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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나를 위한 구애'를 읽고

이나영 산문집

by 김로운

30년 전 나도 20대였다. 지방에서 혼자 올라와 대학을 졸업한 후 고생고생하다가 겨우 직장을 잡고 혼자 살았다. 첫 직장에 들어간 후 왕따 같은 어려운 일들을 연거푸 겪었다. 조그마한 원룸에 살았는데 방과 부엌이 구분이 안 되는 그런 집이었다. 창문 밖이 바로 골목과 연결되어 있어서 낮에도 커튼을 열지 못했다.


주말에 어디 갈 곳이 없어 낮에도 커튼을 닫고 방에 누워 있으면 회사에서 왕따 당한 힘든 일들이 떠올라 머리가 뱅뱅 돌고 숨이 막힐 것 같았다. 게다가 나는 에세이 ‘나를 향한 구애’의 저자 이나영 작가처럼 친구들에게 연락을 해서 감정을 토로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방 안에 누워 있으면 사방 벽이 나에게 몰려오는 것 같았다. 30년 전 숨 막힘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으면 방을 나왔다. 다행히 한강으로 가지 않고 시장으로 갔다. 내가 그때 이 에세이를 알았더라면 그렇게 살지는 않았을 텐데.


‘나를 향한 구애’는 회사원인 이나영 작가가 20대 중반에서부터 후반까지 살며 겪은 힘겨움과 깨달음, 그리고 살아가는 지혜를 담은 책이다.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좋아하는 것에 대한 의리’였다. 작가는 손을 움직여 요리를 하고, 달리기를 해서 마라톤에 나가고, 킥복싱을 해서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뿌듯해하고, 샐러드를 먹으며 건강을 챙긴다. 매일매일 남들처럼 출근하고 일과 사람에 지쳐 퇴근한 후 복싱장에 가고 요리를 하면서 자신을 회복한다.


그게 사람 관계에 상처받고 지친 그녀를 살게 하는 힘이다. 작가는 친구들을 좋아해서 20대 중반에는 친구들과 만나 술을 마시며 외로움을 잊고 힘든 감정을 토로했다. 그러나 사는 게 바빠서인지 20대 중반을 지나면서부터는 친구들과 만나는 일도 드물어졌다. 친구 관계도 무덤덤해졌다. 나의 20대를 생각한다면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그러자 온몸에 닥쳐오는 외로움을 버터 내게 해 준 것들은 요리와 달리기와 킥복싱과 자전거 타기였다. 그런 사소하게 좋아하는 것들이 20대의 작가를 살아내게 하였다. 그중에는 스타에 대한 덕질도 포함되어 있다.

그렇다고 작가가 과거의 연약하고 감정 기복이 심했던 자신을 싫어하고 부정하는가? 아니다. 외로움이 온몸을 짓눌러 술을 마시고 친구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마구 토로하고 애인에게 매달리고 밑바닥을 보인 그 시절을 작가는 부정하지 않는다. 외로웠기 때문에 다른 이에게 연락하고 술을 마시고 매달리고 사랑을 했다. 추한 모습을 보인 외로움이었지만 그것 때문에 사랑을 했기 때문에 외로움이 사랑스럽다는 작가의 말이 참 좋았다.

오히려 나이가 들어 외로움에 대처하는 법을 익히고 난 후 감정에 무뎌지고 다른 사람과의 연락이 끊어지고 혼자서도 잘 지내게 되자 작가는 위기감을 느낀다. 사실 이런 상태는 살기가 편하다. 나이 들면서의 가장 이점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감정에 무뎌지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공감하는 법을 잊어버린다. 다른 이와 이야기해도 무덤덤하게 대응하면서 다른 이와 영혼 없는 대화만 나누게 된다. 작가는 이런 상태에 오히려 위기감을 느낀다. 나도 가끔 드는 생각이라 항상 예민하게 감정을 살려두기 위해 신경을 쓴다.


이 외에도 이나영 작가의 ‘나를 위한 구애’에는 20대 여성이 폭풍 같은 시절을 무사히 건너가기 위한 지혜와 팁들이 깨알같이 적혀있다. 내가 30년 전 20대에 이 책을 읽었더라면 그렇게 힘들지 않았을 건데, 더 힘 있게 살아낼 수 있었을 텐데 생각이 드는 책이다. ‘나를 향한 구애’를 20대 여성들에게 강력하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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