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로운 Dec 01. 2024

30화. 거지에다가 예의도 없었어요?

석훈 

람야이와 아농낫이 지게차 운전석에 붙어 서서 도대체 뭘 하는지 모르겠다. 근무 시간 중에 저렇게 데이트를 해도 되는가? 계속 쳐다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다가 지게차 운전석 너머로 람야이와 눈도 부딪혔다. 안 본 척 얼른 컴퓨터로 눈을 돌렸다.     


조금 있다 보니 람야이가 운전대를 잡고 돌리고 옆에서 아농낫이 몸을 붙이고 람야이의 손 위에 자기 손을 얹고는 돌리며 뭐라고 얘기하며 웃고 난리였다. 뱃속에서 불같은 게 치솟아 올랐다.    

  

둘이 사귀는 사이라고? 뱃속에서 치솟은 불이 심장을 타고 올라가 머리 위에서 연기를 내는 것 같았다. 이대로 있을 순 없다. 둘에게 복수를 해야 한다. 지혜에게 문자를 보냈다.      


“지난번 센터 앞 초밥집 괜찮더라고요. 오늘 저녁 같이 먹을래요?”     


단번에 답이 들어왔다. 화면 속에서 얼굴 큰 토끼가 좋아 날뛰었다.      


비교적 경기도 구석진 곳에 있는 센터 앞에 이렇게 고급스러운 초밥집이 있다는 게 신기하다. 내부가 넓어 쾌적하고 작은 연못도 있다. 저녁이라 그런지 낮은 조명까지 은은하게 켜 점심 먹을 때랑은 다르게 분위기가 고급스럽다. 지혜의 명품 실크 원피스랑 잘 어울리는 분위기다.      


“I had trip to West coast when I was in New York for study. With friends from Korea, we started in LA and went for Las Vegas. We rent a car. (뉴욕에서 공부할 때 서부 여행을 갔어요. LA에서 라스베이거스로 친구들이랑 여행을 갔거든요. 차를 렌트해서요.)”  

   

“미국은 동부랑 서부가 정말 너무 다르지요.”      


“Seriously. (정말요.)”     


그때 문이 열리고 나는 눈이 커졌다. 들어오는 사람은 람야이와 아농낫이었다. 이런 델 다 오다니. 하긴 아농낫이 태국에서는 재벌집 셋째 아들이라고 했다.      


그들은 우리를 금방 눈치채진 못했다. 아농낫이 테이블을 안내해 달라고 식당 직원에게 묻는 듯했다. 그 사이 람야이가 이리저리 둘러보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서로 놀랐다.      


람야이

이런 곳에서 석훈을 만나다니. 그것도 지혜 이사와 함께. 심장이 쿵 떨어지는 것 같았다.      

둘이 사귀는 사이인가? 하긴 센터에서도 둘이 얘기하는 걸 가끔 보기는 한다.    

 

더구나 지혜는 평소처럼 하늘거리는 실크 원피스 차림에 반짝이는 은색 하이힐을 신고 얼굴에서는 하얗게 광택이 났다. 반면 일하고 급하게 샤워만 하고 머리도 제대로 못 말리고 태국에서 가져온 티셔츠나 아무렇게나 입고 온 주제라니. 너무 비교가 된다. 아농낫에게 말했다.  

    

“ไป. ที่อื่นกันดีมั้ยครับ? (저기. 다른 데 갈까요?)”     


그때 지혜가 우리를 발견하고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러자 아농낫이 석훈과 지혜를 알아챘다. 눈을 반짝하더니 내 팔을 잡고 말했다.     


“ที่นี่ดีอ่ะ. กินที่นี่เลยครับ. (여기 좋은데. 그냥 여기서 먹어요.)”     


괜히 여기로 왔다. 센터 앞에는 식당이 많지 않은데 그중 아농낫에게 어울릴 만한 식당이라 왔는데 다른 데 갈 걸 그랬다.       


석훈과 지혜가 앉은 테이블 옆 테이블이 비어 있었다. 아농낫은 거기를 가리켰다.  

    

“저기가 좋겠어요. 저 자리로 할게요.”     


석훈과 지혜가 빤히 보고 있어서 싫다고 얘기할 수 없었다. 식당 직원이 얼른 안내를 해 아농낫이 성큼성큼 그 자리로 걸어갔다. 할 수 없었다. 아농낫을 따라갈 수밖에. 아농낫은 석훈과 지혜의 테이블이 보이는 자리에 앉았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석훈과 등을 맞대는 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자리에 앉는데 지혜가 영어로 뭔가 얘기하는 게 들렸다.      


“Wow! Then South East workers now act like rich Koreans. How can they come to high quality restaurant like this. (와우! 이젠 동남아 사람들도 아주 배가 불렀네요. 이렇게 비싼 레스토랑에 한국인처럼 오고.)”     


석훈의 등 뒤 의자에 앉으면서도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었다. 그의 등에서 뭔가 기운이 뻗어 나오는 것 같았다. 기분 좋지 않은 기운이. 석훈은 지금 어떤 얼굴일까? 너무 궁금했다.      


지혜는 계속 영어로 쾌활하게 떠들어댔다.      


“Seriously, US is so large. West coast is very different with East Coast like New York like different countries. In New York, I don’t need a car because of subways and taxies but in LA, I can not go anywhere without car. (진짜 미국은 동부랑 서부가 너무 다르더라고요. 뉴욕에 있을 때는 자동차가 필요 없었는데 캘리포니아 가니까 차가 없으니 꼼짝도 할 수 없었어요.)”     


