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에 당선되는 극본쓰기 0

당신은 훨씬 더 잘 쓰게 된다.

by 이기원

작가의 말




나는 확신한다.


내가 알려주는 것을 금과옥조처럼 믿고 따른다면, 당신의 극본 쓰는 실력은 충격적으로 발전하게 될 것임을. 그리하여 궁극적으로 당신이 꿈에 그리던 목표에 도달할 수 있음을.


하지만 나는 당선을 장담하지는 못한다.


당신이 아무리 잘 썼다 하더라도, 당선에는 여러 변수가 존재한다. 심사위원의 성향이나 취향도 있을 것이고, 그해 공모의 경쟁작들의 구성이나, 그해 공모전이 특별히 원하는 작품들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당선 운이라는 것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이런 변수까지 챙겨줄 수는 없다. 나는 무당이나 사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변수를 제외한 상수에 해당하는, 거의 모든 것을 케어해 줄 수 있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당신의 작품을 최종심 언저리까지 데려다 줄 수 있다.


하지만 거기서 당선이 되려면, 당신의 크리에이티브가 필요하고, 재능이 필요하다. 미안하지만, 내게는 그것까지 가르쳐 줄 재간은 없다.


아무튼, 이 <공모에 당선되는 극본 쓰기(부제 : 당신은 '훨씬' 더 잘 쓰게 된다)>는 당신이 이전에 만난 적도 없고, 만날 수도 없었던 가장 이상적인 당선을 향한 집필 매뉴얼임을 의심치 말기 바란다.


공모에 당선되려면 제일 먼저 무엇을 알아야 할까?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는 말이 있듯이, 공모에 어떻게 당선되는가를 알려면, 먼저 공모 심사가 어떻게 이루어지는 지부터 알아야 한다.


공모 심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이것이다.



심사위원은 당신의 작품을 끝까지 읽지 않는다.



작가 지망생들이 흔히 하는 착각 중 하나가 공모에 낸 내 작품을 심사위원이 다 읽어줄 거라는 믿음이다. 그리고 내 작품을 끝까지 다 읽으면 당선작으로 뽑히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이다.


천만의 말씀이다. 심사위원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다. 심사위원들이 제일 고통스럽게 생각하는 것이 못쓴 작품을 읽는데 자신의 인내심을 발휘할 때이다. 그들은 당신의 작품이 시원찮다고 생각하면 결코 끝까지 읽지 않고, '하차'라는 방식으로 당신의 작품을 응징한다. 적어도 당신의 작품이 심사위원에게 끝까지 읽혀지려면 최소한 최종심에 올라가야만 한다.


보통 공모 심사는 1차, 2차, 3차 등 예심 단계를 거친 뒤 최종심에서 당선작을 뽑는 것으로 진행된다. 심사의 공정성을 위해서 예심 단계에서 중복 심사로 크로스 체크를 하고, 최종심에서는 모든 작품을 심사위원이 돌려 읽고 채점을 한 뒤 가장 높은 점수와 낮은 점수를 빼고 합산을 해서 순위를 매긴다. 그래서 최우수상, 우수상, 가작, 그리고 최종심 진출작 등으로 결정이 된다.


우선 매번 수천 편이 응모되는 공모의 1차 예심을 들여다 보자.


1차 예심을 하게 된 심사위원들에게 가령 이런 식의 미션과 보상이 주어진다. 100편의 작품 중에서 40편을 2차로 올리십시오. 심사비는 백만원(편의상)입니다.


이때 심사위원의 머리 속에 제일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무얼까? 심사를 공명정대하게 해서 좋은 작품이 누락되는 일이 없게 해야지 하는 것일 것이다. 하지만 나 같은 심사위원은 이런 생각을 한다. 백 편에 백 만원이면, 한 편당 1만원이군. 이런 계산은 곧 이런 결심으로 바뀐다. 작품 한 편당 1만원어치만 읽어야지.


그렇다면, 내게 1편당 심사비는 대체 원고 몇 장에 해당하는 액수일까? 내가 1차 예심에서 작품 당 읽는 분량은 보통 표지 포함 서너장을 넘지 않는다. 아마 다른 심사위원도 대동소이할 것이다. 그렇다고 나를 포함한 다른 심사위원들이 심사를 허투로 하는 것일까?


1차 예심은 작품을 뽑는 심사라기보다는 떨어뜨리는 심사이다. 공모에 출품되는 작품들 중 대다수가 함량 미달인 것이 현실이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모르겠거나, 말도 안 되는 스토리를 가졌거나, 기본적인 극본의 형식을 모르고 썼거나 하는 출품작들이 걸러내진다. 우리는 단지 몇 장만 보고도 그 출품작이 똥(이라 표현해서 미안하다)인지 된장인지만 구분할 수 있다.


