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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원 Dec 28. 2021

공식 11 : 하이콘셉트

내 이야기를 세일즈 하는 방법

"당신의 이야기는 무엇과 비슷합니까?"


자신이 만든 이야기를 두고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기분이 어떨까? 그것도 비행기를 타고 미국으로 날아가 쟁쟁한 할리우드의 제작자들 앞에서 피칭을 할 때 말이다.


"내 이야기는 그 무엇과도 비슷하지 않고, 매우 독창적입니다!"


순간, 자존심이 상해서 당신이 이렇게 외쳤다고 치자. 만약 그랬다면, 당신은 그 길로 고향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 몸을 실어야 할지도 모른다.    


할리우드는 독창적인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을뿐더러, 세상에 독창적이면서 재미있는 이야기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이야기가 재미있었다면, 그것은 과거에 보았던 어떤 재밌는 작품과 비슷할 확률이 매우 높다. 새로운 작품을 볼 때 어떤 기시감이 들어야  재미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데, 그 기시감의 정체가 바로 그 새로운 작품과 비슷한 '과거의 보았던 어떤 재밌는 작품'인 것이다.


따라서 제작자들은 당신에게 이것을 묻는 것이다.


"당신 이야기의 롤 모델은 어떤 작품입니까?"


실제로 어떤 작품과 비슷하냐는 질문은 할리우드 제작자들이 스토리 피칭 현장에서 많이 하는 질문이다. 한 팀당 10분 내외로 주어지는 피칭 시간에 준비한 작품을 효과적으로 설명하고, 그것을 이해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피처가 던진 공이 포수의 글러브에 닿을 때까지 걸리는 시간처럼, 매우 짧은 시간 안에 제작자들의 머리에 스토리를 각인시킬 수 있는 방법은 사실 유사한 작품을 예로 드는 것 밖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잘 나가는 제작자들이 아무 작품에나 롤모델이 된 작품이 뭐냐고 묻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그들이 그런 질문을 할 때는 당신이 찾아낸 소재가 마음에 들었을 때에 한한다.


즉, 이런 질문인 것이다.


"당신 소재가 맘에 드는데, 그 작품의 롤 모델은 무엇인가요?"


이 질문은 이렇게도 바꿀 수 있다.


"당신 이야기의 하이콘셉트는 무엇입니까?"

 

같은 질문인데, 하이콘셉트이라는 용어가 들어가니까 어렵게 느껴진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이 글을 끝까지 읽으면 하이콘셉트의 정의에 대해 헛갈릴 일이 없을뿐더러, 내 작품을 하이콘셉트로 피칭할 수 있게 되고 남의 작품을 하이콘셉트로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니까.


<하이컨셉트-할리우드의 영화 마케팅>라는 책에 의하면, 하이콘셉트는 미국의 상업 영화가 시장에서 수익성을 보장받기 위해서 고안해낸 개념적 장치라고 한다. 참 거창한 말인데, 말인즉슨, 내가 만든 이야기의 하이콘셉트가 확실하면 재미와 함께 부귀영화가 따라온다는 뜻이다.


자, 그렇다면 이쯤에서 하이콘셉트의 정의를 생각해 보자.


매력적인 소재를 가진 롤 모델이 있는 작품?


그렇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의 최고의 가치인 '스토리텔링 공식'으로 쓰기엔 좀 애매하면서 모호하기까지 하다.  


그렇다면, '삶에 대한 창조적 은유'.


혹자는 하이콘셉트에 대해 이렇게 정의하기도 했다. 철학적인 통찰을 보여주는 정의이긴 하지만 하이콘셉트를 이해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렇다면 위에 소개한 책에서는 하이콘셉트를 어떻게 설명하고 있을까? 불행하게도(내겐 다행스럽게도) 그 책에서는 하이콘셉트를 정확하게 공식화해놓은 구절을 보이지 않는다.


그 책에 의하면, 하이콘셉트이란 용어는 1970년대 초에 배리 딜러(Barry Diller)가 만들어 낸 것이라고 한다. 히트작을 많이 낸 ABC  방송국의 편성 책임자였던 그는 '하나의 문장으로 표현될 수 있는 이야기'에 한해서 제작을 승인했다고 하는데, 그 한 문장의 표현된 이야기가 바로 하이콘셉트이라는 것이다(디즈니의 제프리 카첸버그(Jeffrey Katzenberg)는 하이콘셉트이라는 용어의 원조는 파라마운트의 제작 이사였던 마이클 아이즈너(Micheal Eisner)라고 주장한다고 한다).


그 책에서 정의한 하이콘셉트는 이렇다.


높은 시장성을 보장하면서도, 강한 인상을 줄 수 있고, 그러면서도 쉽게 요약할 수 있는 내러티브.


무슨 말인지는 알겠다. 하지만 근데 그 공식이 어떻게 되냐고? 한 권의 책을 다 읽어봐도 이야기를 어떻게 한 줄 요약해야 하이콘셉트가 되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책에서는 그저 하이콘셉트 매칭 게임이라고 정의한 사례를 소개할 뿐이다. 이것은 'A가 B를 만나다'라는 공식에 의존하는 방법이다.


