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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원 Dec 11. 2023

공모에 당선되는 극본쓰기 21.

1막을 영웅서사로 분석하기

 당신은 내가 강의를 시작하면서 시놉시스를 (먼저) 쓰지 말라고 했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 말 때문에 나에게 후킹이 되어 여기까지 왔는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지금 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경배를!


내가 나중에 알려주겠다고 했던 시놉시스를 쓰는 요령 중에서 줄거리를 쓰는 법에 대해서 잠깐 얘기하겠다. 


줄거리는 영웅서사구조로 쓰는 것이 제일 좋다. 쓰는 사람도 편하지만, 읽는 사람도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아마 당신도 그 안에 속할 테지만, 대본을 다 쓴 뒤 줄거리를 요약하라고 하면, 매 씬들을 요약해서 이어붙이는 식으로 줄거리를 쓴다. 가장 안 좋은 방법이다. 


영웅서사구조로 써야 한다. 


자기가 쓴 극본을 덮어두고 자기 머리 속에 있는 이야기 흐름을 영웅서사구조로 정리해야 하는 것이다. 


도입부는 이렇게 쓴다.  


주인공은 현재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다. 그는 어떤 것을 이루고 싶은 목표 내지는 꿈이 있다. 그런데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를 만나지만, 두렵기도 하고 실력이 안 되기도 해서 거부를 하게 된다. 하지만 그는 어떤 계기로 그 꿈을 이루기로 작정을 하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한 길로 나서는데...


지난 강의에서 말했던, 보통 세상 - 모험에의 소명 - 소명의 거부 - 정신적 스승 - 첫관문 통과(돌파)의 순서대로 줄거리를 시작하는 것이다. 


내가 영웅서사구조 12단계를 세 토막으로 나눠서 강의하는 이유는 설명의 편의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그 세토막이 1막, 2막, 3막 등으로 확연하게 구분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특히 1막에 해당되는 영웅서사구조 도입부 5단계는 매우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설명하는데, 그 이유는 '세상의 모든 서사구조'에서 영웅서사구조의 도입부 5단계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신은 영웅서사 도입부 5단계를 반복 숙달해서 자기 것으로 만들기를 바란다. 


그렇게 되면 당신이 만들 이야기를 매우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당신의 이야기에서 빠진 부분을 체크할 수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당신의 이야기를 5단계 포인트마다 엣지를 줄 수 있다. 


대개 이야기의 도입부에 영웅서사가 들어있지만, 그것이 두루뭉술하게 표현되면 있으나마나 할 수도 있다. 때문에 모험에의 소명과 그 거부, 정신적 스승, 첫관문 돌파 등의 중요 포인트가 강조되도록 쓰면, 이야기가 한충 분명하고 임팩트가 있어지고, 재미마저 있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기 바란다.   


이런 질문이 있을 수 있다. 


반드시 영웅서사구조를 순서대로 지켜야 하는 건가요? 그리고 어느 한 요소가 빠지거나 반복되면 안 되는 건가요?


이 질문에 대해 크리스토퍼 보글러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순서가 바뀌어도 된다. 그리고 스토리상 필요에 의해 어느 한 요소가 빠지거나, 반복되어도 된다. 영웅서사는 대체로 지켜야 하는 것이다. 


가령, 소명을 거부하는 것으로 스토리가 시작할 수도 있다. 보는 이가 궁금해 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런 다음 보통 세상에서의 주인공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줌으로써 소명 거부의 이유를 알게 하는 것이다. 그 다음 소명을 받아들이면서 첫관문을 돌파하고, 나중에 주인공이 왜 소명을 받아 들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정신적 스승을 고백하는 식으로 전개해도 되는 것이고, 실제로 그런 식의 전개를 많이 한다. 

포스터



나는 <제중원>이라는 드라마를 쓸 때 처음으로 영웅서사구조에 맞춰 스토리를 구성했다. 


사실 그 전에 나는 드라마에 영웅서사를 적용하지 않았었다. 그런 게 있는 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도입부를 수도 없이 바꾸었다. 그러다가 크리스토퍼 보글러의 <영웅, 신화, 그리고 시나리오 쓰기>를 보고는 유레카!를 외치고 말았다. 만약 욕조에서 그 책을 보고 있었다면, 알몸인 채 바깥으로 뛰쳐나갔을 수도 있었다. 