시놉시스에서는 기획의도, 로그라인, 캐릭터, 스토리의 개요를 보게 되고, 극본에서는 그 이야기가 어떻게 시작되는가를 보게 된다. 여기서 탈락하는 작품들은 위의 요소들이 따로따로 놀며 대부분 불일치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일단 재미는 둘째로 치고, 기획의도에 맞는 로그라인과 그 로그라인을 구현하는 캐릭터와 스토리를 가지고 있고, 그것을 극본으로 제대로 시작만 한다면, 1차 예심의 통과는 어렵지 않다.


1차를 통과하면 2차 예심에서는 심사위원에게 더 적은 작품수에 더 많은 심사비가 주어진다. 여기서 심사위원은 극본의 1막 부분을 읽어보게 된다. 보통 35장 내외의 단막극에서 1막은 10장 내외이다. 주인공은 매력적인가, 꿈은 무엇인가, 또한 작가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극본이 제대로 풀어내고 있는가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한 뒤 3차로 올릴지 말지를 판단한다.


그 다음 3차에서는 더 적은 편수에 더 높은 심사비가 책정된다. 여기서 심사위원은 비로소 2막을 넘어가게 된다. 여기서 심사의 포인트는 바로 재미이다. 1막부터 재미가 있어야 하지만, 본격적인 재미는 2막부터 나온다. 심사위원은 대개 중간점까지 읽으면서 3차 예심 작품들의 우열을 판가름한다. 3차심의 심사 포인트는 이 극본을 계속 읽고 싶은가이다.


3차를 통과해서 최종심에 이르면, 그제서야 당신의 작품은 심사위원에게 다 읽혀진다. 최종심은 경력도 오래되고 내공이 있는 전문가가 심사한다. 여기서 심사위원이 논스톱으로 읽은 대본은 당선작이 될 확률이 매우 높다. 서른 장 넘는 극본을 단숨에 읽는 것은 어지간히 재미있지 않고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심사위원이 극본 읽기를 여러 번 멈춘 작품일수록 당선권에서 멀어진다.


최종심에서는 심사위원들이 모여서 회의를 하게 된다. 그들은 작품의 재미와 의미, 신선한 설정, 독특한 캐릭터, 작품의 완성도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순위를 매기게 된다. 물론, 모든 심사위원들의 고른 지지를 받은 작품이 당선작이 되는 것이고.


내가 이렇게 극본 심사 과정을 알려주는 이유는 단순하다. 당신의 작품이 1차, 2차, 3차 예심을 통과하고, 최종심에서 선택될 수 있게 전략과 전술을 잘 짜서 극본을 완성하자는 것이다.



공모에 당선되는 작품을 쓰려면 전략과 전술이 필요하다.



당신은 극본 쓰기에 있어서 전략과 전술의 필요성을 이미 절감하고 있었을 것이다.


과거의 나도 그랬다. 그래서 극작 클래스의 문을 두드렸었다. 하지만 선생으로부터 돌아온 대답은, 그런 것은 없다는 것이었다. 만약 그런 것이 있다면, 누가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기만의 방법을 터득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나는 왜 여기 들어온 거지?


어쩌면 당신도 극작 클래스에서 나와 같은 당혹감을 느꼈을 지도 모른다.


초급 클래스에서 그저 당신은 극본의 형식, 용어 설명, 취재 하는 법, 등장인물 이력서 만들기 등을 배웠을 것이고, 운이 좋았다면 스토리텔링에 대한 기본적인 내용을 배웠을 것이다. 때론 황당하게도 결코 배워서 얻어지는 것이 아닌, 작가 정신에 대한 교육도 받았을 지도 모른다.


다 좋다. 그게 기초니까.


어쨌든 기초를 공부했으니까, 그 다음은 극본을 써야할 차례이다. 그런데 극작술을 가르쳐 주지 않고, 강사는 다짜고짜 극본을 써오라고 한다. 어떻게 쓰면 좋겠냐고 물으면, 가장 많이 돌아오는 대답은 '필사를 해보라'는 것이다. 당신은 다시 한 번 당혹감을 느꼈을 것이다. 심지어 배신감을 느꼈을 지도 모른다. 당신이 배우고 싶어서 고대했던 것을 극본을 필사하는 걸로 퉁쳐지는 느낌을 받았을 테니까.


