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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설모 Jan 03. 2024

동료가 퇴사했다

비슷한 기간에 회사 동료가 4명이나 퇴사를 했다. 우리가 엄청나게 각별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함께했던 7년이란 시간이 짧은 것은 아니기에 그들의 부재가 더 크게 다가왔다.

우리 회사는 참 이상한 곳이다. 떠나는 사람들이 오히려 너무 아쉬워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그럴 거면 왜 나가냐"라는 핀잔을 듣고야 만다. 퇴사한 사람들이 옛 동료들을 만나러 편하게 놀러 오고, 심지어 재입사를 하는 케이스도 흔한 풍경은 아닐 것이다.


이전 직장에 다닐 때, 친구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소리는 "매 맞는 아내 같다"라는 이야기였다. 회사에게 학대당하면서 벗어나지 못하는 내 모습이 마치 매 맞고 사는 아내처럼 보인다는 것이었다. 돌이켜보면, 그곳의 사람들은 훨씬 똑똑하고 능력 있었다(미안 동료들아!) 그래서 나는 나의 무능함이 들킬까 봐 두려웠다. 내가 이 직장에 들어온 건 순전히 운이 좋았기 때문인데, 시간이 지나면 나의 밑바닥이 드러날 것 같아 무서웠다. 나중에 알고 보니 심리학 용어에서 이것을 '가면 증후군'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실제로 많은 IT 업계 사람들이 가면 증후군에 시달린 적이 있다고 한다.

어쨌든 나는 그곳에서 내내 불안했다. 회사는 항상 더 나은 것, 최선의 것, 더 빠른 것들을 요구했고 나는 늘 그 요구를 채우지 못했다. 링거를 맞으며 야근을 하면서, 이렇게 사는 게 맞나 싶다가도 주변을 돌아보면 입을 다물게 됐다. 모두가 그렇게 살고 있었으니 엄살 부리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 나에게 본부장은 "안 아픈 것도 능력이다"라며 죄책감을 더했다.

한 번은 야근을 하다가 귀에서 이명이 사라지질 않아 동기 오빠에게 얘기를 한 적이 있다. 그러자 오빠는 갑자기 정색을 하면서 나를 응급실로 보냈다. 병명은 돌발성 난청이었고, 골든타임 안에 스테로이드를 때려 부어야 청각이 소실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다음날, 오빠 덕분에 살았다고 말하자, 그는 본인도 일하다가 똑같은 경험을 한 적이 있다고 대답했다. 사무실 안에는 그런 자잘한 스트레스성 질병들을 훈장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렇게 다들 몸을 갈아서 일도 말리는 사람이 없었다는 점이 가장 슬펐다. 우리는 주기적으로 동료 평가를 했고, 그것을 바탕으로 통장에 찍히는 인센티브 숫자가 곧 최고의 동기부여이자 칭찬이었다.


그러나 회사를 옮기고 난 뒤, 진짜 사람을 애쓰게 하는 힘은 채찍이나 인센티브가 아니라는 것을 경험하고 있다. 내가 가진 능력치는 바뀐 것이 없는데, 이곳에선 일 잘한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꼭 업무와 관련된 것이 아니더라도, 이곳 사람들은 다양한 구실로 칭찬을 많이 한다. 커피를 맛있게 잘 내려도 칭찬을 받고, 사진을 잘 찍어도 칭찬해 주고, 웃긴 얘기를 해도 센스 있다며 칭찬을 받는다.

일을 하다 보면, 내가 계획했던 것들이 생각만큼 풀리지 않는 경우가 있다. 특히 마케팅은 시시각각 변하는 의사 결정들 사이에서 파도타기를 해야 하는 일이다. 가끔은 파도에 잠겨버릴 때도 있다. 이럴 땐 스스로에게 하는 위로가 꼭 정신승리처럼 느껴진다. 그럴 때 '네가 애쓴 거 내가 다 지켜봤어.'라고 말해주는 동료가 있으면 다시 한번 힘을 낼 수 있다. 사람을 움직이는 힘은 여기서 나온다.

사를 떠난 동료들은 이런 경험들을 제일 그리워할 것이다. 이 분위기는 절대 한 사람의 노력만으로는 만들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곳을 가더라도 이곳에서 서로 부대끼며 위로하고 애썼던 경험들을 오랫동안 추억하게 되는  같다.

네가 고생한 거 다 알지. 혹여 내가 다 지켜보지 못했더라도 신은 알고 계시지. 이런 말 한마디들이 모여 조직이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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