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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정 Jun 26. 2019

책은 유튜브의 미래

2019 서울국제도서전에 다녀왔다

중학생 때였다. 학원 수학 선생님이 어느 날 우리에게 장래 희망을 물었다. 우리는 돌아가며 장래 희망을 얘기했는데, 나는 그때 "서점 주인이요!"라고 대답했다. 말하면서 조금 멋쩍었던 건, 내가 너무 허황된 꿈을 말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였다. 오히려 지금보다 '동네 서점'이라는 상상력이 부족했던 시절, 나는 서점 하면 어마어마한 규모의 대형 서점만 떠올렸다. 그렇게 큰 부자가 되겠다는 터무니없는 이야기로 들리면 어쩌지. 선생님은 멋쩍게 꺼낸 내 꿈을 듣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제 서점은 없어질 거야. 사람들은 인터넷으로 책을 살 거란다. 네가 그래도 서점을 갖고 싶다면, 인터넷 서점 주인이 될 수 있을 거야." 선생님이 말하는 미래는 어린 내가 미처 생각해보지 못 한 미래였다. 나는 그저 책이 아주 아주 많은, 가득 쌓인 공간을 가지고 싶었을 뿐인데. 그 후로 20여 년이 흘렀고, 나는 서점 주인이 되기에 충분한 나이가 되었다. 그리고 다행히, 서점은 사라지지 않았다. 물론 선생님의 예측대로 오프라인 서점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참고 : 2018 국내 출판시장의 현황 분석 https://brunch.co.kr/@eholee/26 )



2019 서울국제도서전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책들이 모이는 곳이다. 책을 좋아하지만 도서전은 처음이었다. 아마 브런치의 초대가 아니었다면 갈 생각도 못 했을 거다. 성대하게 열린 책잔치에 설레는 마음을 안고 참석했다. 코엑스 도서전 입구 앞에 도착해서 내가 믿을 수 없었던 건, 책을 좋아해서 모여 있는 사람들의 숫자가 너무나 많다는 거였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았다니... 도서전 지도를 펼쳐 위치를 확인한 후, 브런치하우위아 부스만을 향해 돌진했다. 하우위아는 책 <혼자 살기 시작했습니다>에도 나오는 (전) 동네 친구가 만드는 독립출판물 브랜드다. 서울국제도서전에서는 하우위아의 지금까지의 작업물이 모두 담긴 예쁜 무가지도 받을 수 있고, 책도 구매할 수 있었다. 개인이 이렇게 하나의 단단하고 세련된 브랜드를 가지기는 쉽지 않다. 항상 하우위아의 작업에 응원을 보낸다. 브런치는 플랫폼에 올라온 100편의 글을 QR코드 형태로 전시했는데, 그중 내 글도 하나 있었다. 책 <혼자 살기 시작했습니다>에 실린 '혼자 사는 삶의 타임라인'이다. 브런치 부스는 인기가 많아, 성심당 튀김 소보로 냄새를 맡으며 한참 기다린 후 들어갈 수 있었다. QR코드가 담긴 안내장과 굿즈를 받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온라인의 내 글이 오프라인에서 어떻게 전시되어 있는지 보는 건 색다른 경험이었다. '1인 가구' 주제를 선택한 관람객 중 몇 명이 내 글이 담긴 종이를 건네받았을까. 보신 분들에게도 즐거운 경험이 되었길 바란다.


ⓒ heyjune



나오는 길에 성심당 튀김 소보로를 사고 싶었지만, 어마어마한 줄을 설 순 없어 포기했다. 이 세상에는 책과 튀김 소보로를 좋아하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다. 기사로 읽었는데, 한강 작가는 서울국제도서전 강연에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유튜브 다음은 뭐지? 다시 종이책이 아닐까?
사람들이 아날로그에 굶주리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에 배고파 있다고 생각해요. 모니터 속에 존재하는 이미지의 총합이 아니라
손으로 만질 수 있고 크기와 무게가 있고
감촉이 있는 매체를 그리워하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중학생 때나 지금이나 나는 여전히 책의 미래를 예측하기 어렵지만, 유튜브의 미래가 책이 될 거라는 작가의 말이 허황된 꿈으로 느껴지진 않는다. 종이책을 손으로 만지고, 넘기고, 몰두하는 시간은 내 몸에 새겨진 소중한 경험이다. 도서전에서 만난 결코 적지 않은 사람들 모두가 그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지금도 어딘가에선 서점 주인을 꿈꾸는 작은 사람이 자라나고 있다. 그럴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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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ound_june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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