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 02 : 매력
매력 = 동경심 + 동질감
“주인공 캐릭터에 매력이 없네요.”
예전에 프로듀서들에게 자주 듣던 말이다(부끄럽지만 요즘도 듣는다).
“그렇군요. 근데 캐릭터의 매력이란 게 뭔가요?”
나는 정말 몰라서 물었는데, 프로듀서들은 내가 반항하는 줄 알고 얼굴을 붉히기 일쑤였다. 심지어 이런 말을 하는 프로듀서도 있었다.
“작가님, 저를 능멸하시는 건가요?”
이 자리를 빌려서 사과한다. 그때 난 정말 몰라서 물었던 거다. 그리고 내가 당신을 능멸한 게 아니라, 당신 역시 몰랐기에 스스로 능멸된 것일 뿐이다.
어쨌든 하도 그런 얘기를 듣다 보니까 ‘매력의 실체’를 한 번은 제대로 파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작법 책들을 뒤졌다. 없었다(혹시 매력에 대한 설명이 있는 작법 책 보신 분 제보 바랍니다). 그래서 이번엔 ‘매력’이란 단어가 제목에 들어간 책들을 구입했다. 의외로 실용서에서 작법에 적용할 핵심을 얻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었다(내 경우에는 선거 전략 책에서 작법에 대한 인사이트를 얻은 적이 있었다).
미치는 줄 알았다. 왜? 없었으니까. 매력을 소재로 책 한 권을 할애한 책들에서도 내가 찾아헤매고 있는 매력에 대한 통찰이 없다는 것은 사실 충격이었다. 그런 책들은 대개 이런 방식을 취하고 있었다. 누가 봐도 매력적인 사람들을 모아놓고, 그들의 살아온 이력을 소개한 뒤 매력적이지 않습니까, 하고 물음과 동시에 결론을 내는 것이다.
나는 울고 싶었다. 다 좋은데, 대체 매력의 실체가 뭐냐고?
그 해답은 우연한 기회에 어느 감독에게서 얻을 수 있었다. 그는 캐릭터의 매력이 뭐냐고 되묻는 내게 결코 능멸당하지 않았던 것이다.
“매력은 동경할 만한 요소를 가진 인물이 나와 비슷한 사람임을 깨닫게 될 때 생깁니다.”
심봤다! 드디어 찾은 것이다. 매력의 실체. 이름하여 매력 공식.
매력 = 동경심 + 동질감
자, 이제 공식을 사용해서 캐릭터를 분석도 하고 적용도 해보자.
어느 잘 생긴, 이른바 비주얼 깡패인 남자가 화면에 나온다. 잘 생긴 외모는 그 자체로 동경의 대상이다. 게다가 그는 요즘 가장 핫한 영화배우다. 그런 그가 커피숍에 들어와 아메리카노를 한 잔 주문하고는 멋진 자세로 테이블에 팔을 기대고 뭐가 즐거운지 콧노래를 부른다. 그냥 화보이다. 보는 것만으로도 은혜롭다. 이윽고 커피가 나오자 눈을 감고 향을 깊게 음미한 다음 ‘잘 마실게요’하곤 윙크까지 날리며 커피숍을 나간다. 그러면 카페 아르바이트생, 다리에 힘이 빠져 주저앉는다.
만약, 당신이 스토리를 이런 식으로 쓴 뒤 ‘매력이 철철 넘친다’고 생각한 다면, 당신의 작가적 미래는 그리 밝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커피를 주문하는 남자의 매력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동질감이 표현되지 않은 것이다.
매력의 핵심은 동경심이 아니라 동질감이다. 그리고 동질감은 나만 할 것 같은 것을 그 사람도 하는구나 생각될 때 가장 강력한 효과를 낸다.
자, 그럼, 위의 이야기에서 동질감을 사용해서 캐릭터의 매력을 한 번 만들어 보자.
... 이윽고, 커피가 나오자 눈을 감고 향을 깊게 음미한 다음 ‘잘 마실게요’하곤 커피숍을 나가다가 그는 ‘아차!’하고는 카운터로 돌아온다. 카페 아르바이트생, 왠지 긴장된 모습이고. 카운터에 커피를 내려놓은 그는, 지갑에서 쿠폰을 꺼낸다.
"스탬프를 안 받아갈 뻔했네요."
남자가 선한 미소를 짓고, 카페 아르바이트생 역시 미소를 짓는다.
두 유 언더스탠?
이젠 실제 작품인 <별에서 온 그대>에서 여주인공인 천송이가 어떤 때 매력적인지 찾아보자. 우선 동경할 만한 요소. 이것은 분명하다. 그녀는 대한민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유명하고 아름다운 탑스타이다.
