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 템플릿
이십여년 전....
망생이 신분으로 한창 습작을 할 때 스터디에서 한 멤버가 본격적인 집필에 앞서 주인공의 인물 이력서를 써왔다. 뭘 하더라도 제대로 하는 그런 멤버였다. 그가 써온 주인공의 이력서는 진짜 이력서였다. 문방구에서 파는 이력서를 사다가 몇 장에 걸쳐서 육필로 써온 이력서에는 주인공의 인생이 완전히 녹아들어 있었다. 심지어 사진란에 가상으로 캐스팅한 배우의 사진까지 붙어 있었다.
그 이력서에는 보통 이력서에는 넣지 않을 별의별 이상한 내용들이 있었는데, 그중 지금도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고 있는 내용은 주인공의 성경험 횟수였다.
성경험 횟수 : 두 번 반.
왜 두 번 반인지 묻고 싶었으나, 당시 스터디 멤버들 대다수가 여성이었기에 자칫 분위기가 싸해질까봐 묻지 못했다. 대신 나는 '너는 뭔가 디테일이 강한 거 같다' 라는 칭찬(?)으로 얼버무렸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갑자기 그 '반'의 의미가 궁금해졌지만, 연락이 끊긴 그를 찾아서 물어보는 일은 불가능한 일인 듯하다(혹시 이 글을 읽는다면 연락을 주시길).
아무튼 그가 적어낸 이력서는 정말 봉준호 저리가라 할 정도로 디테일의 집대성이었다. 정말 그는 칼을 갈고 이력서를 써온 것이 틀림없었다.
그래서 그가 작품에 들어가서 그 완벽한 이력서를 토대로 멋진 작품을 썼을까?
당신이 궁금해 하는 '두 번 반'에 대한 얘기는 못해줘도 이건 내가 말해줄 수 있다.
멋진 작품은 결코 나오지 몫했다. 이력서 따로 작품 캐릭터 따로였다. 불행한 일이었다(이력서 용지가 아까웠다).
왜 그랬을까? 그토록 정밀하게 이력서를 썼지만 왜 캐릭터에 반영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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