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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원 Nov 05. 2023

공모에 당선되는 극본쓰기 17

요즘 스토리 전개방식

 이제부터는 당신이 기대해마지 않았던 스토리텔링에 대한 공부를 제대로 해보겠다. 


지금까지는 스토리텔링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위한 사전작업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국내에 소개된 모든 스토리텔링 공식(또는 패턴)을 당신에게 알려줄 것이다. 아마 당신은 그 과정에서 스토리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확실히 알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당신은 당신에게 최적화된 하나의 방식을 선택해 주력으로 사용할 수도 있고, 스토리텔링 공식을 조합해서 당신만의 커스텀 스토리텔링 공식을 갖게 될 수도 있다. 

어떤 식이든 좋다. 당신이 선택한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스토리를 잘 만들면 장땡이니까. 


그런데 본격적인 스토리텔링에 대해 배우기 전에 요즘 스토리텔링의 추세에 대해서 알려주겠다. 


사실 공식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시대가 요구하는 스타일은 있다. 바로 그 스타일을 알려주려고 한다. 

내가 이번에 소개하는 내용을 명심한 뒤 다음 번부터 배워가는 스토리텔링 공식에 접목하면, 이 시대가 요구하는 스토리의 극본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우선.... 


'Fast Forword'를 아는가. 


그렇다. 전소미의 노래이다. 


나는 미래의 너의 연인인데, 너를 만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만나야 할까, 너를 만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아야 할까? 근데 그런 거는 빨리 감기(Fast Forword)해 버리고 바로 널 만나고 싶다. 


대충 이런 내용을 담고 있는 노래인데, 빨리감기(Fast Forword)를 연애에 적용하겠다는 발상이 재미있다. 그리고 이런 생각도 하게 된다. '빨리감기'가 얼마나 일상화 되어 있으면 이런 노래가 나왔을까?


노래방에 한 번 가보자. 리모컨에 '전주 생략', '간주 생략' 버튼이 있다. 노래방 손님들은 전주와 간주 따위는 듣고 싶지 않다. 정해진 시간에 가장 많은 노래를 부르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요즘 케이팝은 노래방에서 부를 때는 생략 버튼을 안 눌러도 된다. 


요즘 케이팝을 들어보라. 전주다운 전주가 있던가? 한두 마디 효과음 같은 전주만 있을 뿐이다. 8마디 전주, 16마디 전주가 나오는 순간, 그 케이팝은 망하는 거다. 간주도 없다. 멤버들이 돌아가면서 노래를 부르는 것도 벅찬데, 간주를 넣어가며 쉬는 시간을 줄 필요는 없는 것이다. 


세상이 이렇게 변했고, 변하고 있다. 


드라마라고 안 변했을까?


드라마도 유행을 타는 장르이다. 영향을 받지 않을래야 받지 않을 수 없다. 


옛날에는 시청자에게 편집권(?)이 없었다. 티브이를 통해서 드라마가 방송되면, 처음부터 끝까지 수동적으로 감상해야만 했다. 


하지만 요즘은 어떤까? 


오티티가 득세를 하면서 시청자들은 수동적인 감상자에서 능동적인 편집자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바로 '패스트 포워드'를 통해서 말이다. 


시청자들은 리모컨이나 컴퓨터 자판으로 보고 싶지 않은 부분, 지루한 부분을 편집하고, 이야기를 이어 붙인다. 시청자들의 이런 행위는 드라마 구성방식의 변화를 가져왔다. 


최대한 시청자들이 패스트 포워드를 하지 못하도록 드라마를 만들 것. 


맞긴 맞는데, 좀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시청자들이 편집할 것 같은 부분을 빼거나 압축하고, 또는 다른 것으로 대체해서 패스트 포워드를 하지 못하는 드라마를 만들 것. 


감이 좀 오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패스트 포워드가 불가능한 드라마를 만들 수 있는지 알아보자. 
  


1. 도입부를 길게 가져가지 않은 것이 좋을 것이다.  


