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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원 Aug 05. 2023

맥북에어 15 영접기

신문물이라기보단 신세계

"축하드립니다."


맥북에어 15인치를 픽업하러 간 매장에서 직원이 물건을 건네면서 말했다. 


나는 살짝 당황했다. 내 돈으로 내가 샀는데, 왜 축하를 받아야 하지? 무슨 경품 공모에서 당첨이 된 것도 아니고, 밤새도록 매장 앞에서 죽치다가 오픈 런으로 뛰어 들어가 득템을 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아, 네."


매장 정문까지 딸내미와 걸어 나오며 직원들에게 우리는 축하 인사를 세 번이나 더 받았다. 그리고 문 앞에는 한 여직원이 생글거리며 서 있었다.  


"셀레브레이션해드릴까요?"

"네? 그게 뭐죠?"

"전 직원들이 축하해 드리는 거예요. 좋은 추억이 되실 거예요."

"아, 그건 좀..."


거절하고 나가려는데, 딸내미가 내 옷을 잡았다. 


"아빠, 혹시 뭐 주는 거 아닐까?"

"앗! ...... 하겠습니다. 해주세요."


나는 케이블이라도 하나 얻을까 하는 마음에 흔쾌히 승낙을 했다. 애플은 케이블 하나도 엄청 비싸지 않은가. 



그 여직원은 우리 부녀를 매장 중앙으로 데리고 가서 세웠다. 남자 직원이 다가와 물었다. 


"네, 맥북에어 15를 무슨 용도로 사신 건가요?"

"글 쓰려고 샀어요."

 

다음 순간, 남자 직원은 양손으로 메가폰을 만들어 웅장한 목소리를 외치기 시작했다. 


"매장에 계신 여러분, 여기를 주목해 주세요! 오늘 저희 메장에서 맥북에어 15인치를 첫 픽업을 하신 분입니다! 축하해 주세요!"


직원들과 고객들 수십 명이 우리 부녀를 주목했고, 와~ 하는 함성과 함께 박수를 쳐주었다. 


..... 죽고 싶었다. 개쪽팔림. 


"맥북에어 15인치로 글을 쓰신답니다!"


윽! 더 쪽팔려. 나는 지금 만약 죽을 수 있다면, 그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생각했다. 


여직원은 나와 딸을 동영상으로 찍고 있었다. 나는 저 동영상이 온라인상으로 돌아다니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과 공포로 얼어붙었다. 


"그 동영상 어디 올라가고 그러는 거 아니죠?"

"아닙니다. 고객께만 셀레브레이션으로 드리는 겁니다."


여직원은 내게 이메일로 동영상을 보내준 뒤 미소를 짓고는 가버렸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난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그렇다. 이것이 셀레브레이션이라는 것의 실체였던 것이다. 충전 케이블이라도 하나 얻어보겠다는 나의 탐욕은 이렇게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던 것이다. 아마 삼성이었다면 이렇게 맨 입으로 나를 쪽팔리게 하지 않았을 텐데... 미국 마인드와 한국 마인드는 이토록 다른 것이다.  


"우리 딸, 어땠어?"

"재밌었어."


그래, 딸이 재밌었다니 그걸로 됐다. 아빠의 쪽팔림이 뭔 대수겠나. 나는 맥북에어 15인치 박스를 품에 앉으며 생각했다. 어쨌거나, 내가 꿈에도 그리던 장비를 손에 넣은 것이 아닌가. 


사실 나는 축하받아 마땅했다. 


나는 맥북에어가 15인치로 나온다는 루머가 돌 때부터 맥북에어 15 앓이를 했다. 나는 맥북에어 13인치 소유자인데 이게 성능도 성능이지만, 비교적 가볍고 휴대성이 좋아서 카페 등으로 일하러 갈 때 가지고 다녔다. 하지만 결정적인 문제, 화면이 작아도 너무 작았다. 


집과 작업실에서는 32인치 울트라와이드 모니터로 보다가 13인치를 보려니, 노안이 온 작가로서는 이만저만 불편한 게 아니었다. 게다가 나는 집필 프로그램으로 스크리브너로 글을 쓰는데, 스크리브너가 지원하는 세 개 화면 모드를 13인치에서 쓰기에는 그 한계가 너무 명확했던 것이다. 즉, 너무 작은 것이다. 



