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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원 Aug 06. 2023

프로파일링 리뷰 : 밀수

왜 밀수는 재미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한 걸까

창작자의 입장에서 시나리오 작가에 빙의해서 왜 저렇게 썼을까 집필 과정을 따라가 봅니다.     

 

뱁새가 어찌 봉황의 뜻을 알겠습니까만은, 저의 있는 재주 없는 재주를 총동원해서 작품을 프로파일링 해 보겠습니다. 


이번 작품은 류승완 감독의 <밀수>입니다. 


*이 글은 저의 추측일 뿐, 실제 사실과는 전혀 다를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주의사항*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류승완 감독은 제가 정말 좋아하는 감독이자 시나리오 작가입니다. 때문에 밀수가 개봉하자마자 와이프 손을 잡고 득달같이 달려가 관람을 했습니다. 


두 시간여의 상영이 끝나고, 나오면서 아내와 저는 한 동안 대화가 없었습니다. 우연히 거울을 보았는데, 세상 온갖 고민을 다 끌어안고 있는 듯한 표정의 사내가 거기 서 있더군요. 


"어땠어?"


그런 나를 보고 아내가 물었습니다. 


"글쎄... 잘 모르겠어. 당신은?"


"재밌는 거 같기도 하고, 재미없는 거 같기도 하고." 


순간, 나는 아내가 천재로 보였습니다. 수많은 영화 평론가들이 밀수에 대해 한 줄 평을 썼겠지만, 내 아내처럼 정확한 아니, 적확한 한 줄 평은 할 수 없을 거 같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군가 밀수의 한 줄 평을 부탁한다면, 부부공동명의로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재미있는 것 같기도 하고, 재미없는 것 같기도 하고. 


따라서 저는 이번 <밀수>라는 영화를 통해 '재미있는 것 같기도 하고, 재미없는 것 같기도 한' 시나리오를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프로파일링을 해보려고 합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제 뇌피셜입니다. 혹시라도 제 글로 인해 불편한 감정을 가지실 분들께 미리 사죄의 말씀을 올립니다. 그냥 재미로 봐주세요^^;) 



일단, 이 영화는 류승완 감독이 쓴 오리지널 시나리오가 아니었습니다. 


인터뷰를 보면, 류감독의 회사 부대표가 해녀가 주인공인 밀수 이야기를 개발하고 있었는데, 평소 밀수라는 소재에 관심이 있던 감독이 시나리오를 보고 확 꽂혀서 연출을 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어쩐지... 류감독이 쓴 것 같지 않았었거든요. 


류감독의 이름은 시나리오 부분에 두 번째 자리하고 있더군요. 이는 감독으로서 각색에 참여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류감독이 <밀수>라는 시나리오에서 확 꽂힌 포인트는 마지막에 해녀와 양아치들이 펼치는 해중 액션 시퀀스였습니다. 오만가지 액션을 다 연출했던 그가, 이제 더 무슨 액션이 있을까 고민하던 차에 수중 액션씬이란 전인미답의 길이 보이자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뭔가에 꽂힌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작가들도 어떤 한 장면에 꽂혀서 작품을 쓰고, 배우들도 같은 이유로 출연을 결정하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무언가에 꽂힌다고 하는 것은 한편으론, 꽂힌 것 외의 다른 부분들은 놓칠 수도 있다는 위험성이 있습니다. 이번 <밀수>가 어쩌면 그런 놓침들이 재미를 반감시킨 게 아닌가 생각이 들더라구요. 


<밀수>를 류감독이 연출하기로 하자, 프로젝트는 활기를 띠었을 겁니다. 류감독급이면 투자도 잘 되고, 배우 캐스팅도 잘 될 테니까요. 알다시피 류감독은 영화를 본인 이름값으로 메이드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감독 중 하나잖습니까. 


류감독이 합류를 결정하자, 제일 먼저 시나리오가 수정되기 시작합니다.  


보통 이렇게 수정되는 것이 에프엠(FM)입니다. 


콘셉트 자체가 밀수 사건에 해녀들이 휘말리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주인공은 당연히 해녀 투톱입니다. 식모살이 등을 하며 떠돌다가 해녀가 된 조춘자와 군천 토박이 해녀 엄진숙이 주인공인 겁니다. 그리고 둘 중 누가 더 주인공 인가 하면 엄진숙입니다. 


