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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정 Nov 20. 2017

디자이너도 아니면서

2017 헤럴드 디자인 포럼 후기  

2017 헤럴드 디자인 포럼에 다녀왔다. 이제는 디자인도 마케팅의 영역이라는 좋은 구실로 디자이너이거나 디자이너를 꿈꾸는 사람들 사이에 껴서 세계 유명 디자이너들의 프레젠테이션을 들을 수 있었다. 많은 PT 중에서 두 명의 일본 디자이너들의 말들이 기억에 남아 기록해 둔다. (한국어로 통역된 말을 기억 속에서 정리하다 보니, 정확한 워딩은 아니다.)


1. 후카사와 나오토 /  MUJI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이 유명한 무인양품의 CD 플레이어를 디자인한 디자이너다. CD를 안 들어도 CD플레이어를 갖고 싶어서 사게 된다는 마성의 제품. 


photo by Naoto Fukasawa Design  http://www.naotofukasawa.com/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물건들은 이제 벽으로 흡수되거나, 몸으로 흡수되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TV는 점점 얇아져서 벽에 가까워지고, 전화기는 이제 사람 손으로 들어갔다. 점차 물건들은 형태가 사라진다. 사람과 벽 사이에 아직도 남아 있는 것들, 의자나 책상 같은 것의 디자인은 그것 자체의 디자인보다도 환경에 어떻게 녹아드는지가 중요하다.


그는 어떤 공간에도 녹아들어 아름다운 '히로시마 체어'를 예로 들어 보였는데, 미국 애플사 사무실에 있어도, 유럽 어느 식당에 있어도 공간과 어울리며 아름다웠다. 


내가 만드는 의자는 사람들이 모여 들어서 기념으로 사진을 찍는 의자가 아니라, 미팅룸에서 끌어 앉아서 쓰다가 일어나 나가는 그런 의자다. 어느 장소에 두어도 자연스럽고, 사람들이 의식하지 않고 편하게 이용하는 의자.


photo by Naoto Fukasawa Design  http://www.naotofukasawa.com/


좋은 디자인이란 10명이 봤을 때, 8~9명이 좋다고 말하면 되는, 다수결로 결정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좋은 디자인은 누구나 "좋다."라고 말할 수 있는 디자인이다. 


생활 안에서 디자인이 어떻게 녹아들어 있는지에 대한 강연을 듣다 보니, 좋아하는 무인양품이 더 좋아졌다. 작은 생활 소품도 그 물건이 놓여 있는 생활환경과 편리를 고려하는 무인양품의 철학이 느껴졌다. 


2. 테라오 겐 / 발뮤다 CEO  


죽은 빵도 살려낸다는 발뮤다 토스터로 유명한 발뮤다. 나는 강연을 듣기 전까지 발뮤다가 일본 기업인 줄도 모르고 있었다. 


photo by balmuda http://www.balmuda.co.kr


테라오 겐은 디자이너라기보다는 사업가로서의 발뮤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발뮤다의 성장과 앞으로의 비전을 제시하고, 자신의 어렸을 적 추억도 재미있게 들려줘서 가장 시간 가는 줄 몰랐던 시간이었다. 


고등학교 때, 장래희망을 적어내라는 시간이 있었어요. 친구들은 다 착실하게 적어서 냈는데, 나는 고등학생의 나이에 장래를 결정하여 적어낸다는 것이 시시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적을 수 없다, 고 생각했어요. 내가 될 수 있는 것은 너무나 많다, 는 생각이었습니다. 저는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지중해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저는 밴드를 했는데,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조건으로 유명 프로듀서와 작업을 한 적이 있었어요. 그때 프로듀서가 제안한 방향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나도 모르게 조금씩 조금씩 양보해 결과물이 나왔죠. 결국 저는 그 음반이 마음에 들지 않아 발표하지 않았어요. 디자인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마음에 드는 음악을 만들어 대중 앞에서 발표하는 것과 다르지 않아요. 


밴드 맨에서 디자이너로 급전환한 그의 인생처럼 파산 위기에서 발뮤다 선풍기로 가까스로 일어난 그의 사업 이야기도 흥미진진했다. 그는 자신이 우연히 여자 친구 집에 놓여 있던 잡지 'FRAME'을 보고 디자인을 시작했듯이, 다른 일을 시작하는 걸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다. 스토리텔링에 재능이 있는 CEO 답게, 발뮤다 홈페이지에는 그의 이야기가 잘 담겨 있다. 




덧붙임 1. 후카사와 나오토는 농담으로 '히로시마 체어'를 한국에 팔려고 왔다, 고 했는데 히로시마 체어 국내 수입처는 사라졌다고 한다... 

덧붙임 2. 후카사와 나오토의 새로운 책이 곧 출간 예정이라고 한다. 기존에 출간한 책은 '슈퍼 노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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