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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원 Jul 11. 2023

공모에 당선되는 극본쓰기 05

05. 이제 일취월장은 더 이상 남 얘기가 아니다 - 중급

05. 이제 일취월장은 더 이상 남 얘기가 아니다 - 중급



당신은 극본 쓰는 능력의 향상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가?


"드라마를 잘 쓰기 위해서 특별히 하는 일이 뭔가요?"


지망생들에게 내가 자주 물어보는 말이다. 그러면 십중팔구는 '드라마를 많이 본다'라고 한다. 아마 당신도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묻겠다. 


"드라마를 정말 많이 보시는 우리 할머니와 어머니는 왜 작가가 안 되신 걸까?"


나는 영화나 드라마를 많이 보는 것이 작가가 되는 지름길이라고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그건 그냥 재밌어서 보는 것일 뿐이다. 뭐 도움이 안 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단지 영상물을 보는데 들이는 시간에 비춰볼 때 그 효과의 가성비는 매우 떨어지는 일이다.  


이런 질문에 답해 보자. 


"당신이 만약 피아니스트가 되고자 한다. 그럼 평소에 무엇을 해야 하나?"


아마 음악을 많이 들어야 한다고 대답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런데 왜 당신은 드라마 작가가 되기 위해서 영화와 드라마를 많이 본다고 대답하는가?


피아니스트가 되려면 하루에 몇 시간이고 피아노 앞에 앉아 있어야 하듯, 작가가 되려는 당신은 키보드 앞에 그렇게 앉아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매일 그렇게 키보드 앞에 앉아서 작품을 쓰면 될까? 아니다. 그것은 불가능하다. 피아니스트는 끝없이 트레이닝을 하듯 당신도 창작을 하기보단 트레이닝을 해야 한다. 


당신은 영상물을 쓰는 작가로서 어떤 트레이닝을 해야 하는가?


당신은 '하루 한 씬' 트레이닝을 꾸준하게 해야 한다. 


말 그대로 매일 한 개의 씬을 쓰는 것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한 개. 


초보자들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극본을 쓸 때 몇십 씬을 한 번에 쓴다는 것이다. 미루고 미루다가 합평날이 다가오면 이삼일 내에 밤을 새워 후루룩 극본을 쓰고는 제출한다(나는 그런 식으로 쓴 극본을 합평하는 것에 대해 반대한다). 그렇게 써진 극본은 완성도가 있을 리 없다. 뿐만 아니라, 하나의 씬이 갖춰야 할 여러 가지 요소들이 무시된 채 쓰이기 때문에 극본 쓰는 실력이 시간이 흘러도 항상 제자리표이다. 


그래서 당신은 평소에 1일 1씬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것처럼 당신의 씬 쓰기 능력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켜 줄 트레이닝 방법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하루 한 씬 트레이닝은 일기를 쓰듯 매일 하루 한 씬을 쓰는 것이다. 되도록 공을 들여서.  


내용은 당신이 정하기 나름이다. 그날에 있었던 일 중에서 하나를 골라 씬을 하나 쓸 수도 있다. 친구나 가족이 함께 했던 상황이 등장하고, 그것을 극본의 한 단위인 씬으로 재구성해 보는 것이다. 동시에 친구 또는 가족의 대사들을 떠올려 쓰는 것이다. 저절로 캐릭터 대사 연습도 된다. 


소설을 보다가 필 받은 한 대목을 한 씬으로 써볼 수도 있다. 저절로 각색 연습이 된다. 영화를 보고 나온 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그대로 재현해 보거나, 내 나름대로 재해석해서 써볼 수도 있다. 

그날 우연히 목격한 어떤 장면일 수도 있고, 그냥 문득 떠오른 어떤 장면일 수도 있다.  

어떤 씬만을 쓰겠다 정해놓지 말고, 그날그날 어떤 씬을 쓸지를 정해라. 


매번 하루 한 씬을 쓰기 전에 무엇을 쓸까 행복한 고민을 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다. 하루 한 씬을 일 년 동안 한다면, 당신은 365씬을 쓰게 되는 것인데, 그것은 미니 시리즈 6부작에 해당하는 분량이다. 그리고 그 씬들 하나하나는 매일 공들여 쓴 씬이다. 


'하루 한 씬 쓰기'를 꾸준히 하면 당신은 씬 쓰는 테크닉에 있어서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실력을 갖게 될 것이다. 


