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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원 Jun 26. 2023

공모에 당선되는 극본쓰기 02

주제 파악을 하지 못하면 작가에겐 미래가 없다.  


(이 글은 제가 앞에 연재했던 '공식으로 배우는 스토리텔링'의 주제 편과 로맨틱 코미디와 멜로 드라마 편을 이번 연재에 맞게 재구성한 것입니다. 역시나 중간까지 여기서 읽으시고, 뒷부분은 얼룩소에 가셔서 읽으시고... 구독, 좋아요, 응원댓글 부탁 드립니다).



"제가 쓸 작품의 한 줄 요약을 해냈으니, 이제 극본을 써도 될까요?"


아니다. 절대 아니다.


당신은 이제 겨우 극본의 기본이 되는 뼈대를 하나 얻었을 뿐이다. 그 뼈대에 살을 붙이고, 혈관과 장기를 넣어서 극본을 만들기 전에 작품의 영혼에 대한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 튼튼한 뼈대에 영혼이 더해져야 좋은 작품이 나온다.


작품의 영혼은 무엇일까?  


지난 회차에서 한 줄 요약에 대해 충분하게 설명했기 때문에 당신은 아마도 감독, 프로듀서, 제작사 대표, 바이어 등을 만났을 때 가져야만 했던 두려움을 절반 정도는 극복했으리라 믿는다. 이제 이번 회차에서 나머지 절반을 마저 극복하도록 하자.    


작가를 공포에 몰아넣는 또 하나의 질문.


"작품의 주제가 뭐죠?"


즉, 작품의 영혼에 관한 물음이다. 이 질문도 만만치가 않다.


나도 과거에 이런 질문을 참 많이 받았다. 하지만 그때마다 명쾌한 대답을 한 적이 거의 없었다.


"주제가 뭐 중요한가요? 재미만 있으면 됐지."


심지어 이런 대답을 한 적도 있었다. 정말 최악의 답안이다.


작품의 내용을 한 줄로 요약(원 라인 아이디어)하는 것도 힘들지만, 주제를 말하는 것도 쉽지는 않다. 하지만  해내야만 한다. 그러면 당신의 집필 생활에 꽃이 제대로 필 것이다.  

주제라는 게 대체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너무나 쉽다. 주제는 누구나 알고 있듯 ‘작가가 작품을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하지만 작품을 통해 자신이 의도한 주제를 제대로 드러내는 작가들은 솔직히 프로 작가들 중에서도 그리 많지 않다. 실제로 많은 드라마들이 주제가 모호하거나 심지어 주제가 실종된 채 방송 되었거나 되고 있는 중이지 않는가.


하지만 이런 사실을 두고 당신이 드라마에 굳이 주제의식을 심을 필요없다는 식으로 합리화 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주제를 잘 구현 못하고 산으로 간 드라마를 쓴 작가들이 그 다음에 기회를 받는 일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방송가에는 이런 얘기가 있다. 데뷔작이 대표작이 되고 은퇴작이 된다. 이게 다 주제를 드라마를 통해 제대로 구현하지 못해서인 것이다.


그러니 정신 똑바로 차리고 이번 회차에서 '주제'에 대해 꽉 잡기 바란다.


내가 말하는 주제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주제 = A > B


이게 뭐지? 황당할지 모르지만, 그래도 그 황당함 때문에라도 ‘주제 = A > B’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절대로 잊지 말기 바란다.


풀어 얘기하자면,


주제는 A가 B보다 낫다, 라는 식으로 구현되어야 한다.



‘ 낫다’는 보다 더 좋거나 앞서 있다는 뜻인데, 숭고하다, 소중하다, 가치 있다, 행복하다, 의미있다 등으로 대치가 가능하다.


권선징악이라는 주제가 있다. 이것은 ‘선이 악보다 낫다’이다. 즉, 선이 악을 무찌르는 식으로 주제가 구현된다는 것이다.


'형제는 용감했다'류의 스토리들이 있다. 이런 스토리의 주제는 보통 '피는 물보다 진하다'라고 쓰는데, 이것 역시 결국  'A가 B보다 낫다'인 것이다. 즉, 혈연끼리 뭉쳐 비혈연의 연합을 이기는 식으로 스토리가 구성된다.


