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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원 Oct 16. 2023

이작가가 읽어주는 작법책 01<퇴고의 힘>

 사실 얼룩소에 작법을 올리면서 이렇게 호응이 있을 줄 몰랐습니다.

왜 이렇게 반응이 좋은 거지 생각하다가, 제가 작법에 관한 글을 쉽고 재밌게 쓴다는 사실(^^;) 외에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 작가와 작가 지망생이들이 작법책을 사놓고 안 읽는구나.

저처럼 말입니다. ㅠㅠ



그래서 이번 기회에 제가 대신 읽어 드리는 기획을 마련했습니다.



이렇게 연재물을 기획해 버리면, 일단 저부터 저 사진 속의 책들을 다 읽을 수 있을 것 같단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사실 작법책이 재밌기가 참 힘듭니다.


게다가 어렵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제가 읽고...


작가님들에게 필요한 부분만 설명해 드리고,


중요한 부분은 제가 집중 탐구해 드리려고 합니다.



많은 성원 부탁 드립니다.




<이작가가 읽어주는 작법책> 그 첫 선택은 멧 벨의 <퇴고의 힘>입니다.



200페이지도 안 되는 얇은 책인데 엑기스가 제법 있었습니다.



책 표지 사진


<

퇴고의 힘>




"

내 작업의 거의 90퍼센트는 퇴고이다"
                                                                       
- SF의 거장 새뮤엘 딜레이니




초고를 얘기할 때 가장 많이 인용되는 말은 헤밍웨이가 했다고 알려진 '모든 초고는 쓰레기다(The first draft of anything is shit)'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세상에 나오는 거의 모든 작법책들은 초고(쓰레기)를 만드는 법을 다루고 있습니다. 근데 문제는 어디 당선되고 어디 출판되고, 또 어느 방송국에 편성이 되는 작품 중에 초고가 픽업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출판이 되거나 방송이 되려면, 어떻게든 쓰레기를 리사클링해서 멋진 수정고와 최종고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방법을 알려주는 책은 잘 쓰여지지도 않고, 출판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작가들은 쓰레기를 부여잡고 맨땅에 헤딩을 하염없이 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런 이유 때문에 저는 퇴고를 다룬 책이 나오면, 읽지 않게 되더라도  득달같이 구입한 뒤 서가에 꽂아넣는 일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수정고에 관한 책은


<퇴고의 힘>


외에도 세 권이 더 있습니다. 린다 시거가 쓴


<시나리오 거듭나기>

와 폴 치틀릭이 쓴


<시나리오 고쳐쓰기>

, 제임스 스콧 벨이 쓴 <

소설쓰기의 모든 것 5 : 고쳐쓰기>


등입니다.



그 책들을 제가 언젠간 다 읽어드릴 예정인데, 오늘은 그 중에서 가장 최근에 나온 <퇴고의 힘>을 먼저 읽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  초고 전에 테스트 버전을 써보세요.   





소설가 로버트 보즈웰은 자신의 초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일단 써서 내 이야기 안으로 들어가봐야만 그게 어떤 이야기인지 알게 된다. 인물에 집중하지만 그들의 행동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상징 같은 것을 찾지도 않는다.  일부러 최대한 오랫동안 줄거리를 파악하지 않으려 한다. 내가 아는 거라곤 작품 속 세계관의 극히 일부일 뿐이다. .... 나는 이야기를 분석하지 않는다. 이렇게 함으로써 예상치 못한 일들이 계속 이야기 속에서 생겨나기를 바란다."



많은 작가들이 캐릭터 세팅 외에 톤앤매너 관해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한 뒤 초고를 씁니다. 

저는 제발 그러지 말라고 말리고 싶습니다. 제일 중요한 게 자기가 어떤 작품을 쓰려 하는지 아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아는 방법은 캐릭터 세팅과 톤앤매너 정립에 있지 않습니다. 오직 테스트 버전을 직접 써봄으로써 알 수 있습니다. 

