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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에 당선되는 극본쓰기 14

감정이입에 대한 다양한 레퍼런스

by 이기원

감정이입에 관한 다양한 레퍼런스


내가 '감정이입'에 관해 지난 시간에 설명하면서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당신이 가진 작법책 중에서 '감정이입'을 설명한 챕터가 있으면 내놔 봐."


나는 지금 그 말을 한 걸 후회하고 있다. 내기라도 했으면 어쩔 뻔했나.


그 글을 내보내고 불과 3일도 지나지 않은 상태에서 작법책을 한 권 샀는데, 거기 챕터 20의 타이틀이 바로 '감정이입'이었던 것이다. 책의 제목은 <생생하게 살아있는 캐릭터 만드는 법(The Science of Writing Characters)>.


약간은 스스로에게 쪽팔려하면서, 얼른 '제20장 감정이입'을 펼쳐서 읽었다.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네 번을 읽으니까 그제야 무슨 얘기인지 알아먹겠더라. 많이 위안이 됐다. 내가 쓴 감정이입에 대한 글이 훨씬 뛰어났기 때문이었다(그 책은 내가 다 읽어보고 리뷰하는 시간을 갖겠다).


그 책에서 말하는 것은 간단하다.


시청자는 착한 인물에게 더 감정이입을 잘하고, 인물에게 공감을 해야 감정이입이 된다는 것이다.


내가 얘기해 줘서 당신은 이미 다 아는 내용이다.


뿐만 아니라, 당신은 한 술 더 떠서, 이렇게까지 알고 있을 것이다.


감정이입은 인물에게 동질감(공감)으로 호감을 갖는 것으로 시작하고, 그 인물에게 동경심이나 동정심으로 매력을 발견하는 것으로 깊게 하게 되며, 그 인물이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자신이 한 선택에 대해 스스로 대가를 치를 때 응원을 하게 되면서 완성된다.


당신이 내게 무한한 존경심을 갖는다 하더라도 나는 당신에게 아무런 제재를 가하지 않을 작정이다.


고백하지만, 이미 고백했는지 모르지만, 나는 이과 계열로 공대를 '간신히' 나왔다. 공대를 나온 사람들의 특징 중 하는 공식이나 매뉴얼을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아하! 어쩐지...


고개를 끄덕이는 당신의 모습이 그려진다.


나는 우리나라 드라마 작법 교육이 너무 문학적 방법론에 치우쳐져 있다는 것이 늘 불만이었다. 문학적 방법론이란 좀 심하게 얘기해서 안 가르쳐 주고 스스로 깨우치게 하는 것을 말한다(내 편협하고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다). 때문에 이런 방법론에 의한 수업은 대부분의 시간이 정신 교육이다. 작가란 무엇인가? 우리는 왜 작품을 쓰는가? 예술이란 무엇인가? 등등.


나는 이런 문학적 방법론에 함몰되면 될수록 작가의 길에서 멀어진다고 생각한다.


다른 건 몰라도, 적어도 드라마나 시나리오에서는 문학적 방법론보다 더 논리학과 심리학, 그리고 공학(주로 수학과 산수의 영역이긴 하지만)적인 방법론이 더 중요하다.

그래서 나는 작법을 '감성 공학'이라 부르는 걸 주저하지 않는다.


감성공학을 잘 구현하려면 기술(테크닉)이 중요하다. 기술은 이야기의 본질을 잘 이해할 때 발휘된다. 이야기의 본질을 잘 이해하려면 논리학과 심리학, 그리고 수학도 잘해야 한다. 즉, 인문학의 기본이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작법에서 공식이라고 하는 것은 인문학적인 토대에서 나온다.


비록 과학 공식은 아니지만, 작법에서 공식이라고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것들은 모든 작품에 예외 없이 통용되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가 영문법을 배워서 알듯이 모든 문법이 모든 문장을 백 프로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때문에 우리는 다양한 문장을 접하고 예외적인 것을 자기 나름대로 소화해 내는 운용의 묘가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한 언어의 문법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것이 그 언어의 마스터하는데 지름길이 되어 주기 때문이다. 단, 문법을 달달 외운다고 언어를 네이티브처럼 잘할 수 있을까? 아니다. 수많은 예문을 접하고 읽혀야 하는 것이다. 예문을 문법으로 분석하고, 거꾸로 문법을 통해 예문을 만들고 말이다.


