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모래알만 한 진실일지라도’와 ‘어쩌다 어른’
박완서 작가는 대략 20년 전 호텔 엘리베이터에서 거의 단둘이서 마주친 적이 있었지요. 당시 회사에 다니던 저는 행사 때문에 호텔 연회장에 갔다 나오는 길이었고 바로 옆 연회장에서 작가의 강연회 (비슷한 거)가 열렸어요.
언론 매체를 통해 얼굴을 잘 알고 있는 터라 저는 대뜸 ‘작가님! 저 팬이에요!’ 넙쭉 인사를 드렸어요. 당시에는 ‘휘청거리는 오후’ 단 한편만 읽은 상태였지만요.
작가는 수줍게 웃으시면서 ‘그러세요?’하고 잠시 나를 쳐다봤고 곧 엘리베이터 문이 열려 동행자와 함께 내리셨어요. 주름진 눈으로 웃던 수줍은 미소가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납니다. 이게 박완서 작가와 저의 인연의 끝입니다. 아니 시작입니다! 이후 저는 진짜 팬이 되기 위해 소설 10편쯤을 다 읽었습니다. 그래서 진짜 팬이 됐습니다.
박완서 작품의 특징은 지나친 솔직함입니다. 많은 이들이 작가를 헌신적인 현모양처쯤으로 아시는데 실은 마음에 열정이 넘치시는 분입니다. 어떤 작품에는 성애의 묘사가 적나라하고 어떤 작품에는 결혼 전 남편 아닌 남성을 사랑했던 이야기도 아슬아슬하게 나옵니다. 실은 어떤 작품에는 결혼 후 신혼 때 바람날 뻔한 얘기도 나와요.
이번에 읽은 에세이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에서는 작가가 왜 그렇게 솔직한 글을 쓰는지 이유가 나옵니다. 에세이 속 한편인 ‘중년의 허기증’에서는 첫 소설 ‘나목’을 엉겁결에 쓰고 나서 당선된 후 진짜 ‘작가가 되어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한 얘기가 나옵니다.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 후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진실을 말하기로 다짐합니다.
이 에세이는 주로 노년의 기록들이 나와 있지만 작가의 주된 가치관 기반은 70 년대라고 생각합니다. 그때가 당선된 후 집필을 왕성하게 하던 때니까요. 에세이 중에는 ‘보통 사람’이라는 내용도 있습니다. 70년대의 시대적 화두였죠.
에세이 ‘어쩌다 어른’은 2015년 베스트셀러로 중앙일보 기자였던 이영희 작가님의 글입니다. 작가는 자기는 연예인 팬질을 하다 그 연예인을 만나고 싶어 기자가 됐고, 10대 때 일본 유명 팬클럽 공연을 가기 위해 표도 없이 도쿄로 날아가 개고생 한 얘기나 나옵니다. 독자가 당황할 정도로 솔직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영희 작가가 탐독한 일본 만화, 드라마, 그리고 개인 연애사 얘기도 가득합니다. 몸이 소파와 일체형이 되어서 여러 번 본 일본 만화 속에서 삶의 지혜를 뽑아내는 식입니다. 이 에세이가 베스트셀러가 된 것에는 문화의 권위와 엄숙함을 놓아 버리고 대중 예술로부터 위안을 얻는 새로운 패러다임 전환이 대중에게 호소력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박완서 작가의 에세이는 70 년대 세대 프레임이, 이영희 작가의 에세이에는 2010 년대 세대 프레임이 작동하며 그 시대의 진실을 드러내고 지혜를 돌출합니다. 두 작품 모두 솔직함을 통해 진실을 드러내고 지혜를 던지는 방식은 똑같습니다.
항상 현실은 우리의 생각을 추월해 변화합니다. 생각은 현실보다 늦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늦은 생각에 갇혀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합니다. 성공한 작가들은 늦은 생각에 갇히지 않고 크게 뜬 눈 그대로, 넓게 벌린 가슴 그대로 현실을 받아들여 의미를 포착해 냅니다. 그게 솔직함의 미덕입니다.
두 에세이 모두 가슴을 울리는 지혜들이 가득합니다. 박완서 글은 솔직함으로 아이러니한 현실을 바라보고 반전적인 지혜를 돌출해 고개를 끄덕이게 합니다. 이영희 글은 대중문화의 가벼운 이야기로부터 무거운 삶의 지혜를 끌어내어 무릎을 탁 치게 합니다. 모두 너무너무 재밌습니다.
* 이 글은 출판사들로부터 전혀 제공받지 않았습니다.
* 수요일이었던 연재를 일요일로 바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