소설이면 소설대로, 극본이면 극본대로 러프하게 써보는 겁니다. 캐릭터는 대표 성격만으로 씁니다. 가령, 착한놈 나쁜놈 미친놈 이런 식으로요. 그리고 빌런도 등장시키고, 사건도 등장시켜서 써보는 겁니다. 소설도 그렇고 극본도 그렇고, 대략 10장 정도 써보면, 내가 무엇을 쓰고 싶은지 감을 잡을 수 있을 겁니다. 만약 감이 안 온다면 감이 올 때까지 더 써보는 거지요. 

그렇게 감이 오면, 그때 캐릭터를 세팅하고, 톤앤매너를 잡아도 잡으면 됩니다. 그리고 초고를 쓰면 되는 겁니다. 

첨부터 각잡고 쓰면 오히려 시간이 더 걸립니다. 각잡는 동안 담배도 많이 피우고, 술도 많이 먹게 됩니다. 괜히 머리를 쥐어 뜯으며 시간도 많이 허비하고요. 작가들은 이것을 작품 구상을 하면서 뭔가 무르익게 한다고 하지만, 생활형 프로페셔널 작가들은 이걸 그냥 허송세월한다고 표현합니다.  

그냥 어깨에 힘 빼고 써보는 것을 적극 추천합니다. 그러면서 발견하는 것이 제법 쏠쏠합니다. 

소설가 하이디 즐라비치의 생각도 비슷하다. 나는 줄거리를 미리 생각하지 않는다. ... 설계도를 그리는 건축가가 된 기분으로 글을 쓴다. 책을 쓰기도 전에 모든 걸 발견해버린다면 그 다음엔 발견할 게 아무것도 남지 않을 텐데, 그러면 그때부터  글쓰기는 가슴 뛰는 일이 아니라 의무처럼 느껴질 것이다. 




2. 집필일기를 한 번 써보시겠습니까?


나는 <애플 시드>라는 초고를 쓸 당시, 한동안 다이어리에 글쓰기 과정을 기록했다. 하루의 글쓰기가 끝나면 작업실을 벗어나 부엌이나 뒷마당으로 가 커피를 마시면서 그날의 작업을 되돌아보고 매일 손으로 한두 페이지의 일기를 썼다. 말라가는 잉크와 함께 일기장은 날로 두툼해졌고,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채울 때마다 일기장에 시간이 차곡차곡 쌓여가듯 나도 뭔가를 차근차근 쌓아올리는 기분이 들었다. 두툼해진 일기장을 손에 쥐면 내가 나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새삼 와닿는데, 손에 잡히지 않는 컴퓨터 파일에서는 느낄 수 없는 감정이었다. 


작품을 쓰면서 집필일기를 꼭 써보시기를 추천합니다. 저는 맥의 메모장에 집필일기를 씁니다. 저처럼 집필작업을 끝내고, 메모장에 이런저런 단상을 적어놓아도 되고, 간지나게 플랭클린 다이어리에 나를 위한 사치로 구입한 만년필로 써도 됩니다.

형식이나 내용은 자유입니다.

내일 집필 스케쥴에 관한 내용도 좋고,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 사건사고에 관한 아이디어, 필요한 자료 수집에 관한 이야기도 좋습니다.

 뭔가 지금 쓰고 있는 작품과 관계가 있는 것이라면 모두 오케이입니다.

이 집필일기에 끄적거려 놓은 것을 여러분은 반드시 뒤적거리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작품에 반영하게 될 것이고요.



3. 징검다리 작법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다음에 어떤 내용이 와야 하는지 모르겠다면, 시인 찰리 스미스가 제안한 방법을 시도해 보라. '섬 만들기'라고 부르는 방법인데, 그 동안은 한 장면씩 순서대로 썼다면 이번에는 당신이 미리 생각해둔 장면부터 써보는 것이다. 홀로 떠 있는 섬처럼 동떨어져 보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괜찮다. 비중 있는 장면들이 페이지 위에 모습을 드러내기만 하면, 적어도 가야할 목적지가 정해진 것이니 그 섬들을 이어주는 다리를 건설하면 된다. 



