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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를담다 Oct 31. 2021

내 삶의 주인이 된다는 것

살아가면서 삶의 뚜렷한 목표를 갖는다는 것은 나의 평생의 숙제일 것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뀌는 마음과 생각들. 뚜렷하게 정하지는 못했지만 그 생각들이 차곡차곡 쌓여

'어제보다는 괜찮은 내가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하루를 시작해 보려 노력한다. 그러다 보니

이렇게 하루하루가 모이다 보면 어쩌면 '썩 괜찮은 사람'이 될 것 같다는 작은 기대감도 생긴다.

내 기분과 감정에 따라 매번 바뀌더라도 말이다.


경험을 통해  마음속에서 천당과 지옥을 오가고 산과 들과 바다를 건너고 풀숲을 헤매며 만든 나만의 소신이 없다는 것은 속이 빈 껍데기와 사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그건 스스로 만들수 밖에 없고. 그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단단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밑거름이라 믿는다. (그러지 못했던 과거의 나는 매번 참 괴로운 밤을 보냈었다.) 그래서 나는 매일 아침 생각을 정리하며 하루를 시작하려 노력한다.

어제 했던 자잘한 실수들. 마음속 한편에 미미하게 혹은 아주 크게 자리 잡은 불편한 마음들.

새벽 산책을 통해 속을 알 수 없는 '망망대해 깊은 바닷속' 같은 내 마음속답답한 무언가를 끄집어내어 나열해 보다 보면  처음 발을 디뎠던 산책길보다 돌아오는 산책길에서는 조금이나마 해소되는 듯한 가벼운 기분을 느낄 수 있다. 홍진경이 이야기하지 않았는가. 행복은 '자려고 누웠을 때 걸리는 게 하나도 없는 것'이라고.(이분은 아무래도 찐 천재가 맞다.)

매일 아침 6시에 바라보는 바다.

말이 좋아 운동이고 산책이지 새벽마다 자전거를 타고 바람을 가르며 가는 그곳은

나를 비워주고 채워주는 나만의 퀘렌시아, 사색의 장소이다.

요즘 나의 최대의 고민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내가 아닌가?"이다.

단순한 문제이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나에게는 절대 단순하지만은 않은 문제다.

꼭 무언가를 해야만 내 마음이 안심이 되고 스스로가 가치 있고 쓸모 있는 존재 같았다.

아이가 생기고 육아를 도맡아 하는 순간부터 나는 돈을 벌지 않기 때문에 집안에서 내 쓰임새를 찾아서 애쓰고 노력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 와이프, 며느리, 딸이 아닌 가정부처럼  눈치를 봤던 것 같다. 옆에 계셨던 어른들이 크게 한몫했다. 너는 집에 있으니 나가서 돈 버는 신랑의 뒷바라지를 해야 한다. 남편 힘들게 하지 마라. 그럼 못쓴다. 애는 네가 봐라. 돈 버는 게 얼마나 힘든 줄 아느냐. '애옷이 왜 그렇냐 남들 보기 좋게 입혀야지' '신랑 얼굴이 왜 그렇냐''밥은 잘해주냐''애들 학원 안 보내냐''누구애는....'


'그럴 수도 있다'라고  따뜻하게 이해해주는 어른은 한 명도 없었다.

'고생한다'라는 말은 윗집 할머니께 몇 번  들었다.

어떤 어른은 '고생한다'는 뒷말에 '그때가 제일 좋을 때다'라는 말을 덧붙이셨다.