여주인공이 사랑하는 사람과 돈 많은 사람 중에서 갈등하다가 사랑하는 사람을 선택하는 스토리라면, 당연히 주제는 ‘사랑이 돈보다 낫다’가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나중에 시놉시스 상에는 ‘세상에서 사랑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말하고 싶다'라는 식으로 약간은 그럴 듯하게 써야 한다. 하지만 작가의 머릿속에는 사랑이 소중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돈을 비교 대상으로 쓰겠다는 분명한 계획이 있어야 한다. 그러니까, 사랑과 돈을 선택하는 상황이 계속 주어지고, 주인공은 돈을 계속 선택하다가 맨 마지막에 사랑을 선택하면서 반전과 감동을 주는 식으로 이야기가 흘러가는 것이다.   


라이벌 간의 대결 스토리에서는 보통 '힘들지만 정정당당하게 얻은 승리가 손쉽고 비겁한 승리보다 낫다'는 식으로 주제를 구현한다. <록키>가 이 주제를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주인공이 승리를 포기하거나 일부러 지는 식으로 끝나는 스토리도 있다. 이런 스토리의 주제는 어떻게 될까? 당연히 주제는 같다. 다만, 이번엔 주인공이 손쉽고 비겁한 승리를 하는 식으로 스토리가 전개되지만, 마지막엔 그런 승리를 포기하거나 거부함으로써 정당한 승리가 더 낫다는 메시지를 주게 된다.  


복수극의 주제를 알아보자.


복수극, 그중에서도 유혈이 낭자한 복수극의 주제는 대체로 '복수를 하지 않음으로써 일신의 안녕을 꾀하는 것보다 이 한 몸 부서지더라도 복수를 하고 마음의 평화를 얻는 것이 더 낫다'이다. 때문에 주인공은 스토리 속에서 정서적으로 매우 힘든 상황에서 복수를 결심하고, 결국엔 죽음을 무릅쓰고 복수에 나서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영화 <글레디에이터>의 주제이기도 하다. 주인공 막시무스는 검투사로서 인기를 구가하면서 적당히 살 수도 있었지만, 굳이 자신을 위험 속에 내던져 복수를 하고 끝내 평화로운 죽음을 맞이하지 않는가.


김은숙의 <더 글로리>는 어떤가? 문동은을 통해서 <글래디에이터>와 똑같은 주제를 구현하고 있다.


로맨스 드라마는 멜로와 로코를 나눠서 생각해 보자.


로코와 멜로를 단지 전자는 웃기고, 후자는 슬픈 거라 인식하고 있으면 곤란하다.


로맨틱 코미디와 멜로 드라마는 사랑의 완성점이 다르다. 로맨틱 코미디는 사랑이 완성되면서 끝나지만, 멜로 드라마는 완성된 사랑에서 시작한다.


이렇게 이해하고 있으면 베스트.


로맨틱 코미디는 주인공 남녀가 서로에게 호감이 없는 상태에서 시작한다. 사랑이 완성되면서 끝나야 하기 때문에 둘의 첫 만남은 대부분 악연이다.


로맨틱 코미디의 주제는 사랑과 함께 하는 삶이 그렇지 않은 삶보다 낫다, 이다. 때문에 사랑을 선택함으로써 스토리에 방점을 찍는다.


여기서 핵심은 사랑의 완성이 마지막에 이뤄진다는 것. 그 완성된 사랑이 값지려면, 가장 사랑하지 않는 상태에서 시작해야 한다. 때문에 어떤 해프닝으로 인한 다툼으로 시작하고, 심지어 상대를 죽이고 싶은 상황에서 시작하기도 한다. 그래야 주제가 한층 잘 드러난다.


멜로 드라마는 주인공 남녀가 운명적으로 사랑에 빠지는데서 시작한다. 그 운명적인 사랑이 시작되는 곳은 주로 파티나 축제. 일단 사랑이 완성되면 그 다음은 그들의 사랑이 얼마나 견고한지 테스트하는 식으로 전개된다. 그들을 갈라놓기 위한 방해 카드들이 한 장씩 제시되고, 주인공은 그것을 극복해 나간다.  돈, 신분, 어두운 과거, 알고 보니 원수 집안 등등이 카드로 사용된다. 하지만 끝내 그 어떤 것도 그들의 사랑을 찢어놓지 못하고 만다. 그래서 진정한 사랑을 공식적으로 인정받고 해피 엔딩.


