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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설모 Jun 27. 2024

누가 문 앞에 치킨을 버려놨다

남들도 나 같을 것이라는 착각

또래들이 많이 모빌라로 이사 오고 나서 새로운 세계(not 천국 but 지하던전)가 열렸다. 다 큰 성인들이 이렇게 더럽게 산다고? 이렇게까지 매너가 없다고? 와 같은 질문을 거의 매일 곱씹는 중이다. 어제 아침엔 1층 현관문을 나서는데 발 밑에서 뭔가 물컹하고 밟혔다. 누군가가 버린 치킨이었다. 배달시킨 치킨을 그따위로 버리는 점에서 이미 화가 났는데, 배출 시간도 안 지켜서 제대로 수거가 되지 않은 모양새였다. 그 순간 며칠 전 빌라 복도에서 발견한 바퀴벌레가 생각났다. 건물 앞에 고여있는 음식물 쓰레기들이 벌레들을 부른다 생각하니 소름이 돋았다.

열받아서 붙이게 된 경고문의 일부 ^ ^

<바퀴벌레 초대하지 맙시다>라는 경고문을 프린트해서 엘베에 붙이고 씩씩대며 친구에게 얘기하는데 기대하지 말란다. 10명의 사람들이 모여있으면 그중 2명은 상식 이하의 인간들이고, 그들은 절대 바뀌지 않으니 괜히 싸우지 말라는 이야기였다. 실제로 집 근처를 찬찬히 산책해 보면, 집집마다 쓰레기 배출과 관련된 경고문들이 붙어 있었다. 제멋대로 사는 사람들이 꽤 많다는 이야기다.


그 경고문들을 바라보며 나는 문득 '자기 중심성'에 대해 생각했다. 대학시절, 부자였던 친구는 남들도 모두 자신과 같은 수준의 경제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곤 했다. 다들 자연스레 어학연수를 가고, 부모님 돈으로 자취집을 구하고, 방학이 되면 유럽 여행에 간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그런 것들을 누리지(?) 않고 아등바등 알바를 뛰고 빡세게 사는 친구들을 보며 '독하다'고 표현했다.

개를 키우는 사람들은 남들도 개를 좋아한다고 생각한다. 귀여운 우리 개를 보며 겁을 먹고 도망가는 사람들을 '이상하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나는 다른 사람들도 규칙과 질서를 잘 지키며 사는 줄 알았다. 각종 경고문과 안내장을 무시하며 사는 것은 나에게 있어 '외계인'이나 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 반대로 생각해 보면, 음식물 파괴자는 아마 사회 규범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환경에서 살았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자신이 세상의 'majority'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생각은 지극히 보편적이고 정상적이어서,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가진 집단을 선택하고, 집단 속에서만 살아간다. 친구는 이러한 우물을 박살 내는 곳이 '군대'라고 했다. 부자와 가난한 자, 고학력자와 고졸자, 기독교인과 불자 다양한 성인들이 공간에서 지속적으로 생활하는 곳은 군대가 유일하다고 했다. 자신은 군대에서 생활하면서 그동안 얼마나 작은 커뮤니티 속에서 살아왔는지를 알게 됐다고 했다. 그래서 자신과 절대 어울리지 않는 집단 속에 자기를 밀어 넣어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거라고 붙였다. 말을 들으며 지금까지 평생 속했던 집단들을 생각해 봤다. 곰곰이 떠올려보니, 대체적으로 비슷했다. 국가와 나이, 성격을 차치하고서라도 교육이나 부의 수준, 종교와 같은 주요 성향들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결국 나도 우물 개구리였다.


'끼리끼리' 어울려서 산 사람은 아무리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시선을 지녔다고 해도 세상을 보는 시각이 편중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당장 회사뛰쳐나가 평생 만나볼 일이 없는 세상 끝의 사람들과 어울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이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소 만나지 않던 친구들과 만나기(옥장판 판매자로 오해받을 가능성 있음), 매일 지나다니는 루트 바꿔보기(길치에겐 큰 도전), 외국 친구들에게 한국어 가르치기(또 케이팝 고인물들만 만날 가능성 있음), 안 읽던 책 읽기(잠들 가능성 높음).  

이것들이 나의 골치 아픈 이웃을 품을 수 있는 방법이 되진 않겠지만, 안전지대를 벗어나는 일은 분명 삶의 좋은 윤활유가 되어줄 것이다. 계의 편중에서 벗어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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