'그러면 그때로 돌아가실래요?'라고 물으면 아무도 안 돌아간단다.ㅋㅋ


'애 키우는 엄마들이 다 그렇지''나도 그렇게 살았다''일하면서도 애 키웠는데 집에서 애 키우면서 말이 참 많다' 나는 그냥  집에서 애나 보는 팔자 편한 여자로 낙인찍혔다. 그렇게 이야기하시는 어머니 세대들과 비교하다 보면 나도 할 말이 많다. 솔직히 그때는 여러 명 되던 형제자매들끼리 컸고 동네에서 왁자지껄 놀며 컸고(걸음 뗄정도 되면 집에 없었다.) 화나면 때리기도 하고, 엄마가 일하러 가면 집안일도 서툰 아이들이 했으며, 공부랑 숙제는 스스로 하는 것 아니었나? 수용해주기보다는 '어디 어른한테'라는 말로 애들을 엄마 성질대로 때리고 키우지 않으셨나?

그래서인지 '그럴 수도 있다'라고 이해해주는 오은영 박사님이 인기가 많으신가 보다.(나도 참 좋아한다.)


지금은 혼자 두고 나갈 수가 있나. 집안일을 시킬 수가 있나. 밥을 차려먹으라고 할 수가 있나. 성질대로 때릴 수가 있나. 사교육을 안 시킬 수가 있나.  세상이 원하는 대로 커주면 참 좋겠지만 딱 반대로만 크려는 애를 보면서 어른들은 또 덧붙였다 '엄마 탓'이라고.

애가 놀다가 다쳐도, 공부를 못해도, 버릇이 없어도, 친구가 없어도, 아파도, 신랑이 집에 늦게 들어와도, 신랑 회사생활이 힘들어도, 집이 지저분해도, 돈이 없어도, 끼니를 놓쳐도,

모든 게 '엄마 탓' 고로 '내 탓'이 었다.

그게 내 인생의 최대의 족쇄였다. 내 탓이 되는 게 싫어서 그랬던 거다. 에일리 노래에도 나오듯이 '보여줄게 완전히 달라진나~'하며 나를 증명하려고 부단히도 애를 썼다. 내 노력의 최대치를 가져다가 써본들 '더더' 아니면 그거 해결되었으니 이번에는 '다른 거'로 나를 옭아매었다. 끝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들 이 아이의 엄마가 처음이고, 이 신랑도 처음이고, 이 시댁, 친정도 다 처음인데 왜 그렇게 못하는 것만 콕콕 집어서 사람을 괴롭히는지 모를 일이었다. 처음이니, 모르니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이해보다는 가르치려는 사람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모두들 각자의 기준이고 판단이고 불안감이다.

본인이 가지지 못했고 해보지 못했던 후회가 가득한 어른들의 푸념과 대리만족이었다. 동동거리는 내 모습을 보고 답답해하면서도 세월이 지나온 자리를 통해  바뀐 위치에서 날 보며 우월감을 느끼지 않으셨을까?


남들처럼. 도대체 그 남들은 다 어디 있는 걸까?


그러던 어느 날 '그래. 사실 지금 내가 나가면 신랑만큼의 돈은 벌지 못하겠지. 하지만 나도 돈을 벌 수 있잖아. 안되면 내가 돈 벌지 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더니 왠지 모를 자신감이 생겼다. '왜 적은 돈이라도 너도 내 돈으로 애 키우며 24시간 살림해봐라.'싶었다. '어머니. 저 돈 벌어 오는데요? 바깥에 나간 사람 신경 쓰이게 하면 안 된다면서요. 애들 얼마나 잘 키우나 한번 봅시다. 저 돈 버니까 신랑한테 밥도 좀 얻어먹고 밤늦게 까지 돈 벌게요. 제가 일이 많고 회식이 있어서요. 그간 애들 남눈에 잘살게 보이도록 옷도 잘 입히고 뒤처지지 않도록 공부 좀 잘 봐달라고 하세요. 제 뒷바라지도 톡톡히 하도록 신랑도 좀 잘 가르쳐주세요.'

혼자 상상하며 웃음이 나왔다.

참. 나는  생각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밤을. 새벽을 지새웠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자연스럽게 육아를 시작하면서 큰아이가 7세쯤 되던 때였다. 당연했던 것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이 어렴풋이 느껴졌다.