도입부는 이야기가 최초 탄생한 오래 전 옛날부터 점점 짧아지고 있고, 아마 지금이 제일 짧지 않은가 생각 된다. 

아주 오랜 옛날에는 이야기들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쉽게 이해하기 어려웠다. 때문에 도입부에 지금 이야기가 어떤 것인지, 어떤 정보를 알고 있어야 하는지, 등장인물은 어떤 사람들인지 구구절절히 설명해야만 했다. 그래도 이야기 수용자는 흥미로워하고 재미있어 했다. 그때는 이야기가 귀한 시대였고,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하는데 도입부가 긴 방식은 필요충분 조건이었기 때문이다.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 완역본을 보면 두꺼운 책 다섯 권이다. 근데 그 중 1권이 은촛대를 훔친 장발장을 용서해준 신부의 이야기이다. 그 신부가 왜 장발장을 용서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의 인생이 한 권 내내 펼쳐진다. 


하지만 당신은 <레미제라블>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가, 아마 장발장이 은촛대를 훔치는 장면이 시작이라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우리가 보아왔던 <레미제라블>의 각색물을 보면, 장발장이 어린 시절 빵 하나를 훔치는 장면에서 시작하거나, 장발장이 교도소에서 출소하는 장면부터 시작하거나, 아니면 장발장이 하룻밤 잠을 청하기 위해 성당을 찾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하지만, 요즘에 '패스트 포워드' 법칙에 입각(?)하여 각색한다면 어떻게 할까?


경찰이 취조실에서 훔친 촛대를 앞에 놓고, 장발장을 추궁하는 장면부터 시작할 것이다. 

아니, 요즘 드라마는 액션이 중요하므로, 은촛대를 쥐고 도주하는 장발장과 그를 쫓는 경찰로부터 시작할 것이다. 여기서 장발장의 신체적 능력을 충분히 보여주고는, 끝내 경찰들의 양동작전으로 잡히게 할 것이다. 그 다음 경찰서로 끌려온 장발장이 자백을 하려는데, 신부가 나타나 자신이 은촛대를 주었다고 말하게 할 것이다. 

다음 장면 성당 안. 장발장은 은촛대를 돌려주고 가려하는데, 신부는 은촛대에다 은식기까지 얹어서 주고 이에 장발장은 감화를 받는데... 


패스트 포워드를 누를 데가 없다. 이걸로 스토리를 이해하는데 충분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야기가 귀한 시대에 사는 옛날 사람이 아니라, 흔하디 흔한 시대에 살고 있는 현대인이다. 

일주일에 한 번하는 전설의 드라마 <여로>를 보기 위해서 티브이가 있는 집으로 동네 사람들이 모두 모이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고, 개봉 영화를 놓치면 재개봉관으로 가고, 그것도 놓치면 동시상영관을 찾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원하는 드라마나 영화를 언제 어디서든 볼 수가 있고, 이미 수많은 영상물을 레퍼런스로 보아왔던 것이다. 그런 시청자에게 기다란 도입부를 디민다는 것은 '날 좀 편집해 주십쇼'하고 읍소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시간과 돈을 들여 찍은 장면들을 시청자들에게 편집 당하는 수모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한다?

극본에서 컴팩트하게 압축적으로 도입부를 써야 하는 것이다. 



2. 프롤로그 다음에 과거로 돌아가서 이야기를 시작하는 방식을 재고하기 바란다.    


시드니 셀던 소설들이 죄다 그런 식이었는데, 프롤로그에 굉장히 흥미로운 사건이 터진다. 그리고 그 흥미로운 사건의 주인공의 과거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 인물에 빠져서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어느 순간 프롤로그 사건과 주인공이 만나게 되고 클라이막스로 우리를 인도한다. 


매우 성공적인 이야기 구성방식이고, 시드니 셀던 뿐만 아니라 수많은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에서 이런 구성방식을 썼고 써왔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 좋은 결과를 얻었다. 


하지만 지금도 그럴까? 

