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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를담다 Aug 13. 2021

나도 그렇게 살고 있진 않았는지.

내가 험담하던그 사람들처럼.

자신이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들의 약점이 도드라져 보이는 것.


"장기기증 신청을 해서 아마도 병원에서 싣고 갈 거다"


예전에 엄마에게  암에 걸렸다는

친했던 삼촌 소식을 전했을 때가 생각이 났다.

상대방의 배려라곤 전혀 없는 냉정한 이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모습을 보곤 아차차 싶었다.


'혹시 살면서 나도 그러지는 않았을까?'

잘 알지도 못하면서

세상의 잣대를 기준으로

'다들'이라고 말하는 그들의 생각을

전혀 거르지 않고 받아들이기만 하고,

내 머릿속에 당장 생각나는 대로

타인의 이야기를 그렇게 쉽게 꺼내지는 않았을까?


갑자기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그랬다.

내상황과 내 생각이 우선이라

다른 이들의 아픔을 충분히 공감하지 못했고,

지극히 주관적으로 아니면 너무 감정적으로,

아니면 너무 부정적으로 대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준 게 아니라

공감한다는 듯한 느낌의 나의 이야기를 하느라 바빴다.

나의 상황과 생각을 늘어놓느라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지금 어떤 마음인지, 전혀 헤아리지 못했다.

듣고 싶지 않아 보이는 이들에게는

내 이야기에 집중하지 않는 눈빛이

오히려 화가 나고 서운했다.


왜 뭐든 말을 해야 하는 성격일까?

왜 자꾸 알아달라고 이야기하는 것일까?

나는 붙잡지도 않았는데, 시간은 저만치 흘러갔는데도

내 마음속 8살의 어린아이는

어디에도 가지 않고 나와 함께 살고 싶어 했다.


말의 품격(이기주/황소북스)

조선 후기 실학자 이덕무 수양서 <사소설>에 나오는 언어생활에 대한 이야기

"경솔하고 천박한 말이 입에서 튀어나오려고 하면 재빨리 마음을 짓눌러야 한다.

그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거친 말을 내뱉고 나면 다른 사람들에게 모욕을 당하고 해로움이 따르게 될 텐데,

어찌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가만 생각해보면

나는 늘 귀보다는 입이 먼저 열리는 타입이었다.

유리 멘털에 간이 작아  무언가를 시도하거나

실패를 그토록 두려워했음에도 불구하고

입이 먼저 나간 나는 아주 간이 큰사람이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지 않았던가.

나의 과거를 되돌아보면,

내가 아는 만큼만 보았고, 경험한 만큼만 행동했고,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했었다.

잘한다 소리를 듣고 싶었다기보다

못한다 소리를 듣는 게 더 두려웠다.

뭐든 시작할 때는 하기 싫은 건 최대한

미루고 싶어 미루고 미루다 못다 한 일도 많았고,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일상의 대부분을 필요 없는 일에 정성을 쏟고 있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얼 잘하고 못하는지,

내가 해낼 수 있는지 없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남을 의식하며 주변을 흉내내기 바빴다.

이런 내 삶 속 주변 사람들은 어땠을까?

딱 상상하는 그 정도의 사람들과 어울렸다.

그런데도 나는 그게 세상의 전부인양

혹여나 놓칠세라 두리번거리며 그들을 쫓아갔다.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 했고, 그탓도 남들에게 돌렸다.

남는 장사였다.

'모두, 대부분, 다들, 너도, 나도'라는 말속에

나의 책임은 없었으니까.


꼬리가 길면 잡힌다고 하더니,

어느새 내 꼬리가 잡히기 시작했다.

생각 없이 따라만 하다 보니,

순간순간 대처능력이 떨어져 마음에도 없는 말이 나오고,

나도 모르게 나온 말들은 다시 주워 담을 수도 없었다.

깜짝 놀랐지만 어쭙잖은 자존심에

미안하다는 말조차 나오지 않았고

얼버무리며 집으로 돌아와 자책하기를 반복했다.


나는 이런 나약하고 모자란 모습을 감추기 위해

떠들어 대고 있었다.

그렇다고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닌데

더 나은 사람인척 했다.

어리석게도 그러면 더 나아 보이지 않을까 착각했고

그래서 하지 않아도 될 이야기를 했고,

진짜 해야 될 이야기는 숨기거나 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부터 삶에 사연이 많던 터라,

강박처럼 씩씩하고 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의 가난함. 무지함. 어리석음

내 마음속에 있는 연약한 것들이 들킬까 봐

노심초사하며, 알아도 모른 척했고

몰라도 아는 척했으며, 없어도 잘난 체를 했다.


