이 있지는 않지만 과거의 수준 높은 작품들을 보존하고 지키려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곳에는 저와 같은 가이드들이 많이 있고요. 이 고결한 혼을 말을 통해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것이죠. 그리고 오래된 마을을 찾는 투어리스트들은 잠깐이나마 이 한 단계 높은 혼을 느끼길 원해요. 많은 이들이 이 마을을 찾는 이유죠. 이 마을을 지키고 있는 것이 사람의 고결한 정신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리고 이런 정신이 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어져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알기에, 누구도 오래된 마을이 없어지길 바라지 않습니다. 이 마을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우리를 움직이는 힘이랍니다.”


나는 그의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도 같았다. 이 마을을 지키는 것을 업으로 삼는 것이 개인의 사회적 신분을 높이는데 무슨 영향이 있을까, 사람들은 왜 이렇게 열심인 걸까 의구심이 들기도 했지만 생각해보면 나 자신도 이 마을이 없어지길 바라지 않았다. 나는 오래된 마을이 좋았다. 이 마을이 빛을 바랜다면 무척 슬플것 같았다. 잠시 스쳐 지나가는 투어리스트임에도 불구하고.


 

가이드는 투어를 마치면서 자신이 보여준 곳들은 오래된 마을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고 일러주었다. 가장 대표적인 예술작품과 건축물들만 설명해준 것이니 이 마을에서길을 잃어보며 자유롭게 골목 구석구석까지 거닐어보길 권했다.


혼자 걷는데도 사람이 워낙 많아서 즐거웠다. 구경할 것들이 가득했다.

나는 가이드의 권유대로 동서남북과 같은 방향은 기억에서 지워버린 채 길을 잃은 채로 마음껏 마을 구경에 정신을 쏟았다.


마을의 어딘지 모를 곳에서 시간의 흐름을 잊은 채 걷고있는 내 눈에 한 건물이 들어왔다. 뾰족한 지붕 아래 커다란 종이 매달려 있었고 지붕 위에는 긴 세로 막대기와 그 세로 막대기보다는 조금 짧은 가로 막대기가 서로 겹쳐져 있었다. 왠지 익숙한 느낌이 들어생각해보니 이 마을에 들어와서 저 모양을 많이 본 것 같았다.


“저건 무슨 모양이죠?”

나는 길을 걷는 사람에게 물었다.


“십자가에요.”

한 눈에 내가 투어리스트임을 알아본 행인이 답했다. 그는 한 마디를 더 덧붙였다.

“저 건물은 교회인데 한 번 들어가보세요. 신께 기도 드리는 장소랍니다.”


나는 십자가를 한 번 더 바라보고는 교회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 안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내가 서있는 공간의 공기가 바뀌는 것을 느꼈다. 무거우면서도 따뜻하고 정결한, 나로서는 처음 느껴보는 공기였다.


“거룩한 곳입니다.”

한 남자가 다가오며 말했다. 그는 이 곳 분위기에 어울리는 신비로운 복장을 걸치고 있었다.


“여긴 무엇을 하는 곳인가요?”

내가 물었다.


“신께 예배 드리는 곳입니다. 그리고 저는 성직자이지요.”


나는 신이라면 등급이 없는 세상의 비밀에 대해 설명해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계속 남과 비교하며 남보다 잘 살기위해 끝도 모를 경쟁을 했다. 그런데 여행을 떠난 이후로 그 동안 의미 없는 일에 힘을 쏟은 듯한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조금씩 뚜렷해지고 있었다.


“성직자님은 등급에 대해 아시나요?”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 물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사람을 등급에 따라 나누지 않는답니다.”


“하지만 잘 사는 사람과 못 사는 사람이 엄연히 있잖아요. 제 말은 가진 것이 많은 사람과 적은사람 말이에요.”


“네, 그렇지요. 우리는 그것을 빈부라 부릅니다.”

성직자는 계속 말을 이었다.

“빈부 또한 신께 속한 것이랍니다. 가난한 자와 부유한 자가 있을 때에 세상은 좀 더 의미를 갖게 되지요. 빈부가 없다면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 부러워하는 마음, 성공했거나 목표를 이루었을 때의 성취감 같은 많은 감정들이 사라지겠지요. 누군가를 돕고자 하는 마음, 서로의 부족한 것을 채워주며 느끼는 행복, 누군가를 위해 희생함으로써 얻게 되는 고결한 정신과 같은 것 또한 존재하지 못할 겁니다.”


“하지만 빈부는 신분을 만들어요. 그것은 사람 사이의 격차를 만들고 결국에는 비슷한 수준에 있는 사람들끼리 어울리게 되죠.”


“그럴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우리는 어느 신분에 속한 사람이든 동등하게 여긴답니다. 인간은 인간일 뿐이기 때문이지요.”


“인간은 인간일 뿐이라고요?”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는 신께 생명을 부여 받았습니다. 아무도 스스로의 의지로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지요.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주어진 생명을 다시 앗아가는 것도 신께 속한 것이랍니다. 우리는 신이 창조하신 세상을 그 분께서 주신 생명을 통해 누릴 수 있을 뿐이지요. 이 세상에서 어떤 신분으로 살아가든 신께서 창조하신 생명은 모두 고귀하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어요. 우리는 본질을 본답니다.”


나는 성직자의 말을 이해하려 애썼다.


성직자는 말을 이었다.

“빈부에는 물질적 부유함과 가난함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랍니다. 마음의 부유함과 가난함 또한 존재하지요.”


나는 생각에 잠겼다.

‘내가 태어난 마을은 물질적 것만을 보았구나. 아니면 눈에 보이는 것만을 쫓았어. 내가 공평한 나라에서 느낀 이질감은 이 사람들이 마음의 부유함에 집중하기 때문인 걸까. 그렇다면 마음의 부유함에 집중한다는 건 무엇일까? 현자의 마을에서 본 지혜의 말들? 아니면 이 마을에서 본 예술혼? 또는 오래된 마을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 그렇다면 이런 마음을 더 우선순위에 두게 하는 근본적인 것은 무엇일까? 아, 어렵다.’


그 때 성직자가 내 생각을 끊고 말했다.

“생명과 함께 따라오는 것이 죽음이지요. 죽지 않는 것처럼 살아서는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된답니다. 죽음을 기억하며 사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야 중요한 것에 마음을 쏟으며 살게 되기 때문이지요. 마음의 부유함을 얻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 아니랍니다.”


나는 현자의 마을을 떠나면서 마주한 마지막 팻말의 글귀가떠올랐다.


죽음을 기억하지 않는 자를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그 말이 현자의 마을이 나에게 준 마지막 선물이라고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성직자는 그 팻말에 적혀있던 지혜의 말과 같은 맥락의말을 하고 있었다.


‘죽음을 기억하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일인가?’

나는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기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나는 교회에서 나오며 복잡해진 머릿속을 정리하려 애썼다.

성직자와의 만남. 신의 존재. 빈부. 고귀한 생명. 마음의 가난함과 부유함. 죽음을 기억하는 것. 그리고 다시 삶과 죽음.

생각이 반복될수록, 그리고 그 생각에 서서히 익숙해질수록 내 안의 나침반이 조금씩 방향을 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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