사람이 태어나면 당연히 결혼을 하고, 당연히 아이를 낳고, 당연히 엄마는 육아를 도맡고, 당연히 올바른 교육을 시키고 당연히 아이에 대한 모성애가 있어야 하고 당연히 신랑 내조를 잘해야 한다.... 육아라는 것을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정말 뫼비우스의 띠처럼  24시간 풀타임으로 아이를 모시고 살아가지 않은가.( +신랑까지 말이다.)

내 시간이라고 짬을 내려고 보면 정말 새벽에 일어나지 않는 이상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하지만 당사자가 느끼는 감정을 그 누가 알겠는가.

내가 요즘 소름 돋게 가장 무서운 말이 "엄마 놀자"라는 말이라는 사실을. (난 공룡놀이를 싫어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내가 아닐까? 잘해도 욕먹고 못해도 욕먹는 거 그냥 나대로 좀 살면 안 되나?

지금 상황에서 나만 빠지면 어떻게 될까?라는 생각을 했다. 모르긴 몰라도 나만큼 하는 사람을 들이려면 현시세로 월 500 이상은 줘야 할게 분명했다.

뭔지 모를 자신감이 생겼다. 어차피 욕먹을 거 그냥 하고 싶은 대로나 해보자.

사람들이 원하는 것, 세상이 원하는 것 말고, 보란 듯이 보여주겠다는 욕심 말고  딱 내 능력치만큼만 말이다.

나에게 필요한 건 용기였다. 욕먹을 용기 말이다.


그러면서 지금 내가 와있는 이 자리에서 바라보는 시선을 달리 해보기로 했다. 

지금껏 나열한 건 너무나 신나는 상상(?)이었지만 지금 당장 상상처럼 할 수 없는 일이지는 않은가.(부당하다 큰소리는 쳤지만 아끼고 아이를 돌보는 것이 지금 나에게는 더 맞는 일이라는 사실을 나도 안다.)

생각을 달리해서 기왕 하는 거 이참에 큰 틀의 인생을 설계하고 실천하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또 한다면 하지!'





얼마 전 이나가키 에미코 작가의 '퇴사하겠습니다'라는 책을 접하게 되었다.

아사이 신문사에서 오랜 시간 근무하다 40대 중반에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 아프로 헤어를 (뽀글뽀글 폭탄머리로 설명하겠다)하고 50에 회사를 그만두었단다. 그리곤 '회사라는 굵은 동아줄을 놓아버린 나는 세상의 이곳저곳에서 발견한 줄을 붙잡고 그런대로 잘 살아가고 있다'라고 이야기한다.


회사에서 일하지 않는 사람들도 분명 사회를 지탱하고 있습니다.

자영업자들, 프리랜서로 일하는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돈을 벌지 않는 사람들도, 예를 들어 전업주부나 일을 그만둔 고령자들, 사정이 있어서 일을 못하는 사람들, 아이들, 그들 모두가 이 사회를 지탱하고 있지 않나요? 요리를 한다. 청소를 한다. 손자들과 놀아준다. 무언가를 산다. 이웃과 인사를 나눈다. 누군가와 친구가 된다. 누군가에게 웃는 얼굴을 보여준다. 세상이란 말하자면 이렇게 '서로를 지탱해주는 것'입니다. 꼭 돈이 매개가 되지 않더라도 서로를 지탱해 줄 수만 있다면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회사에서 일하다 보면 그런 것들을 잊어버리게 됩니다. 매달 월급이 입금되는 데 익숙해지다 보면 어느덧, 저도 모르게, 일단 돈을 벌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믿어버리게 됩니다. 그리고 월급을 많이 받는 사람이 더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해버리게 됩니다.


