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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원 Nov 27. 2023

이작가가 읽어주는 작법책 02. <스토리텔링 애니멀>

스토리텔링 애니멀

 '스토리'는 선사시대부터 인류의 가장 중요한 생존 도구였다. 


짐승을 사냥하고 동굴로 돌아왔을 때 그들은 모닥불 가에서 고기를 구우며 이야기 꽃을 피웠다. 화제는 두 가지였을 것 같은데, 하나는 지금 구워먹는 이 동물은 어떻게 잡았을까 하는 것과 다른 하나는 맹수의 위협에서 어떻게 몸을 지켰을까 하는 것이었다. 아마도. 


이 두 가지 이야기는 생존과 안전에 관한 이야기였다. 


이 시기 때부터의 유산이어서 그럴까?


우리 인간들은 생존과 안전에 대한 스토리에 즉각적으로 반응을 하고, 호기심을 보인다.  


매슬로우의 욕구 5단계를 보면 이 사실이 매우 잘 설명되어 있다. 가장 하위 단계인 생리적 욕구가 바로 생존에 관한 욕구이며, 바로 윗 단계가 안전의 욕구이지 않은가. 

매슬로우의 욕구 5단계


따라서 생존 욕구와 안전 요구를 자극하는 이야기가 대중들을 끌어 들이는데 도움이 된다. 블록버스터 대다수가 생존 욕구와 안전 욕구를 다루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선사시대를 지나 농경사회가 되면서 인구수가 급격히 늘어나자 질서가 필요해지자 신화와 같은 영웅(리더)의 이야기를 새롭게 만들어 내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리고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도 속출했을 것이고. 


그리고 점차 존경의 욕구와 자아실현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스토리가 나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상위 욕구를 충족시키는 스토리는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기 힘든데,  그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도 벅찬 삶을 살기 때문일 것이다. 상위 욕구를 다룬 구도자 이야기에 관심이 적은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드라마라는 것은 불특정 다수로부터의 지지라 할 수 있는 시청률로 먹고 산다. 때문에 불특정 다수가 갖고 있는 욕구의 공통 분모를 잘 캐치하는 것이 성패를 좌우한다.  


이런 욕구의 공통 분모에 대해 <스토리텔링 애니멀>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섹스와 사랑, 죽음의 공포와 삶의 도전, 그리고 영향력을 발휘하고 예속에서 벗어나려는 욕망, 곧 권력이 이야기의 주제이다.


즉, 이런 주제로 이야기를 만들어야 대중과 소통이 가능하고, 작가는 다음을 기약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 주제가 다루는 욕구가 바로 생존, 안전, 그리고 사회적 욕구인 것이다. 



책 표지


<스토리텔링 애니멀>은 조너선 갓설이라는 학자가 왜 인간만이 스토리를 만들어 내고, 그 스토리에 빠져들어 정신을 못차리는 가를 고찰한 책이다. 


이 책은 작법책이라기보다는 이야기의 작동 원리를 다룬 인문학 서적이다. 하지만 내가 굳이 리뷰를 쓰는 이유는 작법 매뉴얼만 파는 테크니션만으로는 좋은 작가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테크닉 이상의 통찰을 준다. 


또한 여기에 나오는 내용들을 어디 가서 얘기하면 굉장히 있어 보이는 잇점이 있기도 하다(어쩌면 후자가 당신에게 더 필요한 지도 모른다).


조나선 갓설은 많은 애니멀 중에 인간만이 스토리텔링 애니멀이 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를 공감 능력이라고 봤다. 인간만이 공감을 할 수 있고, 그 공감 능력을 바탕으로 스토리를 내 것처럼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그 공감은 대체 어디에서 이루어지는가. 


1990년대 이탈리아의 신경 과학자들이 거울 뉴런을 발견했단다. 


이 거울 뉴런은 비교적 최신의 이론 답게 아직 논란의 여지가 많지만, 적어도 <스토리텔링 애니멀> 안에서만큼은 인간의 공감 능력이 어디에서 오는지 매우 잘 설명하고 있다.  


신경과학자들이 원숭이를 상대로 나무 열매를 잡으려고 손을 뻗을 때 어떤 신경 부위가 작동하는지 알아내려고 뇌에 전극을 연결했다. 그런데 직접 열매를 잡을 때가 아니라 다른 원숭이나 사람이 열매를 잡는 것을 볼 때도 원숭이 뇌의 같은 부위가 활성화 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바로 그 부위에 있는 것이 거울 뉴런인 것이다. 

이후, 거울 뉴런에 대한 연구가 폭발적으로 일어난다. 


우리 뇌 안에 거울 뉴런들은 우리가 보고 있는 영화 속 슬픔을 재창조한다. 우리가 가공의 인물과 공감하는, 즉 그들이 어떻게 느끼는지를 알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말 그대로 영화 속 인물들과 똑같은 느낌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배우들이 키스하는 장면을 볼 때 우리 뇌 안에서는 우리의 연인과 실제 키스할 때 발화하는 것과 똑같은 세포들이 발화하는 것이다. 


이런 흥미로운 연구도 있었다. 


신경과학자 팀이 피험자를 fMRI(기능적 자기 공명 영상) 기계에 넣고... 


1. 배우가 컵에 든 음료를 마신 뒤에 역겨운 표정을 짓는 동영상을 보여주었다. 

2. 피험자에게 짧은 시나리오를 읽어주고는 길에서 구역질하는 취객과 부딪혔는데 토사물이 피험자 자신의 입에 묻었다고 상상해 보라고 했다.

3. 역한 맛이 나는 용액을 실제로 맛보게 했다. 


