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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원 Aug 10. 2023

공모에 당선되는 극본쓰기 09

오프닝에 대해 좀더 공부해 본다. 


작법에도 리버스 엔지니어링이 필요하다. 


지난 회차 강의의 호응에 힘입어 이번 회차에도 오프닝 시퀀스 분석을 더 해보겠다. 


공학적인 개념으로 리버스 엔지니어링(reverse engineering)이라는 것이 있다. 쉽게 말해 완성된 제품을 뜯어서 어떻게 만들었는지 알아내는 것이다. 


지금 내가 다양한 오프닝 시퀀스를 분석하는 것은 바로 영상물을 리버스 엔지니어링을 하는 것이다. 당신도 내가 하는 방식으로 오프닝 시퀀스를 뜯어서 보고, 정리해 보도록 해라. 당신이 진행 중인 스터디 멤버들과 오프닝 시퀀스 스터디를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일단은 내가 한 분석들을 읽고 영상을 찾아보는 것을 추천한다. 나는 내 분석들을 읽다보면 무엇을 중점적으로 봐야 하는지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작가의 눈으로 보게 되면 아마 예전에 영상을 봤을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 들 것이다. 

당신이 정말 좋은 작가가 되려면 도 닦듯 글을 쓰면 안 된다. 남의 작품을 보고 분석하고 전략을 읽어낼 줄 알아야 한다. 


내가 분석한 것이 정답은 아니다. 하지만 모범 답안에 가깝다는 것은 자신할 수 있다. 때문에 내가 분석하는 방식을 따라 다른 작품들을 분석하다 보면 자신만의 방식이 나올 것이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다가 좋다, 끝내준다, 재미있다... 이런 생각이 들면 바로 뜯어보기 바란다.  

이번에도 몇 편의 오프닝 시퀀스를 분석해 보겠다. 


포스터


<끝까지 간다>


이 영화는 주인공이 어떤 상황에 빠져있는가에 대한 오프닝으로 관객의 초반 호기심을 확실하게 사로잡는 작품이다. 


화면이 열리면 고광수(이선균)가 운전 중이다. 그는 형사인데 모친상을 치르던 중에 경찰서로 가고 있다. 장례식장에서 상주가 자리를 비운다는 것은 뭔가 큰 일이 있다는 뜻이다. 후배 형사와 통화로 그가 지니고 있는 열쇠로 경찰서에 있는 책상 서랍을 열어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대체 그 서랍 안에 무엇이 들어 있길래! 


고광수는 비리형사로 추정된다. 이어 장례식장에 있는 여동생이 전화를 해온다. 대화 중에 고광수에게는 딸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딸의 사진이 차에 있기도 하다. 괜찮은 아빠처럼 보인다. 장례식장에서 아내가 아니라 여동생이 전화한 것을 보면 아내와는 이혼한듯.   


여기서 딸바보라는 설정은 매우 중요하다. 주인공이 비리 형사이기 때문이다. 악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울 때는 인간적인 면을 부각시키는 것이 극에 유리하다. 나쁜 짓을 했어도, 그게 왠지 가족들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한 것처럼 보이지 않는가.   


고광수는 도로 위로 나온 개를 로드킬할 뻔한 상황에 처하지만 재빨리 핸들을 꺽어 그 상황을 모면한다. 하지만 다음 순간 차로 달려든 듯한 사람을 피하지 못해 교통사고를 내고 그 사람은 현장에서 즉사한다. 정말 큰일 났다. 여기서부터 관객들은 고광수에게 빠져든다. 과연 어떻게 할 것인가?


그때 딸이 전화해서 케익을 사오라고 하고, 고광수는 어찌할 바를 모르는 상황에서도 통화를 이어나간다. 아마 딸한테 잘하는 아빠인 듯하다. 나 같았으면 '아빠 바빠'하고 끊었을 텐데... 그때 경찰차가 나타나자, 기겁한 그는 비로소 시체를 도로가로 치운다. 