작법을 공부하는 것은 드라마(시나리오)의 문법을 공부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때문에 작법을 단지 아, 이렇구나 수준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기존에 나와 있는 수많은 레퍼런스에서 공식을 찾아내야 하고, 내가 그 공식을 통해 적절한 상황이나 에피소드를 만들어 내야 하는 것이다.


자, 그럼, 오늘은 지난 시간 당신의 마음을 뜨겁게 불태웠던 '감정이입'의 예를 내가 기존에 설명했던 작품을 가지고 찾아보겠다.


이번 강의를 마스터하고 나면, 당신이 좋아했던 작품에서 '감정이입'을 시키는 부분을 찾아보도록 하기 바란다.


만약 당신이 분석하는 작품이 초반부에 감정이입을 시키는 부분에 소홀했다면, 그것이 그 작품의 망한 이유가 될 것이다. 아니, 그럼에도 성공했다면, 거기에 감정이입까지 확실하게 시켜줬다면 더욱 성공했을 것이라 믿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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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큰 포스터



<테이큰>을 보자.


브라이언 밀스(리암 니슨)는 시작부터 딸바보라는 보통의 아빠 콘셉트로 시작한다. 딸의 생일을 위해 선물을 고심해서 고르고 직접 포장하는 장면 등에스 우리는 브라이언 밀스라는 캐릭터에 호감을 느낀다. 혹자는 매력까지 느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의 딸 사랑은 보통의 딸바보인 우리보다 좀 더 앞서 있으니까. 따라서 존경심(동경심)이 들 수도 있다. 아니면, 그가 이혼남임에도 불구하고, 딸의 생일을 지극정성으로 챙기는 것을 보고 연민을 느껴서 캐릭터를 매력적으로 보았을 수도 있고.


사실 그의 진정한 매력은 팝스타를 경호하는 과정에서 흉악범을 퇴치할 때 녹슬지 않은 기량을 선보이며 드러난다.


만약,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 내가 올린 테이큰의 오프닝 시퀀스 분석을 다시 읽고 오기 바란다.


이제 호감도 느꼈고, 매력도 느꼈다. 그러니 이제는 캐릭터를 응원하게 만드는 '부당한 대우'를 받는 부분과 '자신이 한 일로 대가를 치르는' 부분을 체크해 보자.


브라이언 밀스는 딸에게 선물을 전달하기 위해 전부인의 대저택에 간다. 그러나 문 앞에서 경비원이 제지를 한다.


"나 오늘 생일인 아이의 아빠야."

"아빠는 이 집주인님이신데..."

"그 사람은 계부고, 나는 친부야."

"됐고, 못 들어가니까 저기 선물을 두고 가쇼."


대충 이런 대사를 나눈다.


작가인 뤽 베송 감독은 왜 이런 씬을 넣었을까?


그렇다. 주인공 브라이언 밀스가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으로 당신의 감정이입을 유도해서는, 당신으로 하여금 딸바보 아빠를 응원을 하게 만들기 위해 그런 것이다.


당신의 마음속에서는 이런 감정들이 마구 생겨난다. 아무리 계부의 녹을 먹고사는 경비원이라 해도 친부를 이렇게 대해도 되는 거야? 뭐? 선물을 두고 가라고? 딸 얼굴을 보지도 못하고? 존나 부당해!


그러면서 당신은 브라이언 밀스는 좀 더 나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 생각하곤, 그가 뭘 하든 잘 됐으면 하고 응원을 하게 되는 것이다.


왜? 당신은 좋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세상이 불이익을 받는 사람 없이 공평해야 하고, 선이 악을 반드시 이겨야 하며, 좌절한 사람이 다시 일어나 성공하길 바라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테이큰>에서 내가 저지른 일로 내가 대가를 치르는 부분은 어디에 있을까?


