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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정 Apr 23. 2020

마! 니 서마터펀 중독이다!

책 <디지털 미니멀리즘>을 읽고 실천해봤습니다

부인하지 않겠다. 나는 스마트폰 중독이다. 이 사실을 창피하게 여긴 적도 없다. 현대 사회에서 스마트폰 중독을 피해 갈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나는 그저 21세기를 살아가는 인간들 중 하나일 뿐이고, 그중에서도 스마트폰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사람이라고 믿어왔다. 유튜브, 블로그, 팟캐스트, 인스타그램, 넷플릭스, 전자책... 수많은 정보를 얻으려면 손 안의 스마트폰을 켜기만 하면 된다. 언제 어디서나 읽거나, 보거나, 들을 수 있는 상황이 된다는 건 멋진 일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집안에서도 스마트폰과 아이패드를 잠시도 손에서 못 떼는 사람이 됐다는 걸 문득 깨닫기 전까지는.


우리 집엔 TV가 없다. 아이패드와 스마트폰이 TV를 대신한다. 집에 들어오는 순간, 스마트폰을 블루투스 스피커에 연결해 음악을 재생한다. 저녁을 차리려고 싱크대 앞에 설 땐 다시 아이패드를 꺼내온다. 유튜브 영상을 재생해 싱크대에 올려놓는다. 이미 음악이 흐르고 있는 집에 다시 소리를 얹는다. 밥을 먹을 때도, 치우면서도 팟캐스트를 듣거나 유튜브 영상을 재생한다. 양치를 할 때는 또 어떤가. 아이패드를 들고 들어가 유튜브나 넷플릭스 영상을 재생한다. 침대에 누워서도 잠들기 전까지 아이패드와 스마트폰을 번갈아 쓰면서 몇 시간을 보낸다. 잠이 몰려와도 안 봐도 아무 상관없는 SNS 피드를 보느라 억지로 깨어 있을 때도 많았다. 어느새 나는 진공청소기를 돌리는 짧은 순간,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밖에 다녀오는 짧은 순간, 양치를 하는 짧은 순간도 스마트폰과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불안해졌다. 


<디지털 미니멀리즘>(칼 뉴포트 지음)에는 이런 말이 인용되어 있다. 


필립 모리스 Philip Morris는 당신의 폐만 원했지만,
앱 스토어는 당신의 영혼을 원합니다. 


어느새 스마트폰은 내 영혼과 동기화되어 있었다. 언제 어디서나 내 시간은 스마트폰으로 인해 작은 단위로 잘게 부서졌다. 나는 혼자 있을 때도 ‘외로움’이나 ‘고독’ 같은 감정을 거의 느낀 적이 없었는데, 이건 내 성향이기도 하지만 스마트폰은 그런 감정을 느낄 덩어리의 시간을 애초에 허용하지 않았다. 내 영혼이 불안할 때는 오직 스마트폰을 켤 수 없을 때다.


Photo by Le Buzz on Unsplash


<디지털 미니멀리즘>에는 소셜 미디어를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전문가의 사례가 소개되어 있다.

제니퍼는 페이스북도 간단한 규칙을 세워 평균적인 사용자보다 훨씬 적게 사용한다. 바로 친구나 가족의 근황을 확인하고 인플루언서들 influencers과 가끔 교류하는 용도로만 쓴다는 규칙이다. (..) 소셜 미디어 프로는 오락거리를 찾아 끝없이 새로 올라오는 피드를 확인하는 것이 함정임을 안다(소셜 미디어 플랫폼들은 사용자들의 주의를 최대한 많이 빼앗도록 설계되었다). 또 그런 행동이 소셜 미디어 서비스를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소셜 미디어 서비스에 이용당하는 것임을 안다. 이런 관점을 취하면 소셜 미디어에 덜 유혹당하는 한편 더 많은 혜택을 얻을 수 있다. 


나도 나만의 규칙을 세워 보기로 했다. 우선, 침대 위에서만이라도 스마트폰과 아이패드를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침실에서 전자기기를 추방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침에 일어나려면 머리맡에 둔 스마트폰의 알람이 필요한데? 이 문제는 유튜브 프리미엄 사용자에게 구글이 공짜로 보내준 구글 홈 미니로 해결하기로 했다. 아... 구글,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여... 이 규칙은 여러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왔다. 침실에 스마트폰과 아이패드가 없으니 자기 전에 종이책을 읽게 됐다. 그리고 책을 읽은 덕분에 쉽고 빠르게 잠에 빠져들어 수면 시간이 늘어났다. 가장 놀라운 효과는 아침에 눈을 뜨고 나서 스마트폰을 켜서 보느라 침대에 오랫동안 머물곤 했는데, 거실에 있는 스마트폰을 얼른 만나고 싶은 다급한 마음에 눈을 뜨자마자 침대를 벗어난다는 점이다! 나의 스마트폰 중독이 이런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줄이야...


두 번째 규칙은 지하철에서 스마트폰으로 전자책 읽기. 항상 가방에 책을 한 권 넣어서 다니곤 했지만, 스마트폰과의 싸움에서 백전백패를 당해 괜히 무게와 죄책감만 더하던 책은 이제 가방에서 빼기로 했다. 전자책 뷰어도 스마트폰에게 번번이 지는 건 마찬가지였다. 나는 지하철에서 스마트폰만 보는 사람이라는 걸 받아들이고, 수많은 앱 중 ‘전자책’ 앱들을 가장 앞에 넣었다. 다른 앱을 보다가도 실수로라도 한번 읽을 수 있게. 전자책을 읽는 시간이 길진 않지만 조금 늘었다.


세 번째 규칙은 한 번에 두 가지를 하지 않기. 그러니까, 스마트폰으로는 음악을 틀어놓고, 아이패드로는 유튜브를 보지 않기로 했다. 양치를 할 땐 양치만 하고, 청소를 할 땐 청소만 하고, 드라이를 할 땐 드라이만 한다. 그 시간에 유튜브로 얻을 수 있는 결정적인 인생의 교훈 같은 건 없다는 걸 받아들인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디지털 미니멀리즘>에서 권유한 ‘스마트폰 집에 두고 산책 나가기’라는 스마트폰 중독자에겐 무시무시한 미션을 일주일에 한 번은 실천해보기로 했다. 세상에, 스마트폰을 두고 밖에 나가다니. 음악은 어떻게 듣죠? 이런 마음의 질문에 책은 대답한다. “듣지 마세요.” 아, 네...


변화에는 증거가 필요한 법. 아이폰에 기록되는 스크린 타임을 매일 엑셀 시트로 옮겼다. 규칙을 실천하고 2주가 지났을 때, 규칙을 적용하기 전과 주간 평균을 비교해봤다. 주중에는 평균 6시간, 주말에는 평균 10시간 정도였던 스마트폰 사용 시간이 하루 평균 2시간 정도 줄어들었다. 드라마틱하진 않지만, 고무적인 변화다. 무엇보다, 양치를 하러 가면서, 양말을 찾으러 가면서도 손에서 스마트폰을 놓지 못하는 습관을 조금 고칠 수 있게 되어 기쁘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규칙을 실천한 지 3주째다. <디지털 미니멀리즘>이 경고한 거대 IT기업들이 정교하게 설계한 중독의 늪에서 조금이라도 빠져나와 영혼을 지킬 수 있을까? 우선 오늘 밤도 눈물을 머금고 스마트폰을 거실에 두고 침대에 들어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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