급히 경찰서로 가야하는 그는 어쩔 수 없이 시체를 트렁크에 싣는다. 하지만 이번엔 음주단속에 걸린다. 장례식장에서 한 잔 받아 마신 게 문제가 된 것이다. 그는 단속 경찰들과 실랑이를 하다가 트렁크의 시체가 들킬 뻔하자 몸싸움을 하다가 가스총에 전기 충격기까지 시전을 당하고 실신하고 만다. 


다음 상황이 궁금한데, 감독은 냉정하게 카메라를 경찰서로 옮긴다. 소소한 전략이다. 


감찰반에 의해 고광수의 잠긴 책상서랍이 열리고... 그 안에서 뇌물로 받은 돈다발과 뇌물장부까지 나온다. 엎친데 덮친 격이다. 고광수 정말 큰 일 났다. 


고광수는 어떻게 됐을까?


다행스럽게도 그는 형사라는 사실이 드러나 그 자리를 벗어날 수 있었다. 주인공을 무조건 몰아부치면, 관객이 부담스러워한다. 때문에 틈틈이 긴장을 풀어줘야 한다. 고광수는 아까 자신을 괴롭혔던 순경들의 군기를 잡아주고는 다시 경찰서로 향한다. 


하지만 중간에 서랍이 열렸다는 문자를 받고, 장례식장으로 돌아오게 된다. 차에 시체를 싣고 말이다. 그곳으로 동료 형사들이 찾아오는데, 문상을 왔다기 보단 뇌물 사건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서이다. 주인공에게 가혹한 상황이다. 


그런데 그 중 한 명이 고광수에게 독박을 쓰라고 한다. 뇌물은 다 같이 받아놓고, 혼자 독박을 쓰라고 하다니. 게다가 지금 고광수는 상중이고... 좀 전에 경찰서로 가다 교통사고로 사람까지 치어 죽게 만들었는데... 이젠 독박까지... 


부당하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다. 관객은 부당한 대우를 받는 사람에게 감정이입을 한다. 작가(감독)가 세팅을 매우 잘 해놓았다. 이미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을 했지만, 여기서 더 빠져든다. 


하지만 여기까지 고광수의 캐릭터는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저 평범한 수준의 형사 캐릭터이다. 어떤 형사든지 고광수와 같은 상황에 처하면 능히 그렇게 할 것 같기 때문이다. 


이어 고광수는 입관식에 참여한다. 엄마의 시신을 관에 넣고, 관에 나무 못질을 한다. 그런데 그때 동료 형사로부터 문자가 온다. 감찰반에서 차량을 조사하러 나올 지도 모른다고. 이제 정말 큰 일 났다. 과연 고광수는 어떻게 차 안에 있는 시체를 해결할 것인가. 


여기서 고광수가 다른 형사와는 다른 능력이 나온다. 


고광수는 입관실로 교통사고 시체를 옮긴다. 이 과정에서 풍선으로 CCTV를 가리고, 시체에 연결된 끈을 딸의 장난감을 이용해서 옮기다든지 하는 등 남다른 기지가 발휘된다. 다른 형사와는 차별되는 능력이 나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캐릭터가 재밌어진다. 


이 시퀀스의 압권은 고광수가 '엄마, 미안해'하며 관뚜껑을 열고, 엄마 시체 위에 교통사고 시체를 숨기는 것이다. 죽었지만 엄마가 불쌍하다. 이 어처구니 없는 장면에서 관객들은 고광수가 앞으로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잘 해결해 나갈 수 있을 거라 믿게 된다. 


여기서 그의 목표는 자신에게 닥친 모든 상황을 원래대로 돌려놓는 것이리라.  

 

이 다음 부분은 얼룩소에서 봐주시기 바랍니다. 꾸벅.


https://alook.so/posts/rDtwDx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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