브라이언 밀즈는 처음에는 반대했지만 결국, 딸의 파리 여행을 허락하고 만다. 신나서 여행을 간 딸은 국제 인심매매범에게 납치당한다. 그의 책임은 아니지만, 아빠라면 다르다. 브라이엄 밀스는 딸을 구하기 위해 파리로 날아가 딸을 구하려 죽을 둥 살 둥 자신이 저지른 일(허락)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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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간다 포스터


<끝까지 간다>를 보자.


영화가 시작하면 형사 고건수(이선균)는 어머니의 장례식장을 지키다가 말고 경찰서로 운전해 가고 있다. 어머니의 장례보다 중요한 일이 무엇이 있을까? 있다. 그가 근무하는 경찰서에 내사팀이 들이닥칠 예정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사무실의 자기 책상 서랍을 열어 뇌물로 받은 돈을 찾아낸다면 고건수의 인생 경력은 그것으로 끝이 날 것이다. 그는 내사팀이 도착하기 전에 경찰서에 도착해서 자신만이 갖고 있는 열쇠로 잠긴 서랍을 열어 돈을 치워야 한다.


<생생하게 살아있는 캐릭터 만드는 법>을 보면 착한 사람에게 감정이입을 한다고 했는데, 이 영화를 보면 고건수는 착한 사람이 아니다. 비리 형사일 뿐이다. 그런데도 당신은 고건수를 응원한다.


따라서 당신은 나쁜 놈한테도 감정이입을 시키는 방법도 알아야 한다.


옛날에는 주인공이 무조건 착해야만 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선과 악을 모두 가진 주인공들이 매력적인 시대가 되었고, 그런 현실을 반영하는 캐릭터가 선호되고 있다.


그렇다면, 악인을 어떻게 시청자로 하여금 감정이입을 하도록 하는가.


똑같다. 감정이입 공식을 쓰면 된다.


일단, 호감을 찾아보면, 운전 중에 고건수는 장례식장에 있는 동생의 전화를 받는다. 동생은 통화 중에 고건수의 딸이 찾는다며 딸에 대한 얘기를 하는, 운전석 옆 작은 액자에 딸의 독사진이 보인다. 그것으로 시청자는 비록 비리 형사지만 딸에게는 애틋한 아빠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또한 딸 사진만 있는 것을 보고, 아내와는 이혼했구나 하는 것까지 파악하는 사람도 있다.


그의 매력은 이미 설명한 바 있지만, 그가 교통사고로 죽은 시신을 어머니의 관에 합장(?)하는 데에서 나온다. 그의 이 황당한 행동은 향후 그가 어떤 상황이라도 헤쳐나갈 수 있는 능력의 맛보기이다. 즉, 매력의 핵심 요소인 동경할 요소인 것이다. 그 장면은 또 다른 핵심 요소인 연민도 함께 준다. 오죽했으면, 엄마의 시신 속에 외갓 남자의 시신을 넣는단 말인가(우리 엄마가 이 영화를 보셨다면, 이런 쳐 죽일 놈! 하셨을 것 같다).


그렇다면, 감정이입의 끝인 응원하는 마음은 언제 어느 장면에서 이뤄지는가?


시작부터 감정이입이 이뤄지고 있다. 고건수는 자신이 저지른 짓(뇌물을 받아 숨겨놓은 것) 때문에 대가(장례식장에서 뛰쳐나와 경찰서로 가는 것)를 치르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인가? 교통사고를 낸 뒤 신고를 하지 않고 차에 숨김(저지른 일)으로 인해 어머니 관에 시체를 숨기는 대가를 치르게 되고, 영화 내내 그로 인해 연쇄적으로 발생하는 대가를 치르게 된다. 즉, 자신의 저지른 일로 인한 대가를 치르는 내용이 줄거리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부당한 대우는?


비리 형사에게 무슨 부당한 대우가 있겠냐고 반문할지도 모르지만, 그게 그렇지가 않다.


고건수는 불의의 교통사고 때문에 제시간에 경찰서에 도착하지 못하고, 내사팀이 그의 서랍을 강제 개방해서 다량의 현금 다발과 비리 장부를 찾아낸다. 비리 장부는 고건수뿐만 아니라, 그가 속한 팀 전체의 비리가 담겨 있었다. 이제 고건수뿐만 아니라, 그의 팀 전체가 비리 장부로 아작 나기 일보 직전이 된 것이다


고건수는 장례식장으로 돌아오고, 경찰 동료들이 단체로 조문을 온다. 하지만 그들의 목적은 조문이 아니다. 고건수에게 이번 사건을 모두 뒤집어쓰라는 말을 하러 온 것이었다. 이러다간 우리 다 죽는다, 근데 너 혼자 뒤집어쓰고 죽어주면 우리는 살 수 있다.