그런 천송이가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은 상황에서 그것을 어떻게든 풀려고 한다. 과연 어떻게 스트레스를 풀까?
그녀는 패리스 힐튼 같은 돈 많은 셀럽이다. 우리는 그런 사람이 스트레스를 풀 때 백화점 명품관에 가서 싹쓸이 쇼핑을 하거나, 강남의 고급 클럽에 가서 비싼 술을 진탕 먹고 골든벨까지 울릴 거라 생각한다. 아니면, 비행기 1등석을 타고 유럽 어느 나라로 휙 날아가던가.
천송이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왜? 시청률이 떨어질 것을 아니까. 그래서 천송이는 어렸을 때 자주 가던 만화방에 가서 낄낄거리고 때론 찔찔 짜며 만화를 본다. 그게 그녀가 스트레스를 푸는 법이다. 거기에 라면과 소주는 덤. 시청자의 상당수가 그렇게 하는, 또한 그렇게 할 수도 있는 행동을 하는 것이다.
매력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아 끄는 힘’인데, 이런 식으로 표현된 매력이 시청자의 마음을 사로잡아 끝까지 작품을 보게 만드는 것이다.
매력에서는 동경심보다 동질감이 더 중요하다. 동질감이 기준점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자신과 비슷한 사람이 자기보다 얼마나 더 멋지고 훌륭한 사람인가를 판단한다. 따라서 실력 있는 작가들은 캐릭터의 동경심보다는 동질감에 방점을 둔 묘사에 집중한다.
미드 <더 클로저>를 보자.
이 드라마는 LA 경찰청 특수팀의 책임자인 브렌다가 거친 남자들이 득시글한 경찰청 내에서 뛰어난 실력도 실력이지만, 여성 특유의 섬세함으로 각종 어려운 사건들을 해결해 나가는 수사물이다. 미모와 실력에다 강단까지 갖춘 경찰청의 수사 책임자라는 설정은 동경할 만한 요소로서는 거의 끝판왕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더 클로저>는 브렌다라는 캐릭터에서 시청자들과의 동질적 요소를 어떻게 설정했을까? 그것은 여성이라면 거의 누구나 고통(?)받고 있을 것 같은 ‘단 것에의 유혹’이었다(이 시리즈의 크리에이터는 정말 고수임에 틀림없다).
브렌다는 스트레스에 노출된 보통의 직장인들처럼 늘 단 것이 땡기는 여자이다. 책상 서랍을 열면, 그 안에는 초콜릿, 쿠키, 그리고 도넛 같은 것들이 항상 들어있다. 먹을까 말까, 그녀는 수시로 서랍을 열었다 닫는다. 과부 사정 홀아비가 안다고. 그 브렌다의 심정을 시청자들은 잘 안다. 그러면서 캐릭터의 매력에 빠져든다. 왜? 내 서랍(마음의 서랍도 포함)에도 단 것들이 들어 있거든. 그런 브렌다가 어려운 사건을 끝내고 퇴근 준비를 하다가 뭔가 허전함을 느낀다. 왜 허전할까, 그러면서 문득 서랍을 연다. 그 안에 들어있는 먹음직스런 도넛... 브렌다는 미소를 지으며 도넛을 자신에게 주는 선물인양 한 입 베어 물고는 세상 가장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나는 바로 이런 브렌다의 매력이 드라마를 시즌 7까지 만들어진 원동력이라고 본다(이 드라마 때문에 살찐 사람 많다고 들었다).
이젠 심화과정에 들어가 보자.
미국과 일본에서 리메이크되기도 한 <굿 닥터>의 주인공 캐릭터 매력을 살펴보자.
주인공 박시온은 천재 의사라는 동경할 만한 요소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는 자폐아로서 드라마를 보는 보통사람들에게 동질감을 유발하기 힘들다. 그렇다면 박시온은 매력이 없는 캐릭터일까? 아니다. 박시온은 매력의 최상위 레벨인 치명적인 매력의 소유자이다.
사실 동질감은 시청자들과 감정적 유대를 위한 장치라 볼 수 있다. 그리고 가장 강력하게 감정적 유대를 할 수 있는 것은 동질감보다는 연민과 동정이다. 남의 처지를 불쌍하게 여겨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인 것이다.
즉, 이것을 공식으로 표현하면 이렇다.
