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에 있어 누군가가 더해지고 사라지는 건 그 이름을 쓰고 지우는 일.
오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다거나 알고 지내던 누군가와 연을 끊어내거나 이사를 가면서 그 동네의 세탁방, 부동산, 운동화 빨래방의 전화번호를 지우는 건 참으로 씁쓸한 일이다. 지운 그 자리에 앞으로 새롭게 더할 곳들과 사람들이 생겨나겠지라는 기대섞인 마음으론 채우지 못할 아쉬움이 있다. 이름을 지우고 새 이름을 다시 적어 넣어도 여전히 그 자리엔 깊이 눌러쓴 이전의 이름의 자국이 남는다. 왜 내 인생은 돌같지 않아 이름을 지우고 지우고 또 지워내야만 하는 걸까, 돌에 깊고 어여쁘게 새겨넣은 이름을 평생토록 가져가고 싶다는 건 다만 나의 욕심일까. 가끔 잘 지워지는 이름을 보면 애초에 내가 약하게 쓴 건 아닐까 끝을 준비하고 처음을 맞이한 건 아닐까. 하는 미안함이 든다. 한 번의 지우개질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작은 관계가 무덤처럼 쌓여만 간다.
왜 늘 관계에 최선을 다하지 못한 나만 우리의 너머-
그 곳에 무덤같이 쌓인 관계의 찌꺼기와 함께 덩그라니 남는걸까.
이 모든건 지우개를 든 나의 몫으로 남아 있는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