<제중원>은 구한말 백정의 아들로 태어나 조선 최초의 양의사가 된 박서양을 모델로 한 드라마였다. 


나는 도입부를 만들다가 난관에 봉착했다. 백정의 신분에서 곧바로 의사가 되는 관문을 돌파를 하는 게 무리수인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고민 끝에 영웅서사구조 도입부를 두 번 반복했다. 백정에서 도망자로 첫관문을 돌파하고, 도망자에서 양의사로 또 하나의 관문을 돌파하도록 말이다. 


보통세상. 주인공 소근개(적게 근수가 나가는 개. 개새끼)는 백정이다. 백정은 백정의 설화대로 소로 태어난 옥황상제의 아들이 이 세상 업을 다하고 하늘로 올라갈 때 도움을 주는 존재들이다. 그들은 국가의 관리 대상이기도 한 소를 도살할 때 의식을 제대로 갖춰 제를 제대로 지내야 한다. 


효성이 지극한 소근개는 현재 아픈 엄마가 있다. 하지만 불가촉 천민인 백정을 아무도 치료해 주지 않았다. 


모험에의 소명. 어느 날, 소근개에게 거액(?)의 밀도살 제안이 들어온다. 


소명의 거부. 소근개는 단호히 거부한다. 밀도살은 백정 세계에서 살인이나 다름 없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조선에서 엄연한 범죄행위였다.  


정신적 스승. 어머니의 병세가 악화되자 소근개는 어머니를 업고 한의원을 돌아다니지만 아무도 치료해 주지 않는다. 그런데 일본 병원에서 일본의사가 돈을 가져오면 치료를 해준다고 한다.  


첫관문 돌파. 소근개는 밀도살을 하며, 다시는 백정 세계로 돌아가지 못한다. 


다시 보통세상. 소근개는 포교에게 쫓기는 동안 우연히 주운 남의 호패의 이름은 황정으로 행세한다. 그러다 선교사 알렌을 만나고 그를 돕게 된다. 


모험에의 소명. 알렌은 황정(소근개)의 품성과 소질을 발견하고, 양의사 공부를 하라고 제안한다. 


소명의 거부. 인간 취급을 받지 못하는 백정인 소근개는 차마 소명을 받아 들이지 못한다.  

정신적 스승. 알렌은 모든 인간은 평등하며, 누구든 의술을 배울 수 있다고 말해준다. 



다시 새로운 관문 돌파. 소근개는 황정이라는 이름으로 알렌이 세운 제중원에 들어가 의사의 길을 걷게 된다. 


이렇게 도입부를 두 번 돌렸더니 이야기가 한층 자연스러워졌다. 


이렇게 영웅서사구조는 다양하게 변주하며 가지고 노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양한 레퍼런스를 보고, 분석해 보고, 내 이야기에 적용해 봐야만 한다.  


자, 이제 다양한 작품의 도입부에서 영웅서사구조를 만나보자. 


이번에 이 글을 준비하면서 독자 망생이들에게 영웅서사로 분석해줬음 하는 작품들을 추천 받았다. 그런데 그 작품들의 상당수는 영웅서사로 분석하기가 애매하거나 까탈스러운 작품들이었다. 이런 경우, 분석이 잘 되는 작품들만 소개하는 것이 나 또한 다른 선생(크리스토퍼 보글러까지도)의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추천해준 작품들을 보면서, 분석이 잘 안 되는 작품들을 레퍼런스로 삼는 것이 실제로 더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번에 독자 망생이들이 해준 추천 작품을 최대한 분석해 보려고 한다. 때문에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너그러운 이해를 부탁 드린다. 

포스터



망생이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이런 얘기를 수시로 듣게 된다. 


"박해영 작가가 제 롤 모델이에요! <나의 해방일지> 같은 거 쓰고 싶어요."


나는 이렇게 답한다. 


"쓰는 건 자유인데, 넌 쓰지도 못할 게 분명하고, 쓴다 해도 편성 안 될 거야."


"왜요? 쓸래요! 쓸 거란 말이에요."


"<나의 해방일지>는 극본적으로 봤을 때 매우 테크니컬 씬 뿐만 아니라 은유적인 씬들이 많아. 네 실력으로 볼 때 결코 도달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야."