왜냐하면, 메인 스토리를 관통하는 서사를 가지고 있고, 또한 중요한 순간에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 때문입니다. 류감독도 인터뷰에서 엄진숙이 이야기의 중심을 잡아주는 중요한 캐릭터라고 말하더군요(그게 주인공인 겁니다). 


따라서 조춘자는 해녀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물질(잠수)에서 하수이지만, 내추럴 본 해녀인 엄진숙은 군천 최고의 물질러여야 하는 겁니다. 그게 당연한 거죠. 육지에서 떠돌던 경력 3년짜리 해녀가 집안 대대로 바닷가에서 살아온 해녀와 같은 실력이면 안 되는 거지요. 해녀들 사이에는 실력에 따라 대상군, 상군, 중군, 하군 등의 계급이 있는데, 엄진숙이 대상군이어야 하고 조춘자가 하군이어야 합니다. 


오프닝 시퀀스에서 해녀들은 평범한 물질 끝에 썩은 전복들을 캐고, 그것들이 공장 폐수 때문이라 생계에 위협을 받게 되자 어쩔 수 없이 밀수에 나서게 됩니다. 


근데 환경 고발 영화도 아닌데 이런 식으로 오프닝을 낭비할 필요가 있었을까요? 설사 그렇다 해도, 그런 내용은 대사 속에서 나오면 됩니다. 우리가 왜 밀수를 하게 됐냐면 말이야. 블라블라... 그 시절에는 다들 어려웠으니까, 관객을 이해시키는 게 그리 어렵지 않았을 겁니다. 


오프닝 시퀀스는 조춘자와 엄진숙의 캐릭터와 그들의 관계, 그리고 그들의 실력 차이를 보여주는 식으로 갔어야 합니다. 그리고 밀수 영화답게 밀수에 대한 내용으로 시작하는 게 맞겠죠. 


가령, 이렇게 말입니다. 


해녀 중 리더인 대상군 엄진숙이 조춘자를 비롯한 다른 해녀들과 물질을 하러 배를 타고 갑니다. 해녀들은 조춘자에게 텃세를 부리지만 엄진숙이 엄호해 주는 관계입니다. 


그들은 해산물을 캐는 것처럼 바닷속으로 들어갑니다. 하지만 그들은 해산물이 아니라 밀수품을 건집니다. 이런 도입부는 해산물을 캐는 것보다 훨씬 호기심을 이끌어내는데 유리합니다. 


여기서가 중요합니다. 해산물을 캐려면 밑바닥을 헤집고 다녀야 하지만, 밀수품은 표시가 잘 돼 있어 쉽게 건질 수 있거든요. 그래서 그들은 그 밀수품을 건져내면서 그들만의 놀이를 합니다. 육지에서 공 뺏기 놀이를 하듯이 수중에서 밀수품을 뺏기 놀이 같은 걸 하는 거죠. 조춘자 눈에는 그들이 정말 대단해 보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중에서 엄진숙은 해녀 탑티어 답게 정말 경이로운 실력을 보여야 합니다. 마치 수중 발레리나처럼요.  


왜 이런 장면이 필요하냐 하면, 라스트 해중 액션 시퀀스 때문입니다. 


일단 류감독이 꽂혔던 라스트 해중 액션 시퀀스만을 볼 때 끝내준다는 것에는 대체로 이의가 없을 겁니다. 저는 류감독의 액션 연출의 역사에 있어서 기념비적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장비의 해녀들이 산소통을 메고 들어온 악당들을 해치우는 장면은 정말 손에 땀을 쥐지 않고서는 볼 수 없었습니다. 


근데 이 라스트 시퀀스는 연출도 좋고 찍기도 잘 찍었다는 것에는 대부분 동의하지만, 개연성적인 면에서 동의하기는 어렵습니다. 해녀들이 물속에서 저렇게 악당들과 잘 싸워? 물론 잘 싸울 수도 있겠지만, 관객들은 그녀들이 잘 싸울 수 있는 단서를 영화 전체를 통해서 발견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라스트 시퀀스에서는 해녀들은 특수 수중 전투 훈련을 받은 여전사처럼 싸웁니다. 놀랠 노자라는 표현을 이런 때 써야 하는 것 같습니다. 이 수중 액션 시퀀스에 꽂힌 나머지 다른 기본적인 것을 놓친 것은 아닌지 생각되더라고요. 


그런데 오프닝 시퀀스에서 해녀들의 물질 실력을 니주(복선)로 깔았으면 어땠을까요? 라스트 시퀀스가 훨씬 쫀쫀했지 않았을까요?


