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에 대한 단상들
스토리텔링에 대한 단상들
1. 스토리텔링에 관한 강의를 20년 가까이했다. 방송작가 교육원에서도 했고, KBS 아카데미에서도 했다. 중앙대 문창과에서도 한 2년 학생들을 가르쳤다. 중국 방송인을 상대로도 했고, 심지어 남미 방송인들에게도 했다. 한 번은 중국 본토에 가서 강의를 했는데, 그때 스토리텔링 강의로 중국 투어를 하자는 제안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중국을 한 바퀴 도는데 2년 걸린다고 해서 기겁하고는 거절했다.
2. 국내에서 출간된 거의 모든 작법서를 갖고 있다. 물론 감명 깊게 읽은 것도 있었고, 단지 수집용으로만 사놓은 것도 있다. 나는 작법 책이란 것은 결국 저자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자기만의 관점에서 리메이크한 거란 생각을 갖고 있다. 따라서 작법 책을 볼 때마다 저자의 재해석 또는 통찰의 관점에서 본다.
3. 리사 크론은 ‘스토리는 뇌의 언어’이며, 뇌는 스토리를 '현실을 해석하는 장치’로 사용하도록 진화했다고 했는데, 전적으로 동의한다. 어릴 적부터 많이 읽고 써왔으며, 또한 재능마저 갖춘 사람은 따로 배우지 않아도 스토리를 네이티브 스피커퍼럼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하지만 뒤늦게 스토리 업계에 뛰어든 사람들이 네이티브 스피커처럼 스토리를 만들면 실패할 확률이 매우 높다. 그런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문법책(작법 책)이다. 문법을 열심히 공부하고, 패턴 등을 암기해서 활용하면 네이티브 스피커에 가까이 갈 수 있다.
4. 작법 책을 여러 번 탐독했다고 해서 잘 써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왜 그럴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인생 경험이 적거나, 편협한 사고를 가졌거나, 사유의 깊이가 얕거나 등등. 하지만 정말 실질적인 이유는 작법을 스토리에 제대로 적용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즉, 작법 따로 스토리 따로.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빠른 방법은 ‘작법 공식’을 사용해서 스토리를 만들고 적용하는 훈련을 해야 하는 것이다.
5. 편의상 ‘공식’이라고 하지만, 공식이란 표현보다는 ‘원칙’, ‘규칙’, 또는 ‘정의’라는 표현이 어울 릴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공식’이라 하는 것은 이공계 출신인 내가 이런 내용들을 나름 공식으로 표현하려고 애썼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공식을 활용해서 수강생들을 가르쳤더니, 수업의 몰입도도 좋았고 수강생들이 만들어 낸 결과물도 매우 좋았다.
6. 스토리텔링 공식 중 어떤 것은 내가 찾아내고 만든 것도 있지만, 상당수는 내가 보았던 작법 책에 밑줄 그었던 것을 공식 형태로 만든 것이다. 그러나 내가 만들었다고 생각한 것이 어쩌면 오랜 전에 읽었던 어느 작법서의 한 구절일지도 모른다. 또한 그 작법서의 그 구절은 저자가 예전에 어딘가에서 읽거나 들었던 것을 옮겨놓은 것일 확률이 높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모든 작법서의 원전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이고, 그것은 수천 년 동안 리메이크되어 왔으니까.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은 음악으로 치면 세상에서 가장 많이 리메이크된 비틀스의 <예스터데이>가 아닐까 싶다.
7. 고수 작가들이 고안해 낸 작법을 소개한 책들이 있다. 볼 때는 재미있고 그럴듯하지만 실제로 활용해 보려면 잘 안 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초보자일 경우에는 그 정도가 심하다. 천재는 비기너를 잘 가르칠 수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자신에겐 저절로 됐던 것들이 비기너들한테는 왜 안 되는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란다. 따라서 아무것도 모르는 비기너로 출발해서 맨땅에 헤딩하듯 고수들의 작법서를 도장깨기 한 내가 훨씬 알기 쉽고 임팩트 있게 가르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적어도 내 경험에 비춰 볼 때 비기너들이 어떤 것을 이해 못하고, 뭐가 안 되는지 잘 알기 때문이다.
8. 스토리텔링 공식은 습작 중인 작가 지망생들에게는 당연히 유용할 것이고, 현업 작가들에게는 자신들의 작법을 돌아보고 재점검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또한 스토리를 즐기는 많은 분들에게 스토리를 더 재미있고 깊이 있게 즐길 수 있는 통찰을 제공할 것이다.
몇 년 전에 유명한 성우 한 분을 제자로 가르쳤었다. 2회 정도 수업을 했을까? 집으로 돌아가는데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너무 통화하고 싶어서 내 번호를 수소문했단다.
‘선생님, 제가요. 성우 생활 30년을 하면서 정말 수많은 원고들을 읽었는데요, 재미있는 건 왜 재미있고, 재미없는 건 왜 재미없는지 잘 몰랐었거든요. 근데 선생님 강의를 듣고 원고를 보는데, 이젠 알겠는 거예요. 너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