만약 당신이 공모에 이런 구성으로 작품을 냈다고 하자.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나는 확률이 떨어진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심사위원은 당신을 올드한 작가라 생각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왜?


패스트 포워드 때문이다. 요즘 시청자들은 과거를 패스프 포워드로 돌릴 가능성이 높다. 빨리 본격 스토리를 경험하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이유는 또 있다. 

이제는 미니 시리즈의 대세가 12부작이다. 


과거 얘기를 울궈먹다 보면 정작 해야할 이야기를 풀어놓을 시간이 없는 것이다.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는 프롤로그 좋다. 함부로 과거로 넘어가서 이야기를 시작하지 말자. 당신은 50부작 대하 드라마를 쓰는 것이 아니다.  


과거쯤은 '내 나름대로 거칠게 살아왔어' 이렇게 퉁치고, 다음 스토리로 냅다 달리도록 해라. 

그래야 당선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3. 성장을 그리는 대신 각성을 생각해 보라. 


사실 모든 드라마는 성장 드라마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요즘 시청자들은 주인공의 성장을 기다려줄 인내심이 없는 것 같다. 


성장부분이 나오면, 패스트 포워드. 


이제 더 이상 복수를 위해 소림사에 물당번으로 들어가서 몇 년간의 갖은 고생을 한 뒤 수제자가 되는 스토리를 보기 힘들다.   


시청자는 주인공의 어떻게 복수를 위해 갈고 닦았는지 별로 궁금해 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복수를 어떻게 할 건지가 주요 관심사이다. 요리법보다 음식의 비주얼과 맛이 어떤가에 더 관심이 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에는 성장을 쓰면, 시청자들이 그 부분을 패스트 포워드할 수도 있다. 때문에 현재 진행형으로 가면서, 위에서 설명했듯이 '나 복수를 위해 소림사에 갔다왔어'라고 대사 한 마디로 과거를 퉁치는 방식이 자주 쓰인다. 

근데 그렇게 해도 시청자들을 다 알아 듣는다는 것이다. 왜? 머리 속에 그런 레퍼런스가 너무 많으니까. 


한편, 요즘은 성장 대신 각성을 하는 주인공을 등장시키는 방법을 쓰기도 한다.  


가령 복수를 해야 하는 주인공이 있는데, 그가 복수를 위해 이런 저런 기술을 터득해서 복수 머신으로 '성장'해 가는 스토리를 쓰는 게 아니라, 원래 능력이 있었지만 숨기고 있다가 복수를 위한 '각성'을 한 뒤 닥치는대로 복수를 해 나가는 스토리를 쓰는 것이다. . 


이 방식은 웹소설에서 많이 쓰는 방식이기도 하다. 


현판(현대판타지) 계열의 웹소설을 보면 보통 1회에 각성하면서 세팅이 끝난다. 그리고 나머지 2백회를 주인공이 어려움을 헤쳐가는 것으로 스토리가 이뤄진다. 그런데 여기서 주인공들은 우여곡절을 별로 겪지 않는다. 주인공의 고난을 겪으면, 고구마 구간이라고 해서 독자들이 작품에서 하차를 한다. 그래서 웹소설 작가들은 독자들을 붙들기 위해 사이다로만 스토리를 전개한다. 

<범죄도시 3>가 천만을 찍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고구마 구간 없이 주인공 마동석의 펀치가 주는 사이다로 진행되지 않는가. 


정통 드라마 작가는 이런 것을 너무 쉽게 전개(이지 고잉)한다고 거부하지만, 실제로 보면 결코 이지 고잉이 아니다. 웹소설에서도 이지 고잉하면 독자들은 얄짤없이 하차한다. 


웹소설 작가들은 주인공에게 고난을 주기보단 유능함을 준다. 어떤 미션이 오더라도 독자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유능하게 사건을 해결하게 만든다. 


웹소설 독자외 드라마 시청자들 사이에는 많은 숫자의 교집합이 존재한다. 아직은 두 장르 간의 간격이 크지만 점점 좁혀질 것이다. 