“It is like you don't have any feet. (발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죠.)”     


석훈도 영어로 말하고 있었다. 무슨 말을 하는지 더 궁금해졌다.  

   

“Ha! Ha! Ha! Really! 석훈! You are so funny! I filled up a car I rented in LA and started to Las Vegas. On the way, there is a dessert in Nevada. (맞아요! 하하하. 상무님! 정말 유머러스하시다. 그런데 LA에서 렌트한 차에 주유를 하고 라스베이거스로 갔거든요. 중간쯤이 사막이잖아요.)”    

  

“Did you filled up the car on the way? (중간에 기름 넣었어요?)”     


“I had to. Gas stations come up very often in California. (넣어야 했지요. 캘리포니아에서는 주유소가 금방금방 나타나잖아요.)”     


“It is like a California law. (마치 법처럼요.)”


“Then, I thought gas stations in Nevada comes up very often like in California. So, I didn’t filled up the car when we left the California. Finally, we entered the dessert in Nevada, then saw the gas tank number nearly to zero. But, we could not find any gas station, running on the dessert road. (그걸 우리가 몰랐어요. 네바다 주로 넘어가서도 주유소가 금방 나타날 줄 알고 기름 탱크 바늘이 0으로 갈 때까지 주유를 안 했거든요. 사막을 달리는데 아무리 가도 주유소가 안 나타나는 거예요.)”      


“You guys were near to death.(죽을 뻔했네. 하하하)”    

 

“Seriously. It was really really hot and humid, and there is no one seen in the wide dessert and the car almost stopped. We were almost to pull the car by hand. ha! ha! ha! (진짜요. 사막 한가운데서 기름 떨어져서 차를 밀고 갈 뻔했어요. 하하하.)”     


무슨 소리를 저렇게 재밌게 하는 건지. 온통 신경이 쓰였다. 석훈이 저렇게 영어를 잘했다니. 평소에 들은 적이 없어서 몰랐다. 괜히 아닌 척 열심히 테이블 위 메뉴 스크린만 넘겼다. 맞은 편의 아농낫이 물었다.  

    

“เอาเป็นเซ็ตซูชิดีมั้ยครับ?เอาเป็นโอมิคาเซะดีมั้ยคะ? (초밥 세트로 할까요? 오미카제로 할까요?)”     


“โอมิกะเซะคืออะไรคะ? (오미카제가 뭐예요?)”     


내가 묻자 아농낫이 다정하게 설명하려고 했다.     


“มัน... (그건...)”     


그때 등 뒤에서 석훈의 웃는 소리가 들렸다.  

    

“I almost got into a big trouble. Next time, you should ask anything because I lived long in Carlifornia. I am like a California boy. Ha! Ha! Ha! (큰 일 날 뻔했네요. 다음엔 나한테 꼭 물어봐요. 내가 또 서부 소년이잖아요. 내가 서부에서 오랫동안 살았으니까. 하하하.)”      


지혜 앞에서 석훈이 웃다니. 갑자기 뱃속에서 심통이 올라왔다. 아농낫에게 태국어로 요란하게 얘기하기 시작했다.      


“ ผมเปิดร้านอาหารในพัทยา เมื่อประมาณ, 3 ปีที่แล้ว มีผู้ชายเกาหลีหนวดเคราคนหนึ่งมาหา. (제가 파타야에서 식당을 했는데요, 3 년 전쯤 어느 날 수염쟁이 한국 남자가 찾아왔어요.)”    

  

“คนขี้หนวด ผู้ชายเกาหลีหรอครับ? (수염쟁이 한국 남자요?)”     


“ครับ. ใส่ฝุ่นว่าไปเที่ยวมาเยอะแค่ไหน น้ำมันกระเด็นใส่หัวด้วย หนวดไม่ได้โกนหนวดก็เลยอวบอิ่ม แล้วกลิ่นก็เหม็นมากเลยครับ. (네. 여행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먼지를 뒤집어쓰고 머리를 기름이 줄줄 흐르고 수염은 안 깎아서 더부룩하고 냄새는 지독하게 났어요.)”     


“ขอทาน. (거지네.)”     


등 뒤에 있는 석훈이 움찔하는 것 같았다. 뭔가 등에서 불길 같은 게 막 치솟아 오르는 열기가 느껴졌다. 맞은편에서는 지혜가 영어로 계속 뭔가 얘기하고 있었다.       


“แต่ว่าคนหนวดผู้ชายเกาหลีคนนั้น โมโหเพราะต้มยำกุ้งที่ผมทำไม่อร่อยไม่ใช่หรอครับ? (그런데 그 수염쟁이 한국 남자가 제가 만든 똠양꿍이 맛이 없다고 화를 내는 게 아니겠어요?)”    

 

“ขอทานและไม่มีมารยาทหรือคะ? (거지에다가 예의도 없었어요?)”     


“ไม่มีมารยาทเลย. มารยาทเป็นศูนย์. (완전 무매너. 매너 제로.)”     


등 뒤에서 뭔가 부르르르 떨리는 전파가 퍼져 나오는 것 같았다. 내 등도 전파를 타고 부르르르 떨리는 것 같다. 얼마 후 부켄달리아 꽃같이 화려한 초밥이 분수처럼 올려져 나왔지만 나는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알 수가 없었다. 너무 맛이 없었다.      


얼마 후 등 뒤에서 부스럭 소리가 나며 석훈과 지혜가 일어서는 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자 석훈이 뒷모습을 보이며 계산대로 가고 있었다.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지혜가 활짝 웃는 얼굴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아농낫 매니저님! 맛있게 식사하시고 계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