이 징검다리 작법은 매우 중요한 스킬입니다.

징검다리 구성을 사용하면, 적어도 배가 산으로 가는 일은 없게 됩니다. 그리고 다음 징검다리로 가기 위해서 도움 닫기를 얼마나 세게 해야 하는지, 얼마나 멀리 뛰어야 하는지 계산해야 하는데, 그 결과물이 캐릭터가 움직이는 동력이 되어 줍니다.

이 징검다리 작법은 스토리 중심의 이야기에서 캐릭터 중심의 이야기로 여러분의 작품을 변화시켜 줄 것입니다.



4. 플롯 전개의 4 요소를 알고 가시죠.


제프 밴더미어는 플롯을 전개하는 네 가지 요소로 발견, 복잡성, 반전, 해결을 꼽는데 이 중 적어도 하나는 있어야 성공적인 장면이라 할 수 있다. 대체로 '발견'은 이야기 초반에, 결정적 '반전'은 결말에 가까워질 때 등장한다. 당신의 이야기가 지금 어느 단계에 있든 거기서 더 나아가고 싶다면 무언가를 발견하는 장면, 관계나 상황이 복잡해져 혼란을 겪는 장면, 반전이 드러나는 장면, 문제가 해결되는 장면을 써보라. 



간단합니다.

여러분이 현재 쓰고 있는 장면(극본에서는 씬)에 발견, 복잡성, 반전, 해결 등 어느 하나라도 들어있지 않으면, 삭제해도 무방하다는 것입니다.

정보가 있어서 못 빼겠다고요? 정보를 다른 데로 분산 배치하고 그 씬을 빼시면 됩니다. 씬들이 타이트하게 붙을 것이고, 채널이 돌아가지 않고 고정될 것입니다.



5. 글을 쓰다가 막히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뉴요커>에 실린 비평가 조슈아 로스먼의  '시나리오 기획'이라는 글에서 영감을 얻었는데, 그 내용에 따르면 기업이 어떤 행동의 결과를 예측할 때 활용하는 '시나리오 기획의 기본'은  미래를 세 가지로 예측한다고 한다. 상황이 좋아지는 경우, 상황이 나빠지는 경우, 상황이 이상해지는 경우. 다음 장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게 좋을지 확신이 없을 때는 이 세 가지 경우를 각각 하나씩 써보는 것도 방법이다. 잘하면 막혔던 글이 풀리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글변비가 왔을 때 위 방법으로 관장하면 됩니다.



6. 작가님들, 절대 '이지 고잉'하시면 아니 되옵니다. 

우리는 매력적인 인물을 만들어 내고 그들과 사랑에 빠진다. 그러다 우리 주변 누구에게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끔찍한 상황으로 그들을 밀어 넣고는 또 얼마 후 이 곤경에서 어떻게 구해낼지 궁리한다. 그런데 이때 작가는 자신의 인물이 손쉽게 위기를 모면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유혹을 느낀다. 특히 그들이 불쾌하거나 복잡한 상황에 빠져 있을 때는 마음이 더 흔들린다. 하지만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그들이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그 상황을 빠져나가도록 두면 안 된다. 그들이 인생을 편하게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해서도 안 된다. 만약 그렇다면 그들이 더 고달픈 인생을 맛볼 수 있도록 고쳐야 한다. 


조지 손더스가 말했듯이 작가가 할 일은 "복잡한 상황을 향해 가는 것"이다. 주인공을 급류에서 멀리 떨어뜨려 놓는 것이 아니라 "급류로 몰고 가는 것"이다. 이야기는 긴장과 갈등, 신체적 위험과 복잡한 감정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주인공을 한 가지 곤경에 빠뜨리는 것으로 충분치 않다. 아주 많은 시련이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골치 아픈 일이 일어난다. 골칫거리가 바로 이야기다. 


