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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yjoou Dec 14. 2022

네 번째 사건 기록; 엑설런트 아이스크림 한 박스

나에게 일어났던 주요 사건들 기록하기

최근 나의 삶의 방향성과 주요 가치관을 고민하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고 나만의 앵커를 찾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회사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나에게 ‘일’이란 삶을 구성하는 가장 큰 요소 중 하나이다.

앞으로도 20년 넘게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지금까지처럼 '재미있는 일'이라면 불나방처럼 달려들어 화르륵 태우는 방식으로 일하는 건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 오래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나의 가치관과 맞닿아 있는 방향성을 그리며 성장하고 싶다.


20대의 나에게 일이란 경제활동과 커리어를 쌓는 것이었다. 그러다 2018년, 클래스101이라는 조직을 만나게 되었고 그해 일에 대한 ‘의미’가 마음 한구석에서 조금씩 자라나기 시작했다. 그 의미는 ‘선한 영향력’이라는 키워드로 열매를 맺은 후, 나의 머리와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고 있다. 나도 기대하지 않았던 이 열매의 씨앗은 언제부터 내 안에 자리했을까? 언제부터 싹을 틔워 무엇을 먹고 자라나게 되었을까?


초등학교 시절, 놀이터에 가려고 엘리베이터를 탔던 때였다. 강아지 한 마리가 홀로 엘리베이터 안에 있었다. 이 아이는 어쩌다 혼자 이곳에 있게 되었을까?라는 의문도 잠시, 직감적으로 우리 아파트 라인에 사는 강아지일 것이라 확신했다. 혼자서는 이 아이를 어쩌면 좋을지 방도가 없었다. 그렇다고 무시할 수도 없었던 나는 강아지를 데리고 놀이터로 갔다.


친구들과 ‘이 아이를 어떻게 하면 좋지?’라는 고민과 함께 나는 이 강아지의 주인을 찾아줘야겠다는 사명감이 들었다. 나의 어렸을 적 친구 찡코가 생각 나서였을까. 그렇게 나와 내 친구들은 강아지를 데리고 아파트의 관리실로 찾아갔다. 놀이동산 같은 곳을 가면 길 잃은 어린아이를 위해 방송을 하던 것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강아지가 주인을 잃어버렸어요.
엘리베이터에서 발견했는데 어느 집인지 모르겠어요”

그렇게 우리 아파트 단지에 강아지의 모습과 발견 장소 등을 포함한 안내 방송이 나갔다. 하지만 주인은 금세 나타나지 않았다. 이후 낯선 아이들의 손을 타 한껏 예민해진 강아지를 저녁이 되어 퇴근한 주인이 찾아갔다. 주인을 찾아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나를 보고 으르렁 거렸던 무서운 강아지가 눈앞에서 사라져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며칠 뒤, 우리 집 벨이 울리고 강아지 주인이 엑설런트 아이스크림 한 박스를 선물했다. 당시 엑설런트 아이스크림은 요즘으로 치면 하겐다즈 수준의 고급 아이스크림이었는데 그걸 한 박스나 주다니..! 의도치 않은 나의 행동으로 받은 생애 첫 보상이었다.


역시나 엑설런트 아이스크림은 달고 맛있었다. 하지만 정신없이 먹었던 순간의 기쁨은 금세 손과 입에서 녹아내린 아이스크림처럼 빠르게 사라졌다. 그보다 강아지를 안고 친구들과 동네를 뛰며 주인을 찾아주고 싶다는 사명감과 강아지 주인의 감사함이 나에게 긴 여운으로 자리잡았다. 생애 처음으로 내가 누군가의 문제를 해결해주고, 실질적인 도움을 주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기뻤다.


선한 영향력이라는 열매가 내 안에서 본격적으로 자란 시점은 2018년이었다. 클래스101에 MD로 입사 후, 나는 자연스럽게 여러 크리에이터와 교류했다. 그들의 삶과 고충 그리고 욕망에 대해 들으며 공감했고, 내가 속한 조직과 서비스가 그들의 페인포인트를 해결해줄 수 있다는 굳은 믿음으로 밤낮과 주말 없이 일했다.


내가 가장 보람차고 행복했던 순간은 나의 작은 도움으로 그들의 고민이 해결되고, 그로 인해 그들의 삶이 나아지는 모습을 보고 들을 때였다. 일에서 경제활동과 커리어보다 더 충만한 의미를 찾게 되었다. 그렇게 그들을 돕는 것이 나의 사명감이 되었고, 그것이 나를 계속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 뒤로 자연스럽게 나의 것을 누군가에게 나눠주는 행복을 알게 되었다. 특히 여러 스타트업의 비즈니스 컨설팅을 하고 그로우앤베터라는 서비스를 만들어 나갔을 때,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기버(Giver)에 가깝다는 생각을 했다. 문제 해결이 필요한 스타트업과 개인에게 나의 경험과 지식을 나눠주고, 그들이 작은 돌파구를 찾았을 때의 보람과 성취감은 늦은 시간까지 나를 잠 못 들게 만들기도 했다. 그렇게 나로부터 시작한 작은 선한 움직임이 그들의 일상과 삶에 영향을 끼치는 의미를 알게 되었다.


선한 영향력이란 어떤 것일까? 사전적으로 보면 여기서 선하다의 ‘선’은 착할 선으로 ‘착하다/좋다/훌륭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선한 것의 기준은 도덕적 기준에 맞는 데가 있어야 하고, 도덕은 사람의 도리를 의미하기에 결국 선한 영향력은 ‘사람으로 살아가는 행태가 선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사전에 따른 해석이나 사람마다 생각하는 ‘선한 영향력’에 대한 정의는 다르겠지만, 나에게는 '나의 말과 행동을 포함한 발자취가 주변 이들에게 긍정적인 에너지와 영감을 줌으로써 좋은 행동을 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그것이 대단한 성과나 범위가 아니어도 좋다. 엑셀런트 한 박스 정도의 작지만 선한 영향력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것이 나에겐 중요하고 기쁨을 주기에. 영향력의 크기보다는 ‘선인선과’라는 사자성어처럼 나의 영향력이 사람들에게 좋은 의도처럼 좋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면 충분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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