세상에 나오는 모든 드라마를 보는 것을 자제하고, 하루 한 씬 쓰기에 몰빵하고 싶어 지는가? 

어쩌면 당신은 평소 보는 드라마를 절반 이하로 줄이라고 하면, 금단증상을 느끼거나 불안해질 지도 모른다. 왠지 드라마 작가로부터 멀어지는 느낌도 들 수도 있을 것이고. 하지만 줄여야 한다. 당신에게 필요한 드라마만을 봐야 한다. 

내가 지켜본 작가들 중에는 드라마를 보느라 정작 작품을 쓸 시간을 못 내서 망한 작가들이 많다. 


드라마를 보는 것으로 실력을 향상하고 싶다면, 좋아하는 드라마를 보고 또 보도록 해라. 


내 아내는 로코 드라마 광이다. 국내 로코는 이미 마스터했고, 일본 로코를 다 해치운 뒤 중국 로코까지 섭렵했다. 아내에게 재미가 있는 드라마가 하나 걸리면, 아내는 그 드라마를 아주 작살을 내버린다. 보고 또 보고, 몇 번을 본 뒤, 가만히 앉아서 머릿속으로 줄거리를 처음부터 떠올리다가 막히면, 그 부분을 찾아서 다시 본다. 그리고 나중에는 리모컨을 들고 재미있는 부분만 발췌해 가며 또 본다. 배우 양양을 좋아해서 그가 나온 <미미일소흔경성>은 이십 번 이상 본 걸로 나는 알고 있다. 


나는 내 아내가 극작가가 되었다면 잘 됐을 거라 생각한다. 다만, 권유하지는 않았다. 혹시라도 나보다 잘 쓰면 견딜수 없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내 아내처럼 광적으로 볼 필요는 없지만, 좋아하는 드라마를 보고 또 보는 것은 스토리텔링 관점에서 많은 도움이 된다. 즉, 모든 드라마를 다 보는 것을 지양하고, 선택과 집중을 하기 바란다.    


또 하나의 중요한 트레이닝이 있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다 감동을 느끼는 순간,  콧날이 찡한 순간, 또는 박장대소를 터트린 순간 등 특별한 순간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면 그 순간을 놓치지 말고,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감동의 순간을 역으로 분석해서 어떻게 감정 설계가 됐는지 알아내라. 


당신이 드라마나 시나리오 작가가 되려고 한 이상 감동의 순간을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된다.  당신이 어떤 영상물에서 감동을 느꼈을 때, 그 감동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되돌아가봐야 한다. 그래서 감동의 시작점부터 감동을 느낀 지점까지를 분석해서 왜 감동을 받았는지 반드시 알아내야 한다. 


그래서 그 시퀀스를 트리트먼트 형태 또는 극본 형태로 써봐야 한다. 영상만을 보고 역으로 극본을 만드는 일은 매우 흥미로운 작업이며, 편집에 대한 감각을 키우는데 엄청난 도움이 된다. 하지만 이 작업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감정을 설계하는 법이다. 


실력 없는 작가는 감동을 말로 때우려고 한다. 가령 시청자를 울려야겠다 생각하면, 시청자가 울 때까지 대사를 끊임없이 치는 것이다. 많이들 봤을 것이다. 극 중 인물이 구구절절 썰을 푸는 것을 말이다. 이래도 안 울어? 이래도? 하지만 이 방법은 효과적이지 않으며 시청자들에게 때때로 환멸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노련한 작가는 감동을 주기 위해 구조를 만들고, 감정을 설계한 뒤 적절한 행동과 대사로 시청자들로 하여금 감동할 수 있게 만든다.  


예를 들어보자.


며칠 전 <미션 임파서블 : 고스트 프로토콜>을 다시 보다가 거의 끝부분에서 콧날이 시큰했다. 이단 헌트(톰 크루즈)가 멀리서 그의 전 아내(미셸 모나한)를 바라보는 장면이었다. 왜 마음이 찡한 거지? 영화가 끝나고, 감정 설계의 시작점이 어디인가 찾아봤다(나는 극본 형태로 만들지 않았지만, 당신은 가급적 극본 형태로 만들어 보기 바란다).   