그녀는 회사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회사란 나를 만들어가는 곳이지 내가 의존해 가는 곳이 아니라는 것'

연달아 '먹고산다는 것'이라는 책을 함께 읽으며  늘 고민했던 돈이 없어도 살 수 있는 삶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어린 시절의 결핍 때문에 초등학교 때까지는 아이들과 집에 있어주고 싶어 일을 하지 않았었다. 그러다

'아이들 사교육비나 좀 보태볼까? 우리 집 재산도 좀 늘어났으면 좋겠다' 하는 욕심에 처음과는 다른 마음으로 아이들을 까지 데려가 언니 가게에서 1년 넘게 아르바이트도 했었다. 얻은 게 있다면 금전적이 었던 것이겠지만, 사실 생각보다 그다지 표가 나는 돈도 아니었고, 처음에는 내가 무언가 할 수 있는 게 좋았지만 갈수록 길을 잃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그냥 내가 좀 아끼면서 살면 되지 않을까?라는 결론에 이르렀고 다시 아이들 곁에 머물렀다. 그리곤 지금보다 더 아끼는 연습을 해보자고 다짐했다. 내가 일을 하지 않고 아이들 곁에 머물더라도 지금보다 더 아껴 꾸준히 돈을 모으는 연습을 하다 보면 어느덧 신랑의 수입이 끊기더라도 최소한의 돈으로 살아가는 삶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타인이 보기에 많지는 않아도(이것도 각자가 다 다르니까) 나름의 능력껏 아껴서 모아둔 돈이 있다면 앞으로도 계속 살아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줄어들지 않을까?싶었다.

파이어족을 꿈꾸었으나 아이가 둘이나 있는 파이어족은 아직 보지 못했으니 이 방법은 나에게 꽤 근사했다. (파이어족을 조금만 일찍 알았으면.. 하고 후회한다;)


그러던 어느날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보다가  나 혼자 눈물을 펑펑 쏟는 일이 벌어졌다.(역시 나는 감정이입이 심한 편인 게 확실하다.) 그 삶이 나와 결이 잘 맞았던것 같다. 물질이 아닌 노동의 신성성과 단순한 그 삶이 현재의 가치관과 잘 맞아 떨어졌다. 그래서 내가 그동안 생각했던  놓치고 미루던 일상의 작은 부분들을 하나씩 실천해보기로 결심했다.

먼저 후원하고 있던 그린피스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화장실의 플라스틱 줄이기 활동에 나섰다. 당시에 보았던 아날로그 살림이라는 책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작가님처럼 하진 못해도 내 나름대로 아이디어를 내어 조금씩 실천하기 시작했다.

알밤이 담겼던 하얀 망을 잘라 레이스 끈을 넣어 도브 비누를 넣고 화장실에 매달았다. 비누가 무르지 않고 망이 거끌거리는 맛이 있긴 해도 생각보다 쓰기에도 편리했다. 지금은 그 비누 하나로 머리도 감고 세수도 하고 샤워도 한다. 여러 개 사용하던 전과 비교를 해보자면 그간의 시간이 억울할 정도로 차이가 없었다. (아미코 작가님 말씀이 맞았다. )그래서 내친김에 화장품도 스킨 하나. 6천 원짜리 아보카도 오일 하나 (이것도 머리, 몸, 얼굴, 다 바를 수 있다)로 썼다. 가을쯤 되어서는 아이크림을 하나 더 바르는 것으로 끝을 냈다.


조금씩 실천하다 보니 이제 알겠더라.   