가령, <터미네이터>가 <더티 해리>를 만났을 때라는 하이콘셉트로 <로보 캅>이 만들어졌고, <에일리언>과 <에어포스 원>이 만났을 때라는 하이콘셉트로 <인디펜던스 데이>가 만들어졌다는 이다.


물론, 'A가 B를 만나다'는 피칭을 할 때 나름 괜찮은 방법이다. 그리고 창작자 입장에서 작품의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데도 도움이 된다. 하지만 일종의 '야매' 공식일 뿐 정식 공식은 되지 못한다.


자, 이제 내가 찾아낸 하이콘셉트 공식이 나간다.


아니, 잠깐... 그전에 왜 하이콘셉트가 필요한가부터 얘기를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나의 작품을 피칭할 때 '하이콘셉트'로 얘기해야 하는 이유는, 제작자들에게 짧은 시간에 그 작품이 어떤 것인지 확실하게 각인시키기 위함이다. 또한 그것은 내가 내 작품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하이콘셉트의 효용성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정말 중요한 사실은 작품을 소비하는 사람들이 하이콘셉트를 통해 작품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말로 설명을 못할 뿐, 작품에 대한 여러 정보를 통해서 귀신 같이 하이콘셉트를 캐치해 낸다. 요즘처럼 온갖 영상물이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시대에서는 더욱더 하이콘셉트가 중요한 것이다.


이제 정말 하이콘셉트의 공식을 소개하겠다.


우선 위에서 언급했던, '당신 소재가 맘에 드는데, 그 작품의 롤 모델은 무엇인가요?'에서 논의를 진행시켜 보자. 맘에 드는 소재라는 것은 말 그대로 '소재적 측면'인 것이다. 그리고 작품의 롤 모델은 '주제적 측면'인 것이다. 즉, 어떤 소재가 어떤 주제가 만나 하이콘셉트가 된다는 뜻이다.


하이콘셉트 = (    ) 소재 + (    ) 주제

 

이 공식에서 괄호 안에 들어갈 수식어는 무엇일까? 답을 바로 말해준다.


하이콘셉트 = 신선한 소재 + 영원한 주제


서두에 말했던 당신의 작품이 무엇과 비슷하냐는 질문은 곧 이야기의 주제가 무엇이냐는 질문과 같은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제임스 카메론의 걸작 <타이타닉>의 원 라인 하이콘셉트는 '침몰하는 타이타닉 호에서의 로미오와 줄리엣'이었다. 느낌이 팍 오지 않는가? 이런 하이콘셉트를 만들어내는 제임스 카메론이야 말로 진정한 선수가 아닐 수 없다.


여기서 신선한 소재는 바로 '타이타닉 호'인 것이고, 영원한 주제는 바로 <로미오와 줄리엣>의 '진정한 사랑은 죽음을 초월한다'인 것이다.


위에서 예로 들었던 <로보캅>의 하이콘셉트에서 소재적 측면은 경찰이 <터미네이터>처럼 로봇이라는 것이고, 주제적 측면은 <더티 해리>처럼 '무자비한 법집행을 과연 옳은가?'인 것이다. 그리고 <인디펜던스 데이>는 소재적 측면이 '테러리스트가 외계인'이라는 것이고, 주제적 측면이 '대통령이 테러리스트와 직접 싸우는 것은 얼마나 위대한가'인 것이다.


하이콘셉트에서 신선한 소재는 그 자체로 신선하게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주제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그 신선도(?)가 정해지는 것이다.


넷플릭스에서 방영되어 전 세계 1위를 기록한 <오징어 게임>의 하이콘셉트는 무엇일까?


<오징어 게임>에서 신선한 소재는 다름 아닌 어린 시절 추억의 놀이들이다. 그리고 주제는 '서바이벌 게임'의 그것이다. 즉, '내가 살기 위해서는 남이 죽거나 남을 죽여야 한다'이다. 따라서 원 라인 하이콘셉트로 표현하면, '어린 시절 추억의 놀이를 가지고 벌이는 피도 눈몰도 없는 생존 게임'이 될 것이다.


영화 <모가디슈>의 원 라인 하이콘셉트는 무엇일까?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에서 펼쳐지는 남북 동포애 이야기다. 신선한 소재는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인 것이고, 영원한 주제는 '피는 물보다 진하다'인 것이다.  나는 이 이야기가 한반도에서 진행되었다면 사람들의 흥미를 그렇게 끌지 못했을 거라 생각한다.


이렇게 하이콘셉트가 쉽게 파악되는 작품들은 성공할 확률이 높다. 하이콘셉트에서 재미의 절반이 직관적으로 판가름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쉽게 하이콘셉트가 파악되지 않은 영화나 드라마는 정말 성공하기 어려운데, 그 이유는 요즘처럼 OTT가 범람하는 시대에서 시청자들의 흥미를 유발하기조차 힘들기 때문이다.


하이콘셉트가 명확하지 않아 실패한 유명 작품들의 예를 수도 없이 들고 싶지만, 훗날이 두려워 꾹 참는다. 독자들이 하이콘셉트 공식을 이용해서 직접 찾아내기 바란다. 의외로 재미있는 작업이 될 것이다. 실패한 블록버스터의 대다수는 이 하이콘셉트에서부터 망했다고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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