예전에는 노희경 작가에게 많은 워너비가 있었는데, 요즘에는 그것이 박해영 작가에게 옮겨갔다. 제 2의 박해영을 꿈꾸는 망생이들은 빨리 정신을 차리기 바란다. 괜히 헛힘만 쓰다가 작가의 길에서 낙오하는 수가 있다. 


<나의 해방일지>같은 작품은 테크닉과 은유에다 인생에 대한 통찰이 더해져야 나올 수 있는 대본이다. 


그런 작품을 쓰고 싶다면, 좀더 대중적인 작품들로 당신의 필모를 늘여가야만 하고, 그 과정에서 당신에 대한 믿음이 배우와 방송 관계자, 그리고 시청자에게 굳건하게 만들어야 한다. 


만약 당신이 동일한 대본을 썼다치자, 일단 프로듀서에게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을 게 자명하다. 


"아니, 주인공 염미정이 왜 이렇게 조금 나와요? 한 회에 최소 70프로는 나와야 하는 거 아닙니까? 당신 프로 맞아요? 이러면 주연급 배우를 캐스팅할 수 없어요. 게다가 이렇게 수동적인 주인공이라니! 망생이들의 바이블인 이기원 작가의 <공모에 당선되는 극본쓰기>도  안 읽어봤어요? 이건 백퍼 편성 불가입니다! "


나는 이런 말을 하는 프로듀서가 전적으로 옳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작가가 박해영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는 순간, 상황은 180도 바뀐다. 수동적인 주인공이지만, 작가 박해영을 신뢰하고 김지원이란 배우가 캐스팅 된다. 그리고 주연의 분량이 준 대신 주조연급의 형과 언니의 분량이 늘어나니 역시 좋은 배우가 붙는다. 


그러자 채널도 박해영 작가와 좋은 배우들의 패키징이 들어오자, 실제로 그랬는지 모르지만, 쌍수를 들어 반기며 편성을 해준다. 


이번에는 시청자 차례. 


극중 삼남매는 실생활 그 자체 같은 훌륭한 연기를 보이며 극을 이끌어 나간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이렇다 할 사건이 나오지 않자 기대를 접고 하차를 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하차를 하지 않고 버티는 시청자들이 있다. 그들 중 상당수는 이 극사실 주의 드라마가 주는 매력에 빠져들기 시작한 것이다. 불신의 자발적 정지가 일어난 것. 시청자들은 삼남매에게 연민의 감정이 생긴 것이다. 거기에 구씨(손석구)의 미스테리한 매력까지. 


 또 다른 부류는 작가가 박해영인데 뭔가 있겠지 하고, 지루한 구간으로 버틴 것이다. 예를 들면, 나. 박해영 작가가 선수인데, 일부러 이렇게 썼을 때에는 남다른 전략과 전술이 있었을 거라 생각하는 것이다. 박해영 작가는 처음에는 시청률을 포기하더라도 삼남매와 구씨를 확실하게 각인시키겠다는 전략을 가지고, 뚝심있게 1부를 밀어부친 것이다. 


영웅서사 구조로 분석을 하면, 


(이것은 전적으로 내 개인적인 취향에 따른 분석이다. 당신이 다르게 분석했다고 해도 그것은 틀린 것이 아님을 알기 바란다. 자기만의 분석, 그리고 스타일이 있어야 남들과 변별되는 작품을 쓸 수 있는 것이니까). 


<나의 해방일지>의 1회는 보통세상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대단한 승부수가 아닐 수 없다. 보통 미니 시리즈에서 보통세상은 1회의 3분의 1이나 4분의 1 지점에서 끝나는데 말이다. 1회에서 삼남매와 구씨, 삼남매의 엄마 아빠, 그리고 삼남매의 직장 동료들이 나름의 캐릭터를 가지고 모두 소개가 된다. 다들 현실적인 문제가 있고, 다들 사랑 문제를 가지고 있다. 


1회가 거의 마무리될 무렵,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삶을 살고 있는 미정에게 충격적인 사건(그녀의 입장에서)이 일어난다. 선배에게 대출을 받아 돈을 빌려 주었는데, 돈을 갚지 않아 연체가 되었고, 독촉장이 집으로 날아온다는 것. 사고뭉치인 언니와 오빠에 비해 엄청나게 조신한 미정이, 한 순간에 부모님에게 찍힐 위기에 처한 것이다. 


