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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y Nagrom Nov 25. 2022

영포자가 미국에서 살아남기 ②

미국에 처음 갔을 때 정말로 막막했다.

나는 영어에 대한 부담감이 항상 있었다. 이곳에서 다 밝히기는 어렵지만,

미국에서 체류할 수 있는 환경이 나에게는 주어져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이 듣기에는 이것이 "왜? 좋은 거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것이 나에게는 부담감이자 엄청난 스트레스였다.

영어 시간에 문법을 이해하기 어려웠고, 선생님께서 설명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듣기만 했다.

알아듣지도 못하고 이해하지도 못하니 수업을 들으면 들을수록 점점 더 질렸다.

계속 반복되는 지루함에 빠지다 보니 결국에는 수업시간에 엎드려 잠을 청하면서 수업 듣길 포기했다.


생각해보면 초등학교 시절부터 방학이면 영어캠프라는 캠프는 다 보내졌었다.

내 첫 영어캠프의 기억은 9박 10일 일정의 충주대학교에서 지냈다.

어린 나이에 가족과 떨어져서 모르는 사람들과 긴 기간을 지내야 한다는 것이 너무나도 어려웠다.

며칠이 지나 가족과 통화를 하며 참아왔던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이후에 몇 번 더 영어캠프에 보내지고서는 점점 익숙해져 갔다.


참 아이러니하다 영어도 잘 모르는데 계속 영어캠프를 갔던 것이..

내가 계속 영어캠프에 가니까 가족들은 내가 영어를 당연히 잘한다고 믿었고,

영어를 잘 배웠겠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기억에 남은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다시 2018년 미국에 처음 갔던 그 장면들을 떠올려보면 이런 기억들이 있다.

나는 영어를 진짜 못하고, 여기서 처음부터 살아남으려면 내가 직접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아무 말이라도 하면서 부딪혀야 된다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스타벅스를 선택했다.


스타벅스를 선택했다는 게 무슨 말이지? 말 그대로 나는 커피를 좋아하니까 커피를 사러 스타벅스를 갔다.

구글맵으로 집과 가장 가까운 스타벅스는 편도로 대략 1.6마일 정도 됐다. 왕복은 약 3.2마일로 KM로 환산하면 약 5km가 넘는 거리였다. 엄청나게 따가운 햇볕을 뚫고 스타벅스를 거의 맨날 걸어서 왕복했다. 엄청난 햇볕을 뚫고 굳이 스타벅스를 찾아간 이유는 단 한 가지다. 내가 아무리 영어를 못해도 그곳에서 일하는 직원분들은 내가 욕을 하거나 엄청 무례한 행위를 하지 않는 이상 내 말을 끝까지 들어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글에는 아메리카노를 적었으나 바닐라라떼도 즐겨 먹었다.

이것은 실로 성공적이었다. 그들은 항상 내가 정말 이상하게 말하며 주문했지만 그들은 찰떡 같이 내 주문을 듣고 나를 친절히 응대해줬다. 인터넷에 식당에서 주문하는 법을 검색하면 나왔겠지만 차마 그것들은 생각하지 못하고 내 주장을 직원들에게 했다. 그때 주문했던 말로는 "Hello, I want to an iced Americano."라고 주문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굉장히 웃기고 한편으로는 수치스럽다.... 그렇게 주문하고 그들이 계산을 마치기 전에 내 이름을 물어보고 레이블에 내 이름과 내 주문 내용을 뽑아서 내가 받을 아이스컵에 그것을 붙인다. 내가 그들에게 가장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던 시간이었다! Nagrom! 이런 식으로 내 이름을 말했다.

사진 속 좌측 상단이 오렌지 치킨이다.

내가 주문한 음료가 나올 때면 그들은 큰 소리로 내 이름과 음료를 불러줬다. "Order for Nagrom! Iced Americano!" 가끔은 주문한 음료가 나오면 그것을 들고 같은 플라자 안에 있는 Panda Express라는 American Chinese를 먹었다. 미국에 잠깐 들릴 때면 자주 먹었다.


스타벅스와 여기 또한 다를 것이 없었다. 이곳에서도 역시 내가 좋아하는 메뉴인 오렌지 치킨을 "I want to Oragne Chicken!"과 같이 말했다... 뭐 그래도 최소한 내가 원하는 주장은 말했으니 성공한 것 아닌가 싶긴 하다. 이렇게 주문을 마치고 어느 날은 그곳에서 먹고 돌아가거나 아니면 그것을 들고 다시 30여분 정도를 걸어서 돌아가서 음식을 먹었다.


이렇게 엉성한 영어로 나의 미국 생활이 본격적으로 시작됐고 한동안 계속 이런 식으로 보잘것없는 내 영어 실력을 연습하고 다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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