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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로운 Apr 17. 2024

양유진 에세이 ‘고층 입원실의 갱스터 할머니’를 읽고

 교보 문고 서점에 갔을 때 베스트셀러 코너에 있는 파스텔 톤 분홍색 커버와 힙한 제목을 가진 책이 단번에 눈길을 사로잡았다. 종합 순위 20위까지가 진열되어 있었는데 이미 명성을 아는 쟁쟁한 책들 앞쪽 순위로 끼여 있었다. ‘고층 입원실의 갱스터 할머니’이다. 모르는 작가 이름이어서 호기심을 갖게 되었다. 

    

원래도 뭔가 힙한 걸 좋아하는데 책 안쪽 작가 소개를 보니 20대 유명 유투버였다. 목차 제목들도 찰져서 집에 돌아와 전자책으로 보게 되었다.     


양유진 작가는 웃기는 상황극으로 100만 구독자를 가진 크리에이터이다. 책에는 유튜브에서 밝히지 못한 아픈 병과 더불어 사는 삶과 주변 이야기가 실려 있다. ‘빵 먹다 살찐 떡’이라는 채널을 운영하고 있는데 유튜브에서는 자신의 병을 전혀 밝히지 않았다. 지난 3월 책이 나오기 전까지 작가의 채널에는 팬들이 웃기다고 쓴 댓글들이 가득하다.      


작가는 10대 초반에 루푸스 (만성 자가면역질환) 병으로 진단받고 지금도 병과 함께 살아간다. 자가 면역이란 외부로부터 인체를 방어하는 면역계가 이상을 일으켜 오히려 자신의 인체를 공격하는 현상이며, 이로 인해 피부, 관절, 신장, 폐, 신경 등 전신에서 염증 반응이 일어나게 된다.      


작가는 중학교 3학년 2학기에 몸이 바나나같이 변하는 황달 현상으로 병이 발병하여 루푸스 진단을 받고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병원 건물 꼭대기 층에 있는 중환자실에 그녀는 머물게 되었고 그때 만난 같은 할머니 환자가 갱스터 할머니이다.      


갱스터 할머니는 간호하러 온 가족도 없었고 자식들로부터 외면을 당하고 있었단다. 남편은 결혼할 때부터 다른 여자가 있었고 신혼여행 때도 자신과 가지 않고 그 여자랑 갔단다. 그 모습을 본 자식들은 지금도 할머니를 막 대한다고 써 놓고 있다.     

 

나 같은 나이의 세대에게는 어디선가 들어본 구차하고 비참한 오래된 이야기지만 이제 20대인 작가에게는 놀라운 이야기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꿋꿋하게 자기 삶을 챙기는 할머니를 작가는 갱스터 할머니라고 부르고 있다. 요즘 가장 핫한 유튜브 크리에이터이면서도 지난 세대의 구차하고 비참한 이야기에도 귀 기울일 줄 아는 넓은 마음을 가진 젊은 친구다.      


책은 20대 작가가 쓴 에세이답게 20대 청년들의 고민과 그리고 그들이 호응하는 메시지들로 가득하다. 외모와 친구, 가족과 꿈에 관한 내용들이다. 겸손하면서도 긍정적인 태도로 나름의 결론들을 전한다.      


책에서는 요즘 흔히 자기 계발 에세이에서 나오는 말들이 많이 나온다. 예를 들면      


‘누구는 나의 화끈하고 털털한 성격이 우악스럽다고 하지만 누구는 시원시원해서 보기 좋다고 한다. 이렇게 똑같은 나의 모습이라도 각자의 취향과 원하는 것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볼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어차피 타인에게서 칭찬을 받아야 자랑스러워진다면 타인이 아닌 내가 먼저 나에게 칭찬해 주는 것이다.’  

   

같은 것들 말이다. 요즘 유행하는 자기 계발 에세이라면 어디서나 들어간 말들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인기가 있는 이유는 그 말들에 진심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삶에서 우러나오는 진정성 말이다. 사실 책을 읽어보면 작가의 문장들은 투박하고 거칠다. 훈련되지 않은 아마추어의 냄새가 난다.    

  

그러나 전자책 밑에는 ‘너무 마음에 와닿는다’ ‘진심이 느껴진다’ ‘용기와 희망을 얻는다’ 등 댓글이 가득하다. 이런 부분이 독자들의 호응을 얻고 있는 것이다.   

   

책이 인기를 얻는 이유는 작가가 이미 유튜브 구독자 100만 크리에이터인 점도 있다. 그에 못지않게 그녀가 유튜브에서 밝히지 못한 아픔과 자신의 삶을 책에 진정성 있고 밝은 메시지로 전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최근 베스트셀러인 ‘나는 메트로폴리탄의 경비원입니다’도 작가가 그림 지식과 더불어 자신의 생을 담담하게 전해서 인기를 얻지 않았을까? 그림 해설만 했다면 대중에게 이렇게 인기가 있었을까?     


요즘 독자들, 특히 주로 책을 많이 읽는 20, 30대 여성들은 지식을 자랑하는 듯한 글들은 금방 눈치채고 싫어한다. 작가가 그들을 사랑하는 친구처럼 진심이 담긴 메시지를 겸손하게 전할 때 마음을 여는 것 같다. 양유진 작가처럼 말이다.                    


*이 서평은 이십일세기 출판사의 제공을 받고 작성하지는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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