왔던 길을 되돌아가다
처음 써본 동화 소설.
오늘 끝맺음을 맺게 되었어요.
그동안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다음부터는 또 주저리주저리 저의 일상글을 올려볼까해요.
그럼 감사가 넘치는 하루 되세요~
봄도, 여름도, 가을도 지나고 겨울이 왔다. 겨울이 되자 나는 왠지 모를 신비로운 기분에 휩싸였다. 아마 처음 세 계절은 알록달록한 색으로 세상을 풍성하게 더해주지만 겨울에는 그 색이 모습을 감추어서 일지도 모른다. 특히 온 세상이 눈으로 뒤덮이는 날이면 설국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다가도 흑백으로 색을 잃은 세상에 울적해지곤 했다. 그 동안 당연하단 듯 세상 구석구석을 칠하고 있던 색깔이 모두 땅 속으로 숨어버리는 계절.
겨울은 척박한 계절이다.
겨울은 우리를 겸손하게 하는 계절이다.
함박눈이 내려 마을이 한층 더 하얗게 변한 어느 날, 나는 눈 내리는 창가에 앉아 종이와 펜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고즈넉함 속에 종이와 펜이 사각사각 부딪히는 소리만이 조용히 퍼져나갔다.
아무에게도 방해 받지 않는 시간. 나는 여행을 통해 얻은 깨달음을 글로 남기고 있었다. 한 걸음씩 걸어나갈 때마다 내 마음에 차오른 생각을 글로 남기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도 잊고 싶지 않았기에 세월의 중간중간 엿보게 될 글을 남기고 있었다. 나는 온 정성을 다해 좋은 글을 쓰는데 집중했다.
그 때 누군가 다급히 문을 열었다. 목소리 또한 다급했다. 데이지였다. 나는 생각의 흐름이 깨졌다. 순간 화를 냈다. 중요한 순간을 방해 받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곧 그렇게 대답한 걸 후회하고 말았다.
누군가의 죽음이란 본래 이렇게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걸까……
말을 잃고, 생각을잃고, 고개를 떨구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흐른 건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어느새 스타의 장례식장에 와있었다.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그를 오래 안 것도 아니고 그와 자주 시간을 보낸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주 많이 슬펐다.
나는 또 바보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의 죽음 앞에 내가 조금 전까지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모두 너무 작은 일이 되었다. 너무 작아서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어버렸다.
그의 심장은 이제 멈추어 있었다.
그 사실이 내 심장 어딘가에 구멍을 뚫었고, 그 구멍 난 자리를 아픔이란 눈물이 메웠다.
나는 데이지를 바라보았다. 왠지 그녀는 더 아파할 것 같았다.
나는 슬퍼하는 그녀 곁에 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 다행으로 여겨졌다.
그녀의 아픔을 나눌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 사실이 이 순간 나에게 유일한 위로가 되었다.
나는 문득 현자의 마을에서 본 마지막 팻말이 떠올랐다.
죽음을 기억하지 않는 자를
두려워하지 말라.
누군가의 죽음을 눈 앞에 두고도 아직 완전히 이해되지 않는 말이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죽음 앞에서 다른 모든 사소한 것들은 사라져있다는 것이었다. 오직 진정 중요한 것들만이 남아 있었다.
나는 문득 우리가 죽음을 향해 살아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또 죽어가는 누군가를 사랑하며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란 생각이 들었다.
어느덧 계절이 하나 더 지나 눈이 녹고 봄이 왔다.
나는 다시 정원을 찾았다.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지만 이제는 아주 뚜렷해진 감정을 느끼며.
내 삶에는 결핍된 것이 있었다. 나는 삶에서 잃어버린 그 무언가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온 마을에 퍼지던 종소리, 바쁜 거리, 평일의 학교, 주말의 광장, 치열한 경쟁, 화려한 파티, 끝없는 수다, 선생님, 친구, 가족. 내가 그리워하는 고향의 모습이구나. 고향이란 참 아이러니해.’
나는 내가 떠나온 마을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그 곳은 누가 뭐라고 해도 내가 속한 곳이었다. 나라는 존재를 이루고 있는 근본이 자리잡고 있는 곳이었다.
참 이상했다. 나는 분명 공평한 나라로 넘어와 이 곳에서 느낀 따뜻한 온도를 좋아했다. 그리고 머물길 원한다면 이 곳에 얼마든지 머물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의 고향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분명 이상하다. 나는 차가운 것이 싫어 떠났다. 차갑지 않은 다른 세상을 궁금해하며. 그리고 만난 이 따뜻한 곳을 좋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데이지가 말했다.
“그건 네가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이야.”
“아니, 그렇지 않아. 난 따뜻한 이 곳이 좋아.”
그러나 잠시 후 나는 말을 고쳤다.
“그래, 네 말이 맞을지도 몰라. 나는 이 곳도, 내 고향도 사랑하는 거겠지. 그래서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지 모르겠어. 이곳에도 머물고 싶기도,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기도 해. 모든 것이 복잡해.”