치명적 매력 =동경심+동정심
미드 <하우스>의 주인공 닥터 하우스 역시 의학에 천재이다. 하지만 성격이 괴팍하고 지랄 맞다. 그런데도 닥터 하우스는 치명적인 매력의 캐릭터이다. 왜냐하면, 그는 잘라야 되는 다리를 자르지 않아서 영구적인 통증을 안고 사는 환자이기 때문이다. 우리도 아프면 짜증이 나는데, 닥터 하우스는 오죽하겠나. 그는 그런 몹쓸 통증을 안고 살면서 사람들을 기가 막히게 살려낸다. 그러다 보니 그가 내뱉는 각종 비호감적 발언들이 유머와 애교로 들린다. 바로 치명적인 매력의 힘이다.
미드 <퀸즈 갬빗>의 혼외자인 엘리자베스는 엄마가 자살하는데 함께 자살당할 상황(?)에서 극적으로 생존해서 고아원에 맡겨진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말하길, 인간은 부당한 대우를 받는 인간에게 감정이입을 한다고 했다. 누구나 살아오면서 부당한 대우를 안 받아본 사람이 없을 것이므로, 그런 경우에 처한 인간을 보면 동병상련을 느끼면서 연민을 느끼고 동정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엘리자베스는 엄청나게 부당한 대우를 받은 것이고, 그로 인해 보는 사람과 연민과 동정을 통한 ‘감정적 유대’를 탄탄하게 맺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엘리자베스가 체스 천재였다니! 매력이 치명적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질문을 할 수 있겠다.
악역이나 빌런도 이런 매력 공식으로 설명할 수 있나요?
있지, 왜 없겠는가?
폭력이나 금단의 것을 행하는 것도 보통 사람들이 쉽게 행할 수 없는 동경의 요소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 악당이 매력적이려면, 그에게도 감정적 유대를 할 수 있는 동질적 요소나 동정적 요소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영화 <조커>를 보자.
<조커>가 명작인 이유를 캐릭터의 매력적 측면에서 보면, 영화 전체가 주인공 아서를 연민과 동정하게 만드는 에피소드로 점철되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앞서 말했듯이 동경할 만한 요소는 나쁜 짓도 포함되므로, 이유야 어찌 됐든 어머니를 살해한 아서는 악에 대한 동경적 요소를 충족하고도 남는다. 하지만 그는 처음엔 아주 착한 사람이었다. 병든 노모를 모시고 살고, 그녀와 함께 티브이 쇼를 보는 것을 즐기는 소시민이었다. 광대 분장을 하고 피켓맨할 때 아이들이 피켓을 빼앗고 두들겨 패도 화조차 못 내는 사람이었다. 그는 웃음이 한 번 터지면 멈추지 못하는 특이한 병을 갖고 있었으며, 우울증 환자이기도 했다. 그런 그에게도 꿈은 있었으니, 멋진 스탠드업 코미디언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재능마저 없었다. 연민+동정+연민+동정... 이렇게 영화는 조커가 매력적인 빌런이 되도록 치밀하게 연민을 자아내도록 했고, 동정을 유발하게 해서 감정적 유대 내지는 지지를 이끌어 냈다.
이제 매력의 실체를 알게 되었는가?
그럼, 묻겠다.
이번 글을 통해서 느껴지는 나(이기원)은 매력적인 캐릭터인가?
뭐, 별다른 매력이 있진 않지만, 그래도 굳이 있다는 가정 하에서 한 번 생각해 보자.
우선 동경할 만한 요소.
글도 잘 쓰고, 작품에 대한 분석도 뛰어나며, 통찰도 있다(인정하고 싶지 않으면 안 해도 된다).
다음은 동질적인 요소. 글을 읽은 당신과 비슷하거나, 비슷할 것 같은 것. 그런 게 이번 글에 있는가?
있다. 이번 글 맨 앞에 피디들로부터 캐릭터에 매력이 없다는 얘기를 예전에 많이 들었다고 하곤, 부끄럽지만 요즘도 듣는다, 라고 말한 대목 말이다. 그 부분에서 속으로 피식하고 웃었다면 내게 매력을 느낀 것이다.
왜?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오랫동안 일해 온 분야에서 여전히 부족하다고 지적을 받아본 경험이 있고, 또한 그런 기분이 어떤 건지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순간적으로 느꼈을 것이다. 나름 작법 이론계의 일타강사지만, 실제로 작품에 들어갔을 때는 여전히 칼자루를 쥔 자에게 휘둘리는, 연민을 자아내고 동정을 불러일으키는 작가 일 뿐이라는 것을. 그래서 인간 냄새가 난다고.
그렇다고 내가 뭐 치명적인 매력의 소유자라는 것은 아니다. 오해 말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