나는 맥북에어가 13인치라서 좋은 작품이 안 써지는 것만 같았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맥북에어 15를 소유하게 된다면 좋은 작품이 절로 써질 것만 같은 왠지 모를 기분이 들었고, 급기야 맥북에어 15인치가 있다면 걸작을 쓸 수 있다는 확신까지 하게 되었다.


그런데 막상 맥북에어 15가 출시되면 과연 내가 살 수 있을까, 하는 근본적인 질문에 봉착했다. 주력으로 쓰는 맥미니가 집과 집필실에 각 1 대씩 2대, 아이패드가 크기 별로 각 1대씩 총 3대, 그리고 맥북에어 13까지 있는 상태에서 또 하나의 맥을, 그게 아무리 맥북에어 15라 할지라도 집안에 들이는데, 아내의 허락을 받을 재간이 없었다.  


쉽지 않은 일, 아니 어쩌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유부남들은 이럴 때 이런 방법을 쓴다. 설득 대신 용서를 받는 것이다. 최대한 안 들키고 쓰다가 나중에 걸리면 그때 용서를 비는 것이다. 비굴하지만 다소 얼리어댑터 성향이 있는 이 세상의 유부남들은 내게 감정이입을 할 것이다. 


근데 회사를 잠시 그만둔 아내의 건강보험료가 세대주인 내게 청구되면서 반전이 일어났다. 평소와 다른 보험료 청구로 공단에 가서 상담을 받던 중, 지난 몇 년 동안 내게 보험료가 과다 청구 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었다. 몇 개의 서류를 떼다 주니, 공단에서는 무려 맥북에어 15를 거의 4대 살 수 있는 금액을 환급해 주는 게 아닌가. 흥분한 나는 그 즉시 후회할 만한 짓을 하고 만다. 


"여보, 맥북에어 15 사게 해 주면, 나머지는 당신 다 줄게."

"어! 당장 사, 당장!"


아내는 0.1초 안에 반응을 보였다. 


'내가 왜 그랬을까...'


나는 즉각 후회를 했다. 환급금은 슬쩍 챙기고, 나중에 용서는 용서대로 받으면 되는데. 너무 즉흥적으로 결정을 내리는 나 자신이 미웠다. 심사숙고했더라면 애플 매장에서 셀레브레이션도 안 했을 것이고, 환급금도 온전하게 챙길 수 있었을 텐데. 


"우리 마눌, 좋아?"

"어, 행복해."


그래, 와이프가 행복하다니 그걸로 됐다. 그까짓 아까움이 뭔 대수겠나. 나는 이렇게 나 스스로를 위로하며, 맥북에어 15를 당당하게 꺼내놓고 쓰는 내 모습을 상상했다. 대가를 치렀지만, 나는 떳떳함을 얻었다. 

 

맥북에어 15를 들고 집으로 돌아왔지만, 나는 포장을 뜯지 못한 채 이틀 동안 바라만 봐야 했다. 맥북에어를 주문하고 받을 때까지 2주 정도 걸렸는데, 내 평생 그렇게 긴 2주는 처음이었다. 피가 마르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런데 이제 이틀을 더 기다려야 했는데, 이번엔 남아있는 피까지 다 말라 육포가 되어가는 느낌이었다. 


맥북에어 15로 언박싱 콘텐츠로 만들어 유튜브에 올리게 해 달라는 후배의 부탁을 흔쾌하게 허락했던 나 자신을 저주했다. 그 날짜가 바로 이틀 후였던 것이다. 


이틀 후 내 맥북에어 15는 언박싱되었다. 왠지 콧날이 시큰해지는 순간이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p5C_ZdpoZUs&ab_channel=17jungle


나름 맥에 관해 도사인 그는, 이번에 M1칩에서 M2칩으로 바뀌어 성능이 향상되었고, 화면의 해상도가 얼마나 좋아졌으며, 또한 돌비 애트모스를 구현하는 6개의 스피커 등등 논했지만, 내겐 그 어느 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칩이 업그레이드되면서 처리 속도가 빨라졌다고 하지만 집필과 인터넷 서치, 그리고 동영상 감상 등을 위주로 하는 나는 전혀 체감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리뷰어들도 대개 수치로만 확인해 주는데, 그 능력 향상치를 집필, 인터넷 서치, 동영상 감상 등에서 체감할 수 있는 유저가 있다면, 나는 그 유저는 저주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예민해서 어떻게 살아. 