고건수 입장에서 이 얼마나 부당한 일인가!


비리의 과실은 다 같이 나눠 먹고, 그것을 고건수 혼자 다 뒤집어쓰라니. 자신은 비리 사실을 들키지 않으려고, 모친상 중에 경찰서로 가다가 교통사고를 내서 사람까지 죽였고, 그 시체가 지금 차 트렁크 안에 있는 상황인데... 부당하다... 부당하다...


악인을 주인공을 내세울 때에도, 호감, 매력, 응원으로 이어지는 감정이입의 법칙이 그대로 적용됨을 확실하게 인지하기 바란다.


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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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킹 배드 포스터


<브레이킹 배드>의 파일럿 역시 감정이입 설계가 아주 잘 되어 있다.


프롤로그의 '빤스런' 시퀀스는 이제 당신도 분석이 가능할 것이다.


입 밖으로 말해 보라. 내 다음 글을 읽기 전에.


그렇다, 정답이다(나는 당신이 옳은 대답을 했으리라 믿는다).


프롤로그 시퀀스는 주인공 월터가 자기가 저지른 일로 그 대가를 치르는 장면인 것이다.


시청자들은 그 시퀀스를 보고,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대체 무슨 짓을 저질렀기에 저 지경이 된 거지? 대체 저 인간은 뭐 하는 인간인 거야?


근데 월터가 비디오카메라에 대고 유언 같은 것을 말한다. 뭔가 일이 꼬인 것이고, 저 상황이 가족 때문인 것 같은데... 대체 뭐지? 궁금하다...


그런데, 프롤로그가 끝나고, 월터의 실체가 나오면 시청자들은 다시 한번 깜짝 놀란다.


그는 비록 노벨상을 직접 받지는 못했지만, 동료가 받는데 기여한 공로로 상까지 받은 화학 분야의 스페셜리스트였다! 그런데 그의 현실은 평범한 교사... 뭔가 부당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크리에이터 빈스 길리건은 그 정도 응원으론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박봉으로 생활비가 부족한 그는, 방과 후 세차장 카운터 알바를 한다. 근데 세차장 주인이 세차 직원이 그만뒀다며 월터에게 세차를 하라고 시킨다. 이는 명백한 부당한 대우가 아닌가. 시청자는 여기서 응원을 한 번 더 보탠다.


돈이 아쉬운 그는 이렇다 할 반항도 못하고, 물이 흥건한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스포츠카의 바퀴를 비눗물로 닦는다. 그때 그 차 주인이 나타나는데, 바로 그의 재수 없는 제자가 아닌가. 게다가 애인까지 대동하고. 그 제자와 애인은 세차를 하고 있는 월터를 내려다보며 한심해하며 비아냥거린다. 천부당만부당, 부당하다!


시청자는 여기서 월터에게 강력하게 감정이입을 한 뒤 응원을 하게 된다.


그런데 그가 폐암(하늘도 무심하시지, 이것조차 그에게 너무 부당하다)에 걸리자, 생활비를 위해 마약을 제조하기 시작한다.


아, 이것이 바로 그가 저지른 일(마약 제조)이 되는구나! 그래서 사막에서 빤스런을 하는 처절한 대가를 치르는구나!


이런 상황에서 당신에게 이제 남은 것이라곤, 그를 응원하기 위해 본방사수 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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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왕국 포스터



<겨울 왕국>에서는 아렌델 왕국의 엘사와 안나 공주 자매에게 확실하게 감정이입을 시켜 버림으로써 대박 흥행에 초석을 다져 놓는다.


성인 주인공에게 어떤 불행으로 감정이입을 시켜놓는 것보다 그 주인공의 어린 시절에 감정이입을 시켜놓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성인이 될 때까지 그 불행으로 인해 고통을 받아왔을 거라 여겨지기 때문이다. 즉, 감정이입의 깊이가 달라지는 것이다.