초보 작가들은 자기 작품의 주인공(마치 자기라 생각하는 듯)이 위험에 처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위기에 빠지는 것을 잘 쓰지도 않고, 빠진다 해도 그게 위기처럼 보이지도 않으며, 또한 위기에서 너무 쉽게 빠져나옵니다.

근데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의 작품을 여러분만 읽으려고 쓰는 게 아니잖습니까? 여러분이 남의 작품을 읽거나 볼 때 너무 손쉽게 모든 것이 해결되면 보고 싶을까요?

내가 재밌고 좋아하는 걸 쓰지 마시고, 남들이 좋아할 법한 것들 쓰시는 훈련을 하시기 바랍니다.



7. 초고를 완성한 뒤 수정고로 들어가기 전에 씬 시놉을 만드세요.


극본 작가들은 초고를 쓴 다음 씬 시놉을 만듭니다. 씬별로 어떤 내용이 담겼는가 써놓는 거지요. 어떤 분은 그것을 엑셀로 정리하기도 하는데요. 그외 플로어 차트로 정리하거나 스토리보드로 정리해도 됩니다. 

보통 주인공이 어떤 선택을 하거나 어떤 행동을 했다로 기술합니다. 

다음과 같은 내용을 체크하기도 하고요. 

사건이 어느 정도의 시간 차를 두고 독자에게 흘려주는가, 최초의 사건이 일어나기까지 얼마나 걸리는가? 새로운 사건은 얼마나 자주 일어나는가, 독자의 예상을 뒤엎거나 긴장과 갈등을 고조시킬만한 사건은 어디에 있는가? 결말이 가까워지는 지점은 어디인가? 결말에서 확실하게 해결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이 책에서는 소설에서도 그렇게 작업을 하라고 해서 조금 놀랐습니다. 근데 생각해보니 소설이나 극본이나 결국 스토리를 더욱 정교하게 다듬는데는 씬 시놉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소설은 작가가 생각하는 이야기의 단위로 나눠 요약하면 됩니다).

이 씬 시놉은 실질적으로 작품의 설계도가 되는 겁니다.

이걸 토대로 쓰레기(초고)가 보물(최종고)로 탈바꿈하게 되는 거죠.



8. 최종 수정을 앞두고는 리딩을 꼭 해보시기 바래요.


눈이 볼 수 없는 것을 귀는 듣는다는 말이 있다.  자기 작품을 소리내어 읽는 것이 도움이 된다. 소리 내어 읽을 때는 모든 단어를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눈으로 조용히 훑어보면 육성으로 읽을 일이 거의 없다. 게다가 자기가 쓴 글은 이미 지겨울 정도로 많이 읽었을 테니 평소처럼 슥 보고 넘기기 마련이다. 그러다 눈으로 읽을 때는 보이지 않던 가능성을 귀는 알아챌 때가 있다. 글이 문자에서 소리로 바뀌어 나오는 것에 집중하면 자기도 모르게 그 의미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글을 수정하다 보면 내가 쓴 작품이 똥인지 된장인지 판단이 안 설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작가는 진정한 멘붕을 겪습니다. 그것은 작업 중이던 파일을 날렸을 때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특히, 공모나 마감을 앞두고 그런 현상은 더 쉽고 심각하게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그때 소설이라면 혼자서 소리내서 낭독하면 쉽게 해결됩니다. 

극본이라면, 몇몇 사람들을 불러서 극본 리딩을 하면 정말 좋습니다. 그래서 저도 제자나 동료들을 불러 대본 리딩을 합니다. 그리고 밥을 사주면서 리뷰를 듣습니다. 굉장히 좋은 방법입니다.

여러 사람을 모을 수 없을 때는, 걱정할 필요없습니다. 혼자서 일인다역을 하면 됩니다. 

그렇게 하면 작품의 재미를 확실하게 알 수 있는 동시에, 수정할 사항이 탁탁 보이게 됩니다. 

정말 좋은 방법입니다. 강력 추천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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