화면 해상도가 높아진 것도 이점이지만, 내게는 역시 관심 밖이다. 그동안 맥북에어 13으로도 영상을 보면서 전혀 불편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해상도가 좋아졌다고 해서 안 보일 게 보이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또한 우퍼를 포함한 6개의 스피커도 내겐 관심 대상이 아니었다. 왜? 맥북에어는 내가 주로 공공장소에 가지고 다니면서 쓰는 용도이기 때문이다. 즉, 헤드폰과 이어폰으로만 사운드를 감상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 관심도는 무엇?


15인치 화면이 얼마나 크게 보이는가, 무게는 얼마나 가벼운가, 그리고 배터리는 얼마나 오래가는가, 이렇게 딱 세 가지였다. 




화면 크기.


크면 클수록 좋겠지만, 이 정도면 매우 만족스러웠다. 일단 내가 세운 기준은 스크리브너를 실행했을 때 세 화면 모드가 쾌적하게 구현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야 걸작을 쓸 수 있으니까. 근데 이 정도면 대 만족.


무게.


맥은 그놈의 알루미늄 간지를 추구하는 철학 때문에 도저히 가벼울 수가 없다. 삼성이나 엘지는 1킬로도 안 되는 모델들이 수두룩한데, 맥북은 단 한 개도 없다. 가장 가볍다는 맥북에어 13인치가 1.2킬로 정도 나가고, 맥북프로 16인치는 2킬로에 육박한다. 때문에 나는 맥북에어 15인치가 1.5킬로를 넘지 않기를 바랐다. 그리고 그 바람은 정확한 1.5 킬로의 무게로 이뤄졌다. 


사실 내가 무게를 중요시하는 이유는, 단지 맥북만을 들고 다닐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자목 단계라 맥북을 세워놓고 쓰는 스탠드, 마우스, 그리고 블루투스 키보드까지 들고 다니는데, 이것들의 무게 합이 0.5킬로 정도 되기 때문에 다 합치면 맥북프로 16인치 무게가 되는 것이다. 거기에 책까지 한 두 권 넣으면, 백팩은 거의 4킬로에 육박한다. 그래서 이번 맥북에어 15인치는 내가 커버할 수 있는 무게에 간신히 도달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배터리.


맥북에어 13을 쓸 때 만족스러웠던 것 중 하나가 18시간이나 가는 배터리 성능이었다. 가끔 간단하게 맥북에어만 들고나가도 중간에 충전 없이 하고 싶은 것 다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 맥북에어 15도 맥북에어 13과 똑같이 18시간 동안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별도의 충전기를 갖고 다니지 않아도 충분히 외부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맥북에어 13을 쓰면서 충전기를 잃어버린 적이 있었다. 충전기를 가지고 다니니까 집에서 충전을 안 하게 되고, 그래서 카페에서 충전하다 어느 곳엔가 두고 나왔던 것이다(그 사실을 며칠 뒤에 알았다 ㅠㅠ). 이제 충전기는 집에 두고 다닐 생각이다. 뭐, 급하면 핸드폰 충전기로, 비록 저속이지만 충전하면서 일을 하면 된다.


이렇게 화면 크기, 무게, 배터리 면에서 내겐 모두 합격이었다.  


이제 나는 당당하게 우리 가족은 물론 누구 앞에서도 맥북에어 15를 꺼내놓고, 보무도 당당하게 걸작만 써내면 되는 상황이 되었다.  


근데 맥북에어 15로 과연 걸출한 작품이 써질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일단 쓰기는 쓴다. 


좌우명까지는 아니지만, 실력의 완성은 장비에 있다는 말을 늘 가슴에 새기며 살고 있다.  


쓰다 보면 걸작이 나올 수도 있고, 망작이 나올 수도 있지만, 아무것도 쓰지 않으면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일단 쓰기로 한다. 


맥북에어 15인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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