네가 가니 나도 가고,

네가 하니 나도 하고,

네가 사니 나도 사고,

네가 먹으니 나도 먹고,


아차 하다 보니 내 의지라곤 하나 없이 끊임없이 주변만 살피며 따라가게 되었던 것이었다. 습관을 고치려고 노력 중이지만 우리 집 화장실에 있는 물에 젖은 도브 비누 같은 내 멘탈이 아직도 무섭다. (마르면 딱딱해 지기도 한다;) 어쩌다 보는 티브이에서. 유튜브에서 sns에서 외쳐되는 말들에  금세 현혹되어 버릴까 봐. 혹은 내가 현혹되지 않더라도 나처럼 마음이 고픈 사람들이 이미 현혹되어 버렸을까 봐. 나도 찰나에 그들처럼 꾐에 넘어가 덥석 물어버릴까 봐 고개를 저으며 얼른 발을 뺀다. 혹시나 호기심에 예전처럼 돌아갈까 봐 발가락 하나라도 넣지 않기 위해 클릭조차 하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이유도 돈 벌기를 포기해서다. 버는 돈의 액수가 아니라 나의 만족도로 일을 평가하기에 내가 항상 즐겁게 일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어쩌다 돈의 액수로 나의 값어치와 자존심을 매기는 실수를 범할 때도 있고 그럴 때마다 나는 항상 초라한 패자가 된다. 내가 암만 돈을 많이 받아도 내 위에는 승자들이 층층 계단처럼 한없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 평가의 기준을 돈에 두는 한 나는 항상 패자로서 우울할 수 밖에 없다. 나는 소중한 존재이고 내 노동력 또한 소중하기 때문에 그 평가를 남에게 맡기거나 돈으로 재고 싶지는 않다. (고등어를 금하노라/임혜지/푸른 숲/22p)


 


내 옷장에는 20년 넘은 옷들이 대부분이다. 내가 처녀 시절 몸매를 유지하는 이유에는 옷을 새로 사지 않으려는 의지도 포함되어 있다. 기본 생활비가 우리도 모르는 새 야금야금 올라가지 않도록 조심하는 일에도 습관이 들었다. 다달이 기본적으로 드는 생활비가 높으면 높을수록 사람은 생존이 부담스럽고, 선택의 자유가 줄어들고, 물질의 고마움을 모를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 덕에 항상 돈이 남는다. 돈 쓸 일이 생기면 편안하게 쓸 여유가 있어서 오히려 남보다 부자라는 기분으로 살고 있다 (고등어를 금하노라/임혜지/푸른 숲/23p)


나는 지금 답답하리만큼 최신 유행 패션도, 트렌드도, 노래도, 맛집도, 티브이 프로그램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두렵지 않다. 오히려 거꾸로 가는 이런 모습의 내가 더 좋다.

난 앞으로도 전혀 따라갈 생각이 없다.

아이를 키우면서 듣는 무수한 말들. 수많은 정보들이 폭풍급으로 휘몰아칠 때

세상을 살아가면서 주변 사람들이 나의 모든 것을 아는 듯이 흔들어 댈 때에도 두꺼운 밧줄로 단단하게 동여매어 나를 붙들었다.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다.


예전의 나는 타인에게 선물을 할 때 물건은 허술하더라도 포장이 멋진 선물을 선호했었다.

"나 이 정도야~"라는 느낌이 이런 선물을 당신에게 줄만큼 아주 잘 살고 있다고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건 내가 아니었고 내 마음속에서 정한 나의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분수에 넘치는 행동이었다는 것을 어느 순간 알게 되었다. 그 가짜의 내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시간이고 돈이고 마음까지 참 애를 많이도 썼다. 그건 나를 위한 게 아니라 그들에게 과시하고 싶은 욕망일 뿐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제는 소박하지만 내 방식대로 마음을 내어주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따뜻한 고구마를 1시간씩 구워서 고마운 사람들과 나누는 방법과 오쿠에 5시간씩 갓 삶은 따뜻한 계란을 첫아이 둘째 아이 선생님이나 챙기고 싶은 주변 사람들에게 몇 개씩 나누는 것. 지금의 나에겐 이것이 부담 없이 마음을 나누는 법이다.(의외로 이런 작은 마음을 내면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른다) 과거에 했던 돈으로 산 선물을 생각해 보면 그런 걸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부담이었을 테고, 비싼 선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에는 성에 차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딱 그선으로만 사람을 만났을 것이다. 어쨌든 나는 끼지도 못한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이제는 끼고 싶지도 않다.) 선물이 아닌 뇌물로 다가갔던 부담감보다 지금의  마음이 더 가볍고 따뜻하다. 조금 촌스러워도 괜찮고, 조금 가난해도 괜찮다.