데이지가 나를 타이르듯이 말했다.
“중요한 것은 항상 간단하기 마련이야. 그것을 하지 않으려는 마음이 복잡할 뿐. 너의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여봐. 내면의 소리는 선명해서 항상 들을수 있지만 가냘프기 때문에 조용히 집중해서 들어야 해.”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내 마음 속에 있었다.
헤어짐의 시간이 가까워왔다.
떠날 때가 되니 모든 것을 눈에 담고 싶어졌다. 지금 이 곳에 서 있을 때 느껴지는 느낌, 공기, 분위기. 눈으로만 담을 수 있는 감각들을 최대한 많이, 최대한 깊게 내 안에 담아두고 싶었다. 이 곳을 떠나도 오래오래 기억할 수 있도록.
“네가 언젠가 떠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어. 단지 외면하고 있었을 뿐이지.”
데이지가 말했다. 그녀는 말을 이었다.
“어떤 선택이든 너에게 유익일거야. 나는 이 곳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니 여기서 가장 나다울 수있어. 나는 이 곳에서 가장 자신을 잃지 않을 수 있어. 그러니까 너도 네가 가장 너다울 수 있는 곳으로 돌아가는 게 옳아.”
슬픔이 차오르는 동안 침묵이 우리 둘 사이에 자리잡았다.
침묵 속 많은 대화가 오갔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마음. 말하지않아도 전달되는 마음.
“마음의 고향이 두 군데라는 건 정말 힘든 일이야. 나는 늘 어느 한 곳을 그리워하며 살게 될거야.”
작별인사는 간단했다. 모든 중요한 것이 그러하듯.
나는 그렇게 정든 곳을 떠나 익숙한 곳으로 돌아갔다.
왔던 길 그대로 되돌아왔다.
데이지를 만났던 해변에는 여전히 모래알들이 아름다운 모래사장을 이루고 있었다. 지금은 다른 곳으로 떠났는지 시인 없이 홀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들판에는 여전히 바람이 불고 있었다. 천 년의 세월을 이겨낸 오래된 마을은 여전히 활기가 넘쳤다. 지혜로 가득한 현자의 마을은 여전히 온화한 공기 속에 있었다. 산 속의 작은 마을에는 여전히 작은 꽃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산정상에는 여전히 일곱 가지 빛깔의 호수와 수 만개의 연두색으로 반짝이는 숲이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산을 내려오자 눈 앞에는 여전히 끝이 보이지 않는 지평선이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도착한 나의 마을.
나는 한동안 몽롱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마치 꿈을 꾸다 돌아온 느낌이었다.
고향은 변한 듯 변하지 않았다. 모든 것이 여전했다.
시간이 조금 더 흘러 몽롱한 기분이 서서히 녹아 사라졌다. 그리고 나는 이 곳에 계속 있었던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마치 떠난 적이 없는 것처럼.
하지만 내 안의 기억이 내가 긴 여행을 떠났다 돌아왔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리고 마을을 다른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나의 시선이 내가 꿈을 꾼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나는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에 대입해 이 마을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중요한 것들.
옳고 그름의 기준, 작지만 선명한 양심의 소리, 영혼의 근원이 되는 내면의 상태, 누군가를 긍휼히 여기는 마음,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 감사하는 마음, 용서하는 마음, 아끼는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바치는 희생, 누구나 가지고 있는 거짓 없이 순수한 영혼의 한 부분, 겉에 보여지는 것과는 반대일 수 있는 본질. 이 외에도눈에 보이지 않는 많은 것들. 세상도, 이 마을도 이런 것들로 인해 오늘도 죽지 않고 움직이고 있었다.
마을은 여전히 차가웠다. 치열한 경쟁과 비교가 사람들 사이에 존재했다. 사람을 등급으로 나누고 평가했다. 그러나 경쟁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사이사이 스며들어있는 따뜻함의 존재를 나는 이제 느낄 수 있었다. 백 퍼센트란 없듯이 차가움의 한 구석에도 작은 따뜻함이 자리하고 있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주변을 채워나갔다. 나는 마을 곳곳에 꽃을 심었다. 꽃 한 송이, 한 송이가 차가운 이 곳을 밝히는 따뜻한 촛불이 되길바라며. 작은 변화를 소중히 여기며. 작은 것에 정성을 다하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외면하지 않으며.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살아가며. 마음의 중심을, 그리고 신념을 지키며.
내가 지켜야 할 것들을 기억하는 것. 그것이면 충분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 한 가지 더 깨달은 것이 있다. 그것은 아름다운 만남은 다시 오기 어렵다는것. 데이지와 같은 친구를 다시 만나긴 어려울 것 같은 기분이 든다.그래서 그녀의 빈 자리가 더 크게 느껴졌다.
나는 언젠가 데이지를 만나러 돌아온 길을 다시 되돌아갈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우리는 마음에 있는 것을 위해 시간을 들이게 되어있으니까.
『데이지』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