멜로 드라마의 주제 역시 로코와 마찬가지로 사랑과 함께 하는 삶이 그렇지 않은 삶보다 낫다, 이다. 하지만 주제를 구현하는 방식이 두 장르를 구분하는 사랑의 완성점 때문에 다르게 펼쳐진다. 위에 설명한 라이벌 드라마의 두 가지 패턴의 예와 비슷하다.  


멜로 드라마에서는 때때로 주인공 중 어느 한쪽이 죽기도 하는데,  결국 그들의 사랑은 죽음만이 갈라놓았다는 메시지를 던져준다. 즉, 이것을 멋있게 말하면, 진정한 사랑은 죽음을 초월한다. <로미오와 줄리엣>이나 <러브 스토리>, <타이타닉>이 그런 스토리이다.


이제는 주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주제는 이렇게 단순화해서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주제의 정의와 표현법을 알았다면, 주제를 어디서 추출해야 하는가를 알아야 한다.


주제는 한 줄 요약에서 나오는 것이고, 주제의 핵심은 주인공의 약점 극복이다.


알겠는가? 한 줄 요약과 주제의 상관 관계를?


다음의 예를 보자.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주제적인 측면으로 볼 때 <굿 닥터>와 같은 스토리이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 훌륭한 변호사가 되고 싶은 자폐아 우영우는 온갖 어려운 사건을 해결하고 편견을 극복하면서 한 인간으로서도 훌륭한 성장을 한다.


굿 닥터 : 굿 닥터가 되고 싶은 자페아 박시온은 온갖 어려운 의학적 케이스를 해결하는 동시에 자신에 대한 편견을 극복하며 좋은 의사로 성장한다.


두 드라마의 '한 줄 요약'에서 다음과 같은 주제를 뽑아낼 수 있다.


장애와 편견을 극복하는 삶이 그렇지 않은 삶보다 낫다.


그렇다면, 스토리는 주인공에게 장애와 편견을 극복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어야 한다.


무슨 그런 당연한 소리를 하십니까?


그렇다. 당연한 소리이다. 하지만 막상 집필에 들어가면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은 것에 휘둘리는 상황이 부지기 수로 발생한다.


어떤 케이스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치자, 이때 평범한 작가들은 그 아이디어가 재미가 있는지 없는지로 판단을 한다. 그리고는 재미의 극한을 추구하게 된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드라마가 산으로 가게 될 확률이 농후하다. 이런 드라마는 뭔가 빵빵 터지는데, 실제로 재미도 없고 보고 난 뒤에 뭘 봤는지 모르는 작품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노련한 작가는 그 아이디어가 과연 장애와 편견을 극복하는데 유리한지 불리한지를 먼저 생각한다. 그래서 그 아이디어를 극본에 녹여낼 때 장애와 편견을 극복하는 형태로 써낸다. 아무리 멋지고 좋은 아이디어라고 해도 주제와 부합하지 않으면 가차없이 버린다. 이게 바로 선수와 비선수의 차이다. 이렇게 되면 드마가가 일관성이 있어지고, 훨씬 재미있고 의미도 챙기는 드라마가 된다.


작가는 주제를 살리는데 유리한가 불리한가로 아이디어를 골라 써야한다.  


시놉시스를 쓰지 않고 쓰려면, 이 방식에 능숙해지고 노련해져야 한다.


이렇듯 주제를 공식 '주제 = A > B'로 이해하는 것은 매우 유용하다. 주제를 아는 것이 작가 자신이 어떤 스토리를 쓰고 있는지 명확하게 하는 것이니까.  

만약 내가 가르쳐 준 방법을 사용하지 않으면, 경고하는데, 당신은 빅토르 위고나 어네스트 헤밍웨이처럼 위대한 작가가 될 위험성이 있다.  


이 다음 부분은 얼룩소에서....


https://alook.so/posts/rDtw0Y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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