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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로운 Jun 16. 2024

야생화의 생명력

근처 공원과 꽃밭엔 정성 들여 키우고 가꾸어진 꽃들이 아름답고 화려하게 피어 있지만 항상 높은 산에 피어 있는 야생화에 아련한 그리움이 있다. 여름의 초입인 어제 야생화로 유명한 태백산 금대봉에 갔다.      


금대봉으로 향하는 길목, 탐방로로 이어진 풀숲에서 익숙한 흰꽃을 처음 만났다. 찔레꽃. 사방에 잔잔한 향을 풍기며 들장미다운 매력이 발산한다. 원래는 5월에 피는 꽃인데 이곳은 해발 1천 미터가 넘어 기온이 낮아 많이 피어 있는 듯하다.     



금대봉 쪽으로 조금 더 올라가자 귀여운 노란 꽃들이 뭉텅이로 여기저기 보였다. 옆길에 서 있던 야생화 표지판 중에서 찾아보니 ‘한계령풀’인 것 같다. 모단초 혹은 메감자라고도 하는데 설악산 오색약수의 한계령 능선에서 처음 발견되어 한계령 풀이라고 한다. 환경부에서 지정한 희귀종이지만 금대봉 능선을 타는 내내 풀숲에서 많이 본 귀여운 꽃이다.      


금대봉 탐방로를 따라 걸어 곧 야생화 ‘천상의 화원’이라고 불리는 전망이 탁 트인 곳에 도착했다. ‘범꼬리’라는 야생화가 지천으로 펼쳐져 있다. 꽃무리가 원주형으로 올라왔는데 꽃이삭 모양이 범의 꼬리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줄기는 해열과 장염에도 사용하는 등 이로움을 많이 주는 약초란다.    


  

특히 태백산 검은 나비들이 나풀거리며 범꼬리꽃 사이를 옮겨 다녔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매끈한 검은 날개가 노란색 테두리가 둘러싸 있어 귀족스럽게 우아하다. 이 나비들은 겨울 내내 번데기로 웅크리고 있다가 변신해서 훨훨 날아다니고 있겠지.     


데크길을 따라 내려오는 길에 꽃초롱이 같은 하얀색 꽃무리가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노란색 수술이 삐져나오고 자태도 우아하다. 그런데 이름이 ‘광대수염꽃.’ 희고 우아한 자태에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다. 겉모양이 어릿광대의 수염모양같이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꽃이 알면 억울할 것 같다. 



무리 지어 피는 다른 꽃과는 달리 홀로 피어 있는 화려한 보라색 꽃을 만났다. ‘얼레지’이다. 작은 백합같이 생겼다고 생각했는데 백합과란다. 홀로 화려하게 피어서 유독 눈에 띄는데 역시 꽃말이 ‘질투’라고 한다. 그럴 것 같다.     


한강의 발원지라고 하는 검룡소로 가는 능선 길이 참 좋다. 태백산 특유의 빽빽하고 수려한 수림 사이를 걸어가게 된다. 피나무, 물푸레나무, 떡갈나무, 산뽕나무, 참나무 등등 이름도 굳건한 나무들이 쭉쭉 뻗어 피톤치크를 뿜어낸다. 1시간을 넘게 걸어가며 절로 피곤이 가신다.     


검룡소 가는 길에 산딸기도 만났다. 실은 한창 철이라 여기저기 있을 것 같은데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탐방로 옆 풀숲에서는 잘 눈에 띄지 않았다. 그래도 푸른 풀들 사이에서 눈에 띄는 작은 빨간 산딸기. 앞에 가던 부부 중 남편이 똑 따서 아내에게 주었다. (그래서 여러 등산객에게 즐거움을 주는 산딸기를 따는 걸 용서했다)  


검룡소는 한강의 발원지로 알려진 곳으로 서해에 살던 검은 용이 강을 거슬러 올라와 이곳에서 자리 잡았다고 한다. 마르지 않는 물이 솟아나 한강의 시작이 되었다고 하는 신화가 있다. 그런데 내게는 주변의 청량하면서도 습한 기운이 더 크게 느껴졌다. 바위 위에 이끼가 융단처럼 펼쳐져 있다. 푸릇푸릇 생명력이 솟아나 보이는 이끼.


이끼는 식물로 보기엔 애매한 종이다. 줄기 속에 정자와 난자가 있어 물을 통해 만나 생식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암술이 수술의 꽃가루를 만나는 식물의 방식과는 다르다. 특히 이끼는 어둡고 습한 곳에서 주로 자라는 것에서 알 수 있듯 햇빛이 많이 필요하지 않다.     


이끼는 지구에 나무와 풀이 나타나기 4억 년 전에 나타났고 생식 기관이 조류와 비슷하다고 판명되어 있다. 생식 기관만 생각한다면 동물에 가까운 놈이다. 요즘 들어 읽은 책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에서도 비슷한 얘기가 있다.     


물속에 사는 고래나 상어, 많은 물고기들을 내장 기관이나 뇌의 구조로 유사성을 분류하게 되면 인간이나 척추동물에 더 가깝게 분류되는 종들이 많다고 한다. 특히 물고기의 뇌는 인간의 뇌와 구조가 비슷하다고 한다. 따라서 물고기를 물고기로 분류할 수 없다는 게 자연 과학자들의 정설이다.  

    

이런 배경에서 이끼도 생식 기관에 따르면 식물이 아니라 동물이다. 광합성도 하지 않으니 더욱 그런 느낌이다. 감히 추측하자면 지구에 땅과 물이 분리되기 이전, 태양빛이 없을 때부터 있었던 생물로 동물에서 식물로 진화하는 종이 아닐까 한다.      


이끼처럼 태백산 등선에는 제 생명에 겨워 핀 꽃들이 많았다. 우리 주변 공원이나 꽃밭에서 보는 꽃들과는 다른 생명력이 있다. 그들을 보며 야생의 생명력을 나눠 가진 기운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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