이 세 가지 경우에서 모두 동일한 뇌 부위가 활성화 되었다. 그 부위는 혐오를 관장하는 전측 뇌성엽이었는데, 여기에 참여한 과학자들은 이렇게 말했다. 


이 실험 결과의 의미는 우리가 영화를 보든 이야기를 읽든 간에 같은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 즉 역겨울 때 일어나는 신체 표상이 활성화된다는 것이다.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볼 때 주인공이 겪는 감정을 우리가 실제로 겪는 것처럼 느끼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이러한 '뇌의 픽션 반응' 연구는 조나선 갓셜이 이 책을 통해서 주장하는 '스토리텔링의 문제 시뮬레이션 이론'에 부합한다. 


그는 주장한다. 


스토리는 인간 문제를 시뮬레이션하는데 특화된 아주 오래된 가상 현실 기술이다.


이야기는 공짜로 감정을 선사한다. 일상에서는 사랑하고 비난하고 용서하고 소망하고 두려워하고 미워하는 감정의 대가가 따르지만 문학에서는 그런 위험없이 이 감정들을 경험할 수 있다.


이야기는 인간 사회 생활의 모의 비행 장치이다. 모의 비행 장치가 조종사를 안전하게 훈련하듯 이야기는 사회 생활의 어려움을 헤쳐 나갈 수 있도록 우리를 안전하게 훈련한다.


우리는 위험한 사내에게 대들거나 남의 배우자를 유혹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경험하지만, 죽는 것은 우리가 아니라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사람들은 이야기를 통해 사회 생활의 주요 기술을 연습한다. 생존 방법을 배우고, 위험으로부터 나를 지켜 안전해질 수 있는 법을 배우며, 사회 생활 속에서의 사랑과 성공을 배우는 것이다. 즉, 사람들은 기본적인 욕망을 해소하는 이야기를 통해서 순기능과 역기능을 알아내는 것이다.  


가령, 예전에 꾸준한 인기를 얻었던 드라마 <사랑과 전쟁>는 중장년 여성 시청층에서 특히 인기가 높았는데, 그 이유는 주로 다루는 소재가 '이혼'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코로나 시기에 스티븐 소더버그의 <컨테이전>이 역주행한 것은 그 영화가 바이러스 감염에 대해 가장 정확한 이해를 보여주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는 그냥 지식으로 전달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전달 된다. 


조나선 갓설은 이렇게 말한다. 


아이들의 흉내 놀이에서 민담과 현대 드라마에 이르기까지, 픽션의 주제는 '말썽'이다. 


'말썽'은 갈등을 뜻하는데, 이것이야 말로 픽션의 기본 요소이다. 


자신의 삶에서는 결코 원치 않는 것이 갈등이지만, 남이 하는 것은 즐거운 마음(?)으로 관전하게 되는 것이 갈등이다. 그리고 그 갈등이 해결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카타르시스도 느끼고, 삶의 지혜도 얻게 되는 것이다. 


말썽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걸 해결할 수 있는 문제적 인간이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조나선 갓설은 갈등(어려움)을 해결하는 방식을 토대로 다음과 같은 이야기 공식을 만들었다. 


이야기 = 인물 + 어려움 + 탈출 시도


주인공은 간절히 바란다. 살아남기를 바라고, 이성을 차지하기를 바라고, 잃어버린 아이를 찾기를 바란다. 하지만 주인공과 그의 소원 사이에는 커다란 장애물이 놓여있다. 


그래서 주인공은 어려움(갈등)을 극복(탈출시도)하려 노력하는 것이다. 


희극이든 비극이든, 모든 이야기는 주인공이 소원을 이루려고 애쓰며, 대개는 그 과정에서 대가를 치른다.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감동(카타르시스)가 없다. 

그래서 리사 크론은 이야기가 끝났는데도 감동이 없다면, 클라이막스로 되돌아 가서 주인공이 대가를 치르게 하라는 말도 했다. 


우리는 주인공들의 분투에 단순히 공감하는 것이 아니라 격하게 감정이입할 정도로 자신의 일로 동일시해서 그들의 행복과 욕망과 두려움을 느낀다. 그리고 우리 뇌는 그들에게 일어나는 일이 우리에게도 실제 일어나는 것처럼 반응한다. 


픽션 자극에 반응해서 뉴런이 지속적으로 발화하면 삶의 문제를 능숙하게 헤처 나갈 수 있는 뉴런 회로가 강화되고 정교해진다. 


우리가 픽션에게 매력을 느끼는 이유는 우리에게 전반적으로 이롭기 때문인데, 인간의 삶, 특히 사회적 삶은 아주 복잡하고 만약 실패하면 잃을 것도 많기 때문이다. 픽션은 예나 지금이나 인류가 성공하는데 더없이 중요한 과제들에 반응하도록 뇌를 연습시킨다. 




이 <스토리텔링 애니멀>이 우리(작가)에게 주는 메시지는 간단하다. 

인간이 좋아하는 이야기는 인간의 욕구와 관련이 있고, 그 욕구를 드라마틱하게 해소하는 방향으로 이야기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작품(픽션)을 기획하는 차원에서 매우 중요한 포인트이다. 

그냥 재밌을 것 같아서 기획 되는 작품들이 많다. 하지만 그런 작품들 중에서 성공작이라는 타이틀을 다는 작품들은 거의 없다. 왜냐하면, 대중의 욕구를 요식행위로 다루기 때문이다. 

어떤 작품을 기획하고 쓰든, 내 작품이 대중들의 어떤 욕구를 대변하는지 반드시 성찰해 봐야 한다. 그리고 그 욕구를 어떻게 강화하고, 어떻게 해소시킬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그게 성공적인 스토리텔링의 해심이다. 

또한 그것은 더 많은 대중들과 더 뜨겁게 만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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