내가 공공연하게 정한 상의 모습

그대로가 나라고 정의했고

내가 그려놓은 그 모습을 놓지 못했다.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주지 못했고

정해놓은 내 모습을 지키기 위해

선택한 유일한 방법이었던 것 같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받아보지 못해서 일까?

엄마의 저 말이 그토록 내 가슴을 찌른 이유를

생각해보니 아마도  딸인 나에게 마저

그러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인 것 같다.


문득 엄마를 대신해

조건 없는 사랑을 해 줄 수 있는 존재를

(친구든 연인이든) 찾기 위해 '나 여기 있어요' 외치듯

부단히도 애쓰던 예전의 내 모습이 떠오르며 슬퍼졌다.

더불어 '어쩜 그럴까' 라며

이해할 수 없는 행동과 말들을 하는 이들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싫은 소리를 들으면  당장 내 생각을 끄집어내어

화를 내던 내가, 각자가 살아온 세상을 이해하며

그렇게 굳어질 수밖에 없었을 그들의 세계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나에게나 다른 사람에게 크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정도라면

'굳이 내가 어울리지만 않으면 되지'라며

그 상황을 넘길 수 있는 작은 여유도 생겼다.





모두들 그 누군가의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어 하지만

그 특별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누구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다.

내 것을 그만큼 내어줄 수 있는 마음이 없다면

어느 누가 자기 것을 이유도 없이 내어주겠는가.

내 마음속의 공허함과 허탈함은

이 근본적인 원리를 모르기 때문에 일어난 일들이었다.


이 사실들을 깨달으면서

법륜스님 말씀처럼 "알아차림"의 중요성을 늘 마음에 새기고 있다.


괴로워하지 말고 깨칠 수 있는 기회를 찾아보세요.

늙었을 때만 깨칠 수 있는

병이 났을 때만 깨칠 수 있는

이혼했을 때만 깨칠 수 있는

배신당했을 때만 깨칠 수 있는 도리가 있습니다.

원효도 해골바가지 물을 마셨다가 토했을 때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깨달음이라는 것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이 일어나는 곳마다 거기에 있어요

그것을 알아차리느냐 알아차리지 못하느냐에 따라서

세세생생 육도를 윤회하며 헤맬 수도 있고

단박에 해탈할 수도 있습니다.


1 화살은 내가 맞았더라도

2 화살은 내 아이가 맞지 않도록

우리 아이에게는 조건 없는 사랑을 통해

완벽하진 않겠지만 적어도

부분의 고민 만큼은 아이의 인생에서 덜어 내도록

더 많은 사랑을 해 주어야겠다고 다짐한다.


오늘도 어김없이 엄마의 이야기를 써버렸다.

우리가 생각하는 어린시절이라는 평생의 기억은

초등학교때까지라고 하던데 나도 그런가 보다.

그때 받아보지 못한 엄마의 사랑이 매번

지독한 원망으로 다가오는건 왜일까?


엄마의 조건없는 사랑을 갈구하는것은

욕심일 뿐이라는 사실을 또 한번 깨닫지만

쉽게 놓아지지도 않는걸 보면

하루 이틀에 해결될 문제는 아닌듯 하다.

오늘도 끊임 없이 나를 되돌아본다.

왠지 긴 하루가 될 듯 하다.



선사들의 이야기를 여러분의 생활 속에서 고뇌하있는 문제와 비교해 살펴보세요.

자신의 생활 속에서 바로 살펴야지 남들이 먹다가 버린 쓰레기통을 뒤지듯

내가 체화하지 않은 채로 남의 깨달음을 뒤지면 아무 소용없습니다.

자신의 인생의 문제를 단도직입으로 살펴서 해결해야 합니다.

그러면 인생살이가 결코 복잡하지 않습니다.

죽을 때까지 애써도 해결 못하는 깨달음이 아니라,

단박에 깨달으면 나머지 인생은 자유롭게 살 수 있습니다.

죽을 때까지 수행해서 죽기 전에야 깨닫는 것이 목표가 되면 안 됩니다.

먼저 이치를 깨닫고 나머지 인생도 행복하게 살아야 합니다.


(지금 여기 깨어있기 / 법륜스님 /정토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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