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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루 Jun 07. 2018

유난떤다고 말하지 마세요



비교적 평탄한 집안의 맏딸로 자랐다. 이렇게 말하니 흔한 자기소개서의 첫구절같기도 하다. 사실 여느집이나 그렇듯 작거나 큰 문제들은 언제나 있어왔지만 표출하는 것보단 감내하는 게 편하다고 생각하시는 부모님의 기질 덕분에 비교적 화목한 분위기에 가정에서 컸다고 자부한다. 게다가 미운 소리는 못하는 부모님이시라 하고 싶은 건 모자란 형편에도 별다른 반대 없이 다 할 수 있었고 인생의 큰 좌절이나 아픔같은 건 없었다. 


그렇게 삼십년을 넘게 살아왔다. 편하게.

남들은 어렵다는 취업도 쉽게 쉽게 되었고 사회생활도 어쩌다 보니 적성에 맞아 무던하게 해왔다. 취업이 일찍된 탓에 막내 생활을 오래했다는 게 이유일수도 있겠다. 사실 방송 작가일에 재능이 있었다고 말하긴 어렵고 그냥 여러 일에 이런저런 재주가 많아 예쁨 받으며 잘 버텨왔던 것 같다. 싫은 사람도, 나와는 전혀 맞지 않다고 여긴 사람도 물론 있었지만 '사회생활'이라는 꼬리표를 달면 사실 못 버틸것도 없었다. 하지만 여느 지방 방송국이 그렇듯 미래는 뻔했고 같은 일상이 매년 반복되는 그 생태계가 못내 못마땅해 그만두었다. 한 작가 언니의 '매달 아이템은 어차피 정해져있어. 그저 돌려 막는 거지.'라는 말은 결정적이었다. '그런 일인 줄 알았다면 안했을거예요.' 라는 말은 끝내 하지 못하고 삼켰었더랬다.


방송국을 관두고도 여러 가지 일들에 손을 대다가 결국 대학때부터 하던 개인 과외를 다시 시작했다. 여기엔 사실 재능이 좀 있는 편인듯해 학생들이 끊이지 않았다. 재능은 있지만 좋아서 하는 일은 아닌, 당연히 보람이 적었고 또 당연히 스트레스도 거의 없었으니 일로는 최고였다. 이 밖에도 여러 인연이 닿아 홍보 영상 시나리오라던지 국책 사업, 공모전 사업등에도 참여해 컨설팅도 하고 스토리텔링 원고도 쓰고 있다. 여전히 일은 일이라 하기 싫은 자잘한 것들도 다 포함이 됐지만 전보단 훨씬 크리에이티브하고 내 아이디어가 기꺼이 반영이 되는 환경이 좋았다. 하지만 이것도 영원한 건 아니라 요즘은 다시 내 미래의 '일'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다. 


물론 여기엔 일하지 않고도 돈을 벌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압박감도 크게 작용했다. 

1의 일을 하고 1의 대가를 받는 게 아니라 5의 기반으로 일을 하지 않고도 0.5의 대가를 받는 일을 찾아서 헤맸다. 열심히 하고 싶은 것 하며 지낸 지난 삼십여년은 그것대로 만족하니 앞으로 안정감을 찾는 게 새로운 문제가 됐다. 


하지만 

그런 내게 사람들은 말한다. 

여태 내 라이프스타일에 별다른 말 없으시던 부모님도 말한다. 

세상은 내게 말한다. 

유난스럽다고. 







요는 확실했다. 지금 일을 갈고 닦아 안정감있게 끌고 나가면 되는데 왜 굳이 일을 벌리냐는 거였다. 가령 작은 보습학원이나 공부방 같은. 어릴때부터 결혼엔 뜻이 없던터라 그 부분을 부모님이나 주변에 늘 주지시켜왔고 이 나이가 되도록 결혼에 대해 큰 말씀하지 않으시는 두 분을 보며 이제 두 분과 크게 다툴일은 없구나 큰 산을 넘었다고 생각했는데 부모님은 아무래도 결혼보다는, 생활의 안정성을 유지하지 못하게 되는 것- 새로운 일을 벌이다 지금의 일을 놓치게 될까봐 걱정하시는 듯 했다. 이해해요, 하지만 엄마 아빠. 지금 하는 일도 소위 말하는 철밥통은 아니예요. 제가 아파서 드러눕게 되면 당장 수입이 없어지는 일이에요. 프리랜서라 휴가도 병결도 없어요. 


친구들은 또 이렇게 말한다. 뭘 진득하게 하는 꼴을 못본다고. 방송작가도 몇 년 하다 그만둬, 한국어도 몇 년하다 그만둬, 애들은 좀 길게 가르치나 했더니 원고를 쓴다고 매번 밤샘을 하길래 내 일찌감치 알아봤다. 이제 그만 정착 좀 하라고. 얘들아, 내가 정착에 능한 사람이었으면 일찌감치 시집을 갔거나 안정적인 회사에 취업을 했겠지.


일하지 않고 돈을 버는 거의 유이한 방법은 건물주가 되거나 창작자가 되는 거라는데 건물주는 이미 틀렸고 그나마 가능한 게 잔재주로 글이라도 써 창작자가 되어 저작료라도 받는 건데 얼마 전 본 한 잡지의 기사에 따르면 이젠 로봇이 소설도 쓰고 기사도 쓴단다.






그러니 내가 유난떨지 않게 생겼나요? 내겐 책임져야 할 가족도 있고 (엄마 아빠가 들으면 콧방귀를 뀌시겠지만) 작고 예쁜 고양이도 한마리 있다구요. 나이가 들어 일은 못하는 순간까지 상상안해도 당장 다음달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어떻게든 안정감을 찾아야해요.


그러니 유난떤다 마세요. 

유난떨어도 충분히 버거운 세상이거든요. 

아둥바둥 살아내야 겨우겨우 살아지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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