실제로는 안나가 주인공이지만 엘사가 주인공처럼 보이는 이유는, 비극의 주인공으로서 시청자들이 엘사에게 심하게 감정을 이입하기 때문이다.


선천적으로 스노우를 만드는 능력을 가진 엘사, 이것은 기프트일 수도 있지만 저주일 수도 있다. 그래서 숲 속의 요정 트롤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마법은 타고 난 건가요, 저주받은 건가요?"


엘사가 가진 마법은 안 나와 재밌게 놀 때는 신의 선물이지만, 그것으로 인해 안나가 피해를 입었을 때부터 저주로 변한다.


엘사는 안나에게 피해를 주려는 의도가 결코 없었다. 오히려 안나가 위험한 순간에 처했을 때 구하려다 그렇게 된 것이다.


안나는 또 어떤가? 그는 철없는 아이이고, 언니와 하는 놀이가 위험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우리는 안나에게도 죄를 물을 수 없다.


그들은 신의 저주로 인한 피해자일 뿐이다.


그런 공주 자매들에게 '부당하기 이를 데 없는' 진짜 저주가 내려진다.

"안나는 쉽게 고칠 수 있다. 하지만 안나가 알고 있는 엘사의 마법의 기억을 잃어버린다. 다만 언니에 대한 즐거운 기억은 살아있다. 엘사의 능력은 점점 강해질 것이고, 그것은 위험 요소가 될 것이다."


엘사는 안나를 위해 커다란 강당 안에 스스로 고립되는 길을 택한다. 왕실의 공주로 한창 즐겨야 할 나이에 말이다. 너무 부당하지 않는가? 동생과 놀아주다가 조그만 실수를 한 번 한 것 가지고? 독방에 갇히다니!


신의 저주를 받는 것은 그 자체로 엄청나게 부당한 요소이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와 <굿 닥터>의 자폐증도 이 경우에 속한다. <비밀의 숲> 주인공의 선천적 뇌질환도 그렇다.


엘사의 저주받은 능력은 점점 강해지고, 결국 왕국 전체를 얼려버릴 정도가 된다.


안나 역시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 언니에게 좋은 기억만 갖고 있는 그녀는 강당 밖에서 대답 없는 언니를 그리워한다. 그러면서 때론 서운해하고, 때론 원망하기도 한다. 그날의 사건에 대한 기억이 사라진 것은 그녀에게 부당하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그들 자매에게 또 다른 불행(신에게 당하는 부당한 대우)이 찾아온다. 왕과 왕비가 해외 순방을 갔다가 죽고 만 것.


이때 장례식에도 참석 못한 엘사는 또 한 번 부당함을 당한다.


엘사가 성인이 되어 왕위를 물려받게 되어서야 자매는 드디어 상봉을 한다. 즉위식에서 왈가닥으로 성장한 안나는 처음 본 남자와 결혼하겠다고 고집을 부린다. 부모가 살아계서서 제대로 가정교육을 받았다면, 과연 저럴 수 있을까? 게다가 언니랑 지금껏 함께 커 왔다면, 그러지 못했을 텐데... 황당함과 동시에 연민을 주는 씬이다.


그런데, 결혼을 반대하는 엘사와 결혼을 고집하는 안나와 다투는 과정에서 안나로 인해 엘사의 마법의 봉인이 풀려 버린다.


이 일로 자매는 다시 한번 대가를 치르게 된다. 동생은 언니를 강당이 아닌 얼음 성에 갇히게 만든다. 언니는 언니대로 감정을 통제하지 못해 왕국 전체를 얼려버린다.


감정이입의 끝판 작품이라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겨울 왕국>이 흥행에 대박을 터트린 이유는, 신의 저주로 부당한 대우를 받고 태어난 엘사와 그로 인해 공교롭게도 피해자이자 가해자가 된 안나, 그리고 그들이 부모에게 사랑받고, 백성들에게 추앙을 받아야 하는 한 나라의 공주들임에도, 운명의 장난으로 지속적으로 부당한 대우를 받았기 때문이다.


운명의 장난의 피해자도 감정이입의 중요한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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