집에 와서도 마음이 편치 않은 미정... 뾰족한 방법이 없다. 


저녁에 가족과 동네 친구들과 술을 마시는 자리에서 언니 기정이 '아무나 사랑하겠다'고 선언하고, 미정에게도 아무나 사랑하라고 조언(?)한다. '아무나?'하고 어이없어하는 미정. 그때 저만치에서 구씨가 술을 사들고 지나간다. 그때 오빠가 저기 아무나 지나간다고 농담한다. 


미정은 미소를 지으며, 지나가는 구씨를 돌아본 다. 여기가 모험의 소명인 것이다. 여기서 미정은 두 가지 소명을 받는다. 하나는 구씨에게 우편물을 대신 받아 달라고 부탁하는 것, 또 다른 하나는 '아무나'인 구씨와 사랑하게 되는 것. 


여기서 정신적 스승은 바로 언니와 오빠이다. 언니가 술김에 농담인듯 진담인듯 그녀에게 '아무나' 사귀라고 했고, 오빠가 구씨를 보며 '저기 아무나 지나간다'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소짓던 미정의 표정이 어두워지는 것으로 소명은 거부 된다. 집에서 허드렛 일을 하는 남자, 구씨라는 성으로만 불리는 사내. 그런 그에게 말을 붙여본 적도 없는데... 여기서 시청자는 미정의 표정에서 그녀의 마음에 공감을 하게 된다. 


다음 날, 마을 버스를 기다리던 미정은 마을 버스를 그냥 보내고, 구씨의 집으로 간다. 구씨에게 부탁하는 것 외엔 방법이 없었으니까. 그리고 집을 나서는 구씨에게 처음으로 우편물을 받아달라는 말을 건네며, 첫관문을 통과한다. 


보통은 이렇게 첫관문을 통과하면 스토리가 팍팍 진행되어야 한다. 구씨가 우편물을 받아놓는 미션을 성공한 것을 계기로 둘은 급속히 친해져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구씨의 캐릭터를 망가 뜨리는 일이다. 때문에 우편물을 받아서 건네주는 장면에서 구씨는 우편물에 대한 관심을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미정이 주저리주저리 사연을 늘어놓는다. 미정이는 어쩌면 비밀이 새어나갈 것 같지 않은 구씨에게 관심과 위로를 받고 싶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구씨는 그냥 생깔 뿐. 


다시 일상 세계. 


미정은 무료하고 무관심한 일상을 다시 살아가고 있다. 이제는 목표(꿈)이 조금은 분명해졌다. 구씨와의 사랑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  모험에의 소명은 다시금 구씨에게 말을 걸어야 한다는 것. 하지만 구씨의 무관심과 미정의 소극성이 소명을 거부하게 만든다. 그러나 직장 동료의 은근한 따돌림과 돈을 빌려간 선배의 연락 없음 등등으로 심리적 압박을 받게 되고, 결정적으로 구씨가 일없이 노는 날 술 처먹고 부상을 당하자 마음이 바뀐다. 이 구씨의 부상이 미정에게 진정한 의미의 첫관문을 통과하게 만드는 정신적 스승의 역할을 한다. 구씨를 가만 놔두면, 일이 없는 겨울에 술로 망가져 죽을 것 같은 두려움 말이다. 


그런데 과연 구씨는 미정이 사랑해야 할 정도로 가치가 있는 인물인가? 캐스팅된 배우가 손석구이니 그럴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겠지만, 시청자는 그가 왜 가치가 있는 인물인지 알고 싶어한다.

이에 박해영 작가는 손석구에게 어떤 사연이 있다는 것을 은근슬쩍 보여준다. 그가 술을 마실 때 소주 잔이 세 개 놓여 있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자신의 잔 외에 나머지 두 개의 잔은 무엇일까? 그것을 시청자가 알게 될 때 구씨는 사랑의 대상으로 자격을 갖추게 될 것이 분명하다. 박작가, 이런 선수 같으니라구!


미정은 퇴근하면서 구씨의 집을 찾아가 평상에서 술을 마시는 구씨에게 말한다. 