비교하지 않고 내 마음대로 내 속도대로 그냥 살아내도 괜찮다. 이만하면 괜찮다.


이렇게 살다 보니 가장 좋은 점은

화려하지 않아도 꾸미지 않아도 내 진짜 모습이 들키지 않까. 노심초사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그냥 내가 진정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마음속 깊이 떠올려보고 내가 나아갈 길을 다시 한번 되새겨보고

넘어졌다 일어났다가 쉬었다가 다시 걸으면 된다. 것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내 마음대로 말이다.


나를 감추려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내 모습 그대로 살아본다면 스트레스가 줄지 않을까? 생각한다. 

(저변에는 상대에 대한 존중과 진심이 필요하다.)

나에게는 대화를 더 이상 끌고 나가기 힘든 사람을 만나거나, 원색적인 비난이 오가는 곳이라면  즉시 그곳을 떠나자. 는 확고한 신념도 생겼다. 주변에서 윙윙 거리며 내 자존감을 깎아먹는 이들과 길게 어울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친분때문에 곁에 두더라도 언젠가는 해를 끼칠 사람이다. 만약 내가 그를 오해했다면 인연이라면 다시 좋은 관계로 만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된다.

'아직도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내가 아닐까'의 대한 답은 현재 진행형이지만 여기까지의 생각만으로도 이미 얻은 게 많으므로 참 감사한 일이다.(나도 아직 잘 되지는 않지만 말이다.)

앞으로 살아나가면서 적어도 나는 나의 아이들에게 '그래도 된다'는 어른이고 싶다.



부부는 닮는다던가. 하.

신랑이 이나가키 에미코의 아프로헤어 같은 요상한 머리를 해왔다.

나보다 더하다 싶다.

생각을 공유하며 같은 길을 갈 수 있는 이가 있다는 것이 좋다. 

하지만 알고 보면 그도 남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나 자신은 아니지 않은가)

사랑은 하지만  지나친 사랑은 앞으로도 하지 않을 예정이다.

신랑 미안해. 나도 이제 눈치보지 않고 내 삶을 좀 살아야겠어.



 환하게 불을 밝힌 특급 열차가 천둥 치는 소리를 내면서 전철수가 일하는 작은 공간을 흔들었다.

"사람들이 아주 바빠 보이네요. 뭘 찾으러 가는 걸까요?" 어린 왕자가 말했다.

"그걸 기관사도 모르는 일이야"전철수가 말했다. ----(중략)

"저 사람들은 사는 곳이 만족스럽지 않았나 봐요?"

"자기가 사는 곳이 만족스러운 사람은 한 명도 없어." 전철수가 말했다.

그러자 환하게 불을 밝힌 세 번째 특급 열차가 천둥이 치는 것처럼 요란한 소리를 내며 들어왔다.

"이 사람들은 첫 번째 기차의 승객을 쫓아가는 건가요?" 어린 왕자가 물었다.

"그들은 아무도 쫓아가지 않아.... 기차 안에서 잠을 자거나 하품을 하지. 오직 어린이들만 유리창에 코를 바짝 대고 창밖을 본단다." "자기들이 뭘 찾는지 아는 건 어린이들 뿐이에요. 어린이들은 낡은 헝겊 인형에 시간을 쏟아부어요. 그렇게 낡은 헝겊 인형은 아주 소중한 것이 되지요. 그래서 그걸 빼앗기면 아이들은 울고 말아요." 어린 왕자가 말했다. "어린이들은 행복하겠군" 전철수가 말했다.


(어린왕자/생텍쥐페리/인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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