나중에 조춘자가 엄진숙을 찾아와 도와 달라고 할 때 더 설득력도 있어지고 말입니다. 이번 물질은 너 아니면 안 돼. 


하지만 그런 실력 차이를 보여주지 않으니까, 조춘자가 왜 굳이 엄진숙에게 부탁을 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다른 데서 해녀들을 데리고 와서 조춘자가 함께 잠수하면 되잖아요.    


한 술 더 떠서 조춘자가 물속에서 실수로 어딘가 발이 끼인다든가 하는 설정으로 위기에 처했으면 어땠을까요? 엄진숙이 그런 조춘자를 구할 수 있게요. 그렇게 관계를 설정해 주면, 조춘자가 배신을 때리고 도망갔다고 생각했을 때 엄진숙의 입장에서 배신감은 극에 달할 수 있지 않을까요? 


떠돌이한테 물질도 가르치고 목숨도 구해줬는데, 밀고해서 아버지와 동생을 죽게 만들고, 엄진숙 자신을 감옥에도 가게 만든 조춘자... 얼마나 갈등이 쎕니까?  


 여기에 한 가지 더 상상력의 나래를 펴면... 


조춘자가 오프닝에서 죽을 뻔했던 수중 장소는 바위들과 수초로 인해 미로와 같은 곳이고, 해녀들은 그곳에 잘 가지 않는 곳이면 어땠을까요? 엄진숙도 자주 가지 않은 곳으로, 하지만 굳이 누군가 한 명이 간다면 엄진숙만이 갈 수 있는 곳이라는 설정 말입니다.  


어쨌든 조춘자와 엄진숙 사이의 갈등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라스트 시퀀스가 시작되고... 둘이 물속에서 서로를 올려주고 내려주는 장면에서 화해가 이루어진다면... 눈물이 핑...


이렇게 세팅을 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밀수>는 두 가지 난관에 봉착하게 됩니다. 

 

우선 기획회의에서 이런 의견이 나오는 겁니다. 


"이거 완전 여성 서사 아냐? 주제도 여성의 연대인 거고... 여자 투톱으로 가서 천만 가겠어?"


"맞아요. 괜히 페미 논쟁에 휘말리면 될 것도 안 될 수 있어요."


시나리오에서 여성 연대로 보일 수 있는 것이 수정되기 시작합니다. 때문에 여러 여성들이 등장하지만, 역할이 가진 함의 대신 기능만이 부각됩니다. 


여기에 멋진 남자 두 명이 추가됩니다. 권상사(조인성)와 장도리(박정민). 이들이 극에서 그렇게 비중이 큰 인물은 아니지만 이름값에 걸맞은 분량이 제공됩니다. 4인 4색 영화가 된 것이지요. 


급하게 추가된 인물이라서 그런 걸까요? 둘 다 캐릭터의 일관성이 없더라구요. 권상사는 아주 잔혹한 인물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 로맨티스트였고, 장도리는 바보 설정에서 교활한 놈이 되었더라구요. 


어쨌든 이렇게 여성 서사는 물 건너가고...   

 

또 하나의 난관. 

  

류감독이 조춘자에 김혜수를, 엄진숙에 염정아를 캐스팅을 합니다. 그러자 무게 중심이 김혜수에게 쏠립니다. 김혜수에게 뭔가 몰아줘야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됩니다. 


엄진숙(염정아)에게 몰아줬던 여러 좋은 설정들이 사라집니다. 잠수 실력도 엇비슷해지고, 복수심에 불타던 엄진숙은 순진하기까지 해서 김혜수가 긴 고백에 오해를 쉽게 풀어버리기도 합니다. 반면, 김혜수는 김혜수하고 말이죠. 


시나리오가 이렇게 되면, 전체적인 조화로 어떤 힘 있는 서사가 나오기보단 배우면 배우, 감독이면 감독의 각자도생이 이뤄집니다. 


블록버스터에 여러 스타들이 등장하는 이유는 투자에 유리한 지점도 있지만, 각자 보유하고 있는 팬덤의 총합으로 천만을 넘기려는 의도도 있습니다. 여기에 감독의 팬덤까지 합쳐지면 더욱 시너지가 있는 거구요. 


그런데 그러려면 그들 모두가 하나의 작품으로 조화를 이뤄야 하는데, 다들 자신의 팬덤만을 위해 연기하고 연출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결과, 재미있는 것 같기도 하고, 재미없는 것 같기도 한 결과물이 나온 게 아닌가 싶네요. 


그저 제 생각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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