"날 추앙해요!"


이것이 그들 사이에 진정한 첫관문 돌파인 것이다.  

근데 미정의 이 과감한 시도는 실패한 것처럼 보인다. 구씨가 화를 내면서 꺼지라고 했기 때문. 


이후에 그 둘 사이는 다시 뜨뜻미지근하게 흘러가는 것처럼 보이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사소해 보이지만 엄청한 감정의 스펙타클을 보여준다. 


구씨의 단호한 거부로 인한 쪽팔림 때문에 퇴근 후 집에 가기를 주저하던 미정이 홀로 밤길을 걸어오다가 불량배 두 명과 맞닥 뜨린다. 두려움에 떨면서 한 걸음 한 걸음 옮기고, 그런 미정에게 불량배들이 다가오려는 찰라, 뒤에서 소주병 부딪히는 소리를 내며 구씨가 다가온다. 그 소리는 마치 구원의 종소리 같다. 그런 구씨의 등장으로 불량배는 나쁜 마음을 접고, 미정이는 무사히 위험 구간을 지난다. 하지만 구씨는 여전히 시크하게 술병 봉지를 들고 가버릴 뿐이다. 


나는 이전에 구씨가 소주를 사들고 오는 씬들을 다 찾아봤다. 그 전에는 단 한 번도 구씨가 술을 사오면서 술병 부딪히는 소리를 낸 적이 없었다. 


아! 박해영!!! 리스펙!!!!


박해영 작가를 믿고 1회에서 하차하지 않은 보람이 있었다. 


이래서 내가 당신은 박해영처럼 써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이다. 정히 박해영처럼 쓰고 싶다면, 일단 상업적인 작품으로 데뷔를 하고, 몇 편의 성공작을 내서 배우와 채널과 시청자들에게 신뢰를 얻은 다음에 하기 바란다. 그런다고 박해영처럼 쓴다는 보장은 없겠지만. 


(혹시, 이쯤에서 나의 분석을 추앙하고 싶다면, 바로 아래로 내려가서 '좋아요'를 지긋이 눌러주기 바란다). 

포스터


  

휘트니 휴스턴과 케빈 코스트너의 <보디가드>말고, 영드 <보디가드> 얘기 좀 해보자.  


2018년에 제작된 6부작 영드 <보디가드>는 영웅서사로 분석하는 재미가 있는 작품이다. 


주인공인 런던 경찰청의 버드 경사는 과거 아프칸에 파병되었다가 그곳에서 동료들의 죽음을 목격하고, 자신은 큰 부상을 입은 경험을 가지고 있다. 또한 그 때의 파병으로 인해 현재 트라우마를 겪고 있고, 아내와의 사이도 원만치 않다. 아내는 끊임없이 이혼을 요구하고, 심지어 바람까지 피우는 데도 그는 이혼을 하지 않는다. 그는 이 모든 책임을 자신을 전쟁터로 내몬 정치인들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주인공이 속한 보통 세상이다. 


프롤로그에 주인공은 우연히 폭탄 테러범을 목격하고, 인명 피해 하나 없이 폭탄 테러범를 체포하는 공을 세운다. 이에 경찰청에서 그의 상사(정신적 스승)는 그를 승진시킴과 동시에 내무부 장관의 경호를 맡긴다. 모험의 소명이다. 


주인공 버드 경사는 소명의 거부를 해야 하는데, 그는 군출신 경찰로서 거부를 할 수 없는 캐릭터이다. 그래서 그는 말로는 소명을 받아 들이면서, 표정만으로 거부를 한다. 여기서 시청자들은 궁금증을 가진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내무부 장관을 인터넷에서 검색을 한다. 


드러나는 사실, 내무부 장관 줄리아는 바로 주인공 버드를 아프칸으로 파명 보낸 정치인이 아닌가!


여기서 시청자들은 명령을 받아 들였지만, 표정으로 한 소명의 거부를 이해하게 된다. 이어 버드는 참군인 답게 방탄 조끼를 입고, 경호용 무기를 받은 뒤 내무부 장관의 경호라는 첫 관문을 통과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적과의 동침을 하게 되는데...




당분간 영웅서사 도입부 5단계로 하는 작품 분석은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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