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첫 프리랜서로서의 역경과 일에 대한 상념 (2)
애초에 프리랜서의 노무미제공확인서를 어떤 사업주가 쓰는 게 맞을까?
해당 시기가 포함된 계약서를 작성한 사업주?
아니면 그 전의 대부분의 기간을 함께 일한 사업주?
일은 종료되었고, 새로운 일은 들어오지 않고,
그래서 사업주를 특정하기 애매한 사람은 같이 일한 적 있는 (친분 있는) 사업주?
프리랜서가 왜 프리랜서인가?
고용주가 없다는 거다.
나를 책임질 사람이 나밖에 없다는 거다.
법의 보호를 받기 위해서는 계약서가 필요하고,
공정한 계약서를 작성해야 하지만 이걸 챙기는 건 생각보다 힘들다.
내가 회사를 운영하며 프로젝트 리더로서 연구를 할 때, 함께 한 객원연구원과의 계약서 작성에 매우 공을 들였다.
업무를 세분화하고 논의하고 계약서에 명시하고 상호 몇 번씩 검토하고, 날인했다. 나는 그렇게 일을 배웠고, 그렇게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비정규노동을 공부하고 연구하면서 객원과 같은 프리랜서 비정규에게 더 높은 임금과 조건을 제시하는 것이 사회안전망이 부족한 현실에 더 합리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더 신경을 썼다.
(그럼에도 그분에게는 나에게 미처 말하지 못한 부족함이나 덜 공정한 부분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근데 정작 올해 처음으로 내가 다른 사람과 프리랜서 객원으로 일을 하면서 하나도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
처음엔 모두가 프리랜서라고 생각해서 요구할 생각도 못했었고, 이후 새로운 프로젝트에 들어가면서 필요하지 않나 논의를 꺼냈으나 바로 이견이 발생했고, 그 이상 논의해보지도 못하고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그래서 그 서류의 보완이 필요할 경우 난 돈을 포기한다는 마음이 51%였다.
그런데!!!!!!!!
그래서!!!!!!!!
고용노동부에서도 방침을 바꿨다고 했다.
수입이 없는 달에 수입이 없음을 본인이 확인하는 사실확인서를 쓰면 된다고 했다.
그렇게 토요일(!)까지 내 서류를 검토해주신 공무원님과 프리랜서의 사정을 고려한 서류 변경을 진행해주신 고용노동부에 감사하며, 나는 또 조용히 어떤 의문도, 문의도 제기하지 않고 기다렸다.
그리고 오늘,
150만 원이 입금되었다.
돈이 들어오면 하고 싶은 게 어마어마하게 많았는데,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자동이체가 발생하지 않는 계좌에 안전히 돈을 옮겨 놓은 것이다.
진짜 비상금으로, 정말 나의 재난상황에 긴급하게 쓸 수 있게.
뭐, 하나 해피한 일은 마트에서 할인하는 떡볶이를 두(!) 봉지 샀다는 거?!
이 정도는 해도 되잖아.
한 달 이상 번민의 시간을 가지며,
사업이고 뭐고, 일이고 뭐고 그냥 월급쟁이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정규직, 그 소중함을 매우 절실히 느꼈다.
난 정규직이 아니라도 안전하고 불안하지 않은 사회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되기 위한 일의 미래와 사회안전망을 연구하고 공부하고 얘기할 계획이었다.
근데 지금과 같은 상태에서라면 그 누구에게라도 안정된 직장이 (이전보다 더욱) 최선의 그리고 최상의 선택이 될 거라는 건 명백하다.
일자리는 없고, 신규 고용은 줄어들고, 사람들은 더욱 불안에 시달린다.
과연 불안이 일상이 될 수 있을까?
불안은 일상이 될 수 없다.
그게 일상이 되는 순간
인생은 더 이상 꽃 피우지 못한다.
그런데 지금의 현실을 겪으면서
우리 사회에서 정규직에 대한 수요가 더 커지고,
안정된 일자리가 전부가 되는 현실이
더 강력해질 것 같다.
코로나 이후 우리는
어떤 일(노동)의 시대를 맞을까?
새로운 일의 시대에 대한 상상의 문이
더욱 좁아지지 않을까 사실 우려된다.
그러나 한편으론
재난지원금이나 각종 지원책을 경험한 국민들,
그리고 기본소득에 대한 전 국민의 인지와 이해의 확산(확장)이 일어나고
이를 통해 우리가 새로운 세상을 상상하는데 동력을 만들어갈 수도 있지 않을까?
우리는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했다.
집 밖을 나설 때 우리의 얼굴은 마스크로 가려진다.
이제는 거리에서나 버스, 지하철에서 마스크가 없는 얼굴을 마주치는 게 문제가 되고 어색한 일이 되었다.
우리의 일도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거 같다.
기후위기는 코로나 같이 알 수 없는 변화와 공포를 더 많이 가져올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은 코로나 시대에 뛰어난 기술로 우리의 일상을 돌아가게 했지만, 그 뒤에 있던 사람들은 쓰러져갔다.
우리는 어떤 일상을, 일을 만들어가게 될까?
아직 어떤 밑바탕도 상상이 되지 않는다.
그저 지금의 내 하루하루가 돌아가고 있다는 것 외에는.
지원금 덕분에 좀 더 상상의 날들이 풍부해지길,
그리고 내가 그 상상을 나눌 수 있(는 역량이 있)길 꿈꿔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