미국을 향한 핵공격을 막아낸 이단 헌트 일행은 그 핵으로 인해 초토화될 뻔했던 미국 어느 도시에서 후일담을 나눈다. 사람들은 그들이 미국을 구해낸 줄 모르고 평화를 누리고 있지만, 영웅인 헌트 일행은 정작 나라에서는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헌트와 그의 일행이 이런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는 것은 그들에게 감정이입을 하게 되는 중요한 요소이다. 


여기서 이단 헌트는 멤버들에게 다음 미션에도 함께 하겠냐고 묻고, 다들 하겠다고 하지만 브란트(제레미 레너)는 임무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한다. 자신이 이전에 맡았던 임무 때문이었다. 그 임무는 다름 아닌 이단 헌트의 아내를 지키는 것이었는데 실패해 죽게 만들었던 것. 즉, 이단 헌트의 아내를 지키지 못해 죽게 만든 자신이 어떻게 팀을 함께 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이단 헌트는 아내는 살아있다고 말한다. 이단 헌트는 아내가 살해당한 것으로 위장하고, 아내를 살해하려 했던 세르비아인들을 죽이고 감옥까지 갔었던 것이다.  이 <고스트 프로토콜>이 아내가 살해당한 것을 위장한 것 때문에 시작된 것이었다. 그러면서 하는 말. 내 아내를 지키는 일은 당신 일이 아니라 나의 일이다. 


그 순간, 카페 아래 부두에 배가 도착하고 누군가 내린다. 이단 헌트는 뭔가에 끌린 듯 일어나고 몇 발자국 앞으로 걸어간다. 그의 아내가 배에서 내려 어느 건물로 들어가고 있다. 아내는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 뒤돌아 보고, 둘은 서로 멀리서 바라본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행복을 누리는데, 그들이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목숨을 걸고 헌신한, 정작 행복을 누려야 할 이단 헌트는 사랑하는 사람을 멀리서 바라봐야만 한다. 아이러니! 이 아이러니가 바로 미션 임파서블이라는 시리즈를 지탱하는 힘이자, 우리가 이단 헌트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힘이다.  어쩌면 이단 헌트는 사랑하는 아내를 적들로부터 온전히 지켜내기 위해 어려운 임무를 하는 것일 지도 모른다. 그것이 결과적으로 세계 평화를 지키는 것으로 귀결되고. 


사실 평범한 작가였다면, 세상을 구하고 와서 아내를 멀리서 바라보는 장면 정도로 이 씬을 썼을 것이다. 그래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하지만 선수라 불리는 작가는 그런 장면을 좀 더 임팩트 있게 보여주려고 한다. 그래서 아내가 살해된 걸로 위장했다는 얘기가 굳이 들어간 것이다. 아내를 지키는 일은 그 누구의 일이 아닌 바로 자신의 일이라 말하면서. 


이렇게 작가가 시청자가 감동을 받을 수 있도록 감정을 설계했던 것이다. 

이런 식으로 자신이 감동을 받은 부분에서 거슬러 올라가 그 감동의 기원을 밝히는 작업은 매우 흥미로운 작업이며, 당신의 실력을 진정한 의미에서 일취월장하게 해주는 일이다. 때문에 나는 당신에게 '당신만의 감정 설계 노트'를 만들어 채워나가는 것을 추천한다. 앞으로 극본을 쓰는데 엄청난 레퍼런스가 될 것이다. 


주인공 시점으로 일기를 쓰는 것도 한 방법이다. 


내가 쓰는 방법은 아니지만, 마리사 드바리의 <시나리오 쓰기의 마법>을 보면 이런 방법이 나온다. 


한창 어느 극본을 작업 중일 때에는, 매일 자신의 일기를 극 중 주인공 시점으로 써보는 것이다. 오늘 내가 겪은 이러이러한 일들을 만약 주인공이 겪었다면 어떻게 됐을 것인가, 하고 생각한 것들을 쓰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당신의 일상이 주인공에게 투영되어 한층 디테일한 극본을 쓸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모든 작품의 주인공은 작가 자신의 페르소나이기 때문에 이 방법도 극본 작업에 있어서 매우 유용하다. 

나는 사실 이 방법을 쓰지는 않고 있는데, 내 작품은 주로 내 삶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사는 주인공이 주로 나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다 생활 밀착형의 극본을 쓰게 되면 해볼 생각이다. 

이 방법은 당신이 먼저 해보고 그 효과를 알려주면 고맙겠다. 
 


투 비 컨티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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