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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미치 Jun 09. 2024

아들, 우리 산책할까?

네가 직접 대답하지는 않지만 대답이 귓가에 들리는 것 같다.    

  

‘싫어!’     


아들! 호수 공원에서 산책할 때마다 엄마는 군대에 가 있는 널 생각한단다. 군대에 있어 함께 갈 수 없지만 산책할 때마다 엄마는 네가 옆에서 같이 걷는다고 느낀다.     


유월의 호수 공원은 너무 아름답단다. 물망초도 피고 달맞이꽃과 야생 양귀비가 피어나 오후 햇살에 비끼는 나무 사이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아래에서 흔들린다. 

 

햇빛에 반짝거리는 호수 잔물결 위에는 앳된 연꽃이 두둥실 떠 다닌다. 모네의 풍경화 같은 그림이 펼쳐지지.

  

내가 이런 꽃 얘기를 하면 너는 비웃을 거다.  

   

‘꽃사진만 찍은 엄마는 역시 아줌마야! 늙었어!’     


그래. 나 꽃 좋아하는 아줌마다! 그래도 컴퓨터 게임만 좋아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맨날 밤늦도록 전투형 게임만 하느라 영어마저 잘하게 된 너, 20살 아들아! (전 세계 게임러들과 영어로 떠들어댄다) 그래서 진짜 비행기에서 낙하산 타고 떨어지는 거 해보고 싶어서 특전사로 지원해서 간 아들아! 총보다는 꽃이 훨씬 훌륭한 거란다.     



꽃은 평화로운 곳에서 피어나지. 아니 삭막하고 황폐한 땅에서 꽃이 피어난다면 그건 생명이 움튼다는 의미란다. 많은 영화와 책에서 본 것처럼 전쟁은 땅을 황폐하게 만들고 죽음을 만든단다. 누군가의 승리는 많은 다수의 패배와 죽음을 의미한다.     


보통 사람들은 주변에 초록 식물과 예쁜 꽃들을 일상적으로 봐서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잘 모르지. 우리 대부분은 전쟁을 겪어보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엄마는 박완서 소설의 ‘나목’을 읽고 어떻게 전쟁이 한 집안을 파괴시키고 훌륭한 인간을 망그러뜨리는지 알았다. 또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읽고 전쟁을 통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스럽게 죽어가는지를 알게 되었어.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안 봤니? 전투를 하면 얼마나 많은 군인들이 죽어가는지 보지 못했니? 전쟁은 승리하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많은 죽어가는 사람들의 것이란다.      


니가 컴퓨터 게임 속에서 마우스를 한번 클릭할 때마다 상대방 캐릭터가 피를 터트리며 죽는 게 엄마는 참 싫다. 전투의 현장에서는 꽃이 피지 못하지. 니가 하는 컴퓨터 전투 게임에서 한 번도 꽃이 나오는 장면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너가 특전사에 가서 비행기에서 총 들고 낙하산 타고 내려오는 게 아니라 식당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다니 정말 다행이다. 밥하고 설거지하는 일이 우리 생에 훨씬 자주 일어나고 중요한 일이란다.     


비록 너가 고층 건물에서 줄 타고 떨어지는 훈련도 못하고 있을지라도 식당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재미있게 지낸다고 하니 그게 더 좋다. 친구들과 잘 어울리며 즐겁게 사는 게 우리 인생에서는 총 쏘는 일보다 훨씬 더 자주 일어나고 중요한 일이다.      


20대 초반 남자에서 이러한 공격 본능은 어쩔 수 없이 거쳐야 하는 과정이라는 생각은 든다. 공격 본능을 컴퓨터 게임 안에서 해소하고 있겠지. 그러나 인간은 성숙해야 한다. 컴퓨터 게임 안에서 피를 터뜨리며 죽은 캐릭터들은 현실에서 절대 보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할 줄 알기를 바란다.    

  

전쟁보다 평화가 더 어렵고 소중하며 총보다 꽃이 더 소중하다. 그게 더 성숙해지는 길이다. 전에는 그 꽃을 지키기 위해 자기 목숨을 희생한 사람들도 있었단다.    



내가 이 얘기를 함께 산책하며 직접 한다면 너는 당장 말하겠지!    

 

‘엄마는 꼰대야!’     


알았다! 내가 얼굴을 보고 말하지는 않을게. 그러나 군대를 나와 시간이 흘러 너가 이 글을 보는 날, 엄마의 의견에 동의할 줄 아는 남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때까지 엄마는 너가 성숙할 수 있도록 지켜보고 응원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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