하지만 그것은 강사의 잘못이 아니다. 그 강사도 윗 사람에게 그렇게 배웠고, 결국엔 작가가 되고 강사가 되어 당신에게 작법 터득의 필살기로 '필사'를 권유하는 것이니까. 모름지기 극본은 그런 식으로 배우는 것이라는 성현의 말씀을 그대로 전수한 것이다.


하지만 전략과 전술은?


당신은 어쨌든 극본을 완성하면, 그 습작물을 토대로 전략과 전술을 배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며칠 밤을 끙끙대고, 맨땅에 헤딩하며, 당신은 기어코 극본을 완성했던 것이 아닐까.


그러나,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합평이라는 합법적 난도질이다. 작가 지망생의 첫 습작은 아무리 난도질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만큼 허술하고 완성도가 떨어진다. 하지만 난도질을 당한 당사자는 심리적으로 엄청난 데미지를 입는다. 심지어 죽고 싶을 정도로 충격을 받거나, 악평을 한 동료에게 살의를 느끼기까지 한다. 합평 중에는 호평도 있는데 당신은 그 호평가와 친구가 된다. 하지만 악평가와는 척을 지게 된다. 그 어떤 경우도 당신의 극작술 발전에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당신은 강사의 평가를 기대하지만, 대부분의 강사들은 인상 비평을 해주기 마련이다. 초반엔 조금 몰입이 됐는데, 중반부터 힘이 빠졌어요. 캐릭터가 좀 모호한 느낌이 들고, 힘이 없네요. 전체적으로 구성이 약한 것 같아요 등등.


네네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


어떡하긴 뭘 어떡해? 더 열심히 쓰고, 부족하다 싶으면 필사를 하고, 고전도 좀 읽고... 맙소사. 드라마 극본을 배우러 왔다가 도돌이표를 만나는 상황을 반복하는 것이다.


나는 분명히 말하고 싶다. 합평은 습작기에 있는 작가 지망생에게 도움이 거의 되지 않는다고. 합평은 하거나 받는 사람의 수준이 어느 정도 되었을 때 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정확하게 문제를 지적해 줄 수 있어야 하고, 그 지적을 통해 수정방향을 제대로 잡을 수 있어야 한다.


나는 극본 쓰기의 전략과 전술을 건너 뛴 채 합평으로 넘어가는 방식은 드라마 극본 쓰기를 배우는데 좋지 않다고 확신한다. 이 방식은 시 창작이나 순문학 창작 수업에 어울리는, 이른 바 예술작품을 추구하는 수업에 적합한 형식이기 때문이다. 이런 합평에서 독자는 저마다 자기만의 해석을 말할 수 있어야 하고, 작가도 자신만의 독특한 의도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드라마 극본은 예술 작품이 아니다. 미국 사람들은 극본 쓰기를 공예(Craft)라고 한다. 어떤 공예품을 만들려면, 설계도가 있어야 하고, 제작 기법을 알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전략과 전술이다.


우리는 극본을 예술로 접근하는 방식을 버려야 한다. 합평이라는 선문답의 장도 가급적 자제해야 한다. 극본은 어디까지나 상업적 시각에서 다가가야 한다. 완성된 극본이 팔리고, 거기에 배우가 캐스팅이 되고, 제작비가 투여되는 과정에 상업성이 배제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지 않은가.


나는 <공모에 당선되는 극본 쓰기>라는 이 책에서 극본 쓰기를 전략적으로, 전술적으로 접근할 것이다. 그래서 1차 예심을 통과하게 하고, 2차, 3차를 지나 최종심에 이르는 방법을 매우 구체적이고 실질적으로 알려줄 것이다.


당신의 극본은 이제부터 가상의 한 심사위원을 위해 씌여져야 한다. 다른 분야의 심사위원은 예술적 평가를 할 지 몰라도, 적어도 드라마 극본의 심사위원은 상업적 가치를 최우선적으로 본다. 즉, 그들은 시청자의 대리인인 것이고, 좋은 극본을 찾아 시청자들에게 전달하고픈 머천다이저(MD)이니까.


이제 당신은 당신이 기존에 해왔던 방식을 버려야 한다.


모르긴 몰라도, 닥치고 따라오는 자에게 빛이 있을 것이다.


나는 이십년 이상 작가 지망생을 가르쳐 왔고, 작법을 공부하고 연구해 왔다. 물론 공모전을 통해 많은 당선자도 배출하기도 했다. 이제는 누군지 모르는 당신이 내 당선 매뉴얼을 보고 그대로 따라했더니 당선이 됐다는 얘기를 듣고 싶다.


솔직하게 고백한다.


나는 당신을 못 가르칠 자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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