따라서 고난을 통해 성장하는 주인공보다 각성을 통해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된 주인공이 유능하게 스토리를 풀어나가는 스토리를 생각해 보기 바란다. 


각성하고 행동하는 주인공을 당신 작품에 장착했을 때 당신은 챔피온이 될 수 있다. 


4. 제발 회상 장면을 남발하지 좀 마라.  


회상 장면의 본질은 '정보'와 '설명'이다. 그런데 온갖 영상물에 단련된 시청자들은 친절하게 정보을 얻고, 자세한 설명을 듣는 순간, 다음 이야기가 너무나 쉽게 예상을 한다. 그리고 자기가 예상한대로 스토리가 전개되면, 그 즉시 드라마 하차를 결심한다. 


옛날처럼 재미없어도 봐주고, 좋아하는 배우에 대한 의리 때문에 봐주고 하는 거 그런 거 요즘엔 없다. 


요즘 시청자들은 회상이 나오면, 그 순간부터 지루함을 느낀다. 목구멍을 확 틀어막은 고구마로 생각하는 것이다. 


회상씬 남발주의자인 당신은 내가 물을 것이다. 그러면 어떡해야 되나요?


회상이 필요하다면, 그냥 말로 하거나 아주 짧게 플래시 백을 써라. 


요즘 드라마는 회상씬이 거의 나오지 않는 상태로 진행된다. 회상씬없이 잘 쓰는 작가가 정말 잘 쓰는 작가이다. 

불세출의 미드 <24>를 보면 이런 장면이 나온다. 

대테러 조직인 CTU에 수장이 짤리고 새로운 수장이 오기로 되어 있는 상황이다. 그 조직의 핵심 요원은 수장으로 누가 오더라도, 할 말은 하고 개길 건 개기겠다고 다짐하고, 그의 동료도 그가 충분히 그러리 라고 믿어준다. 

그때 새로운 수장이 나타난다. 여자다. 

갑자기 토니 알메이다의 표정이 납빛이 되고, 시선을 돌려 그녀를 외면한다. 

왜 그래? 너 우리대신 개겨주기로 했잖아. 

토니 알메이다는 중얼거린다. 

내 엑스-와이프야. 

아마 당신이라면, 이렇게 쓰지 못했을 것이다. 

CTU에 새로운 수장으로 여자가 오는 것을 토니 알메이다가 발견한다. 

그리고 회상... 그녀와 싸우고, 이혼하는 일련의 과정들....

하지만 이젠 그런 식으로 쓰지 말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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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요즘 드라마 스타일의 특징을 4개 항목으로 정리했다. 


아마 당신은 깜짝 놀랐을 수도 있다. 내 얘기를 들으면서, 맞아맞아 정말 그러네.  

그렇다. 당신이 보는 최근 드라마들은 도입부도 짧고, 과거 스토리, 성장 서사도 거의 없으면서, 회상 씬도 거의 없다. 

그런데도 정작 당신은 드라마 극본을 쓸 때, 아직도 도입부도 길게 넣고, 과거와 성장을 다 때려넣은 뒤, 필요할 때 고민없이 회상 씬을 마구 넣어서 쓰지는 않았나?.  

그랬다면, 당신은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당신 극본이 이 제작사나 방송사에서 '빠꾸'를 먹고 '뺀찌'를 당했을 확률이 높다.  

바로 위 네 가지 항목을 많이 쓰고 안 쓰고에서 극본의 올드함과 모던함이 갈린다.    

스토리텔링 공식(서사구조)를 배우기 전에 이런 요즘 극본의 특징을 알아두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걸 모르고 서사구조를 냅다 갔다 쓰면 십중팔구 올드한 극본을 쓰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후지더라도 모던한 방식으로 글을 써야 한다. 

당신의 극본에서 올드함을 던져버리지 못하면, 다음의 스토리텔링 공식을 배우는 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회를 잡지 못할 확률이 매우 높다. 

명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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