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내내 Oct 27. 2023

프로급식러의 급식 보고서

나만의 급식 지표 : 탕수육

둘째 비야를 낳고 나서 1년 동안은 강남구 중심으로 대강만 전문으로 했던 시절이 있었다. 덕분에 강남구 영어유치원, 놀이학교, 국공립 어린이집 등 여러 기관의 급식을 맛볼 수 있었다.


급식이 맛있나 살펴보려면 탕수육을 먹어보면 알 수 있다. 맛있는 유치원은 탕수육 하얗고 반들반들하고 쫀득한, 흡사 찹쌀 탕수육 같은 빈틈없이 쫀쫀한 튀김옷을 입었다. 튀김옷 안에 돼지고기도 하얗고 통통하며 야들야들하다. 소스 없이 탕수육 튀김만 씹어도 육즙이 챠르륵 나온다.  소스는 투명색의 새콤달콤한 텍스처에 알록달록한 후르츠칵테일이 풍성하게 들어가 있다. 뽀얀 노란색 탕수육 위에 후르츠칵테일이 듬뿍 들어간 소스가 올라가 있으면 이 유치원 급식은 먹기도 전에 알 수 있다.

여기 먹는 거에 진심인 곳이구나!


예전에 청담동 어느 원에서 탕수육이 나왔다. 세상에, 탕수육이 아니라 신발을 튀겼나… 튀김 안에 고기는 씨꺼먼 색이고 비린내가 난다. (생선이야 뭐야?) 소스 속 건더기는 어디 가고 물풀 같은 투명하고 미끌미끌한 소스만 가득하다. 탕수육만 봐도 입맛이 뚝뚝 떨어진다. 하지만 다음 수업을 힘내서 하려면 먹어야 한다.


국물에 진심인 유치원의 흔한 사골 끓이는 장면. 이틀을 내리 고아낸다.

국밥의 민족을 키운다는 사명감에 국물에 진심인 유치원도 있다. 이런 곳은 사골은 끓이는 과정을 봐야 한다. 위에 언급한 청담동 어디 매 급식실은 사회면에서 볼듯한 포장지 사골 가루를 넣고 사골을 끓였다. 이런 곳은 정말 뽀얀 ‘국물‘만 있는 사골국이 나온다. 대치동 어디 유치원에서는 이틀 동안 사골을 내리 고아낸다. 끓이는 동안 기름과 거품을 걷어낸다. 이 사골국에는 입에서 살살 녹을 고기가 보이고, 기름도 살짝 보여 “가루만” 넣고 끓인 사골국물보다는 불순물이 많은 느낌이다. 하지만 엄마들은 안다. 음식은 몇 가지 재료가 섞여 만드는 과정이라 불순물이 생기는 건 필연적이라는 걸. 거기에 쫑쫑쫑 썰은 파도 같이 제공하여, 어린이들은 개인별 취향대로 선택할 수 있다. 이러니 사골 나오는 날에는 “보약이다.” 하며 국물까지 싹싹 먹어야한다. 여긴 급식비가 많이 나와서 그런지, 교직원들도 급식비를 내고 점심을 먹는다.


급식 중의 급식은 이사장님도 함께 드시는 급식이다. 서초 어딘가 유치원은 점심시간이면 무려 이사장, 이사, 원장, 원감 등 모두 모여 그 밥을 나눈다. 그러니 급식 수준을 짐작케 한다. 내가 어디에서 먹었던 스파게티보다 최고의 스파게티에 대해 함께 묵상해 보자. 스파게티에 가득했던 양파와 소고기. 거기에 모자라 함께 주는 빵. 이 빵 옆에는 그림자처럼 따뜻하고 걸쭉한 크림수프가 항상 곁들여 나왔다. 샐러드의 그날 오전에 신선 코너에서 사 오셨는지 채소는 아삭했고, 소스는 키위가 들어간 새콤이와 간장 베이스인 짭짤이 중 골라먹을 수 있었다. 나는 이 유치원에서 정년을 맞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양천구 어디 매에 갔었는데, 샐러드가 나왔었다. 내가 생각한 샐러드는 고기는 없어도, 최소한 싱싱한 채소가 있어야 했다. 하지만 내 급식판에 있던 건 다 말라비틀어져 먹기도 싫은 풀때기가 있었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급식판에 쩔떡 붙어있던 녹갈색의 양상추는 절대 먹고 싶지 않았다. 미끄덩하고 무맛인 소스는 도대체 어디서 구했나 싶다. 아무리 매 달 구청에서 식습관 교육을 하면 뭐 하나. 당장 급식 비주얼이 어른조차 먹고 싶지 않게 만드는데.


유치원이든 영유든 놀이학교등 세상 모든 어린이 기관들이 맛있는 급식을 제공하여 입이 짧은 아이든 대식가 아이든 행복한 점심시간이면 좋겠다. 개정 누리과정에서는 놀이를 강조하지만, 현실에서는 노는 시간이 적어지고 영어와 체육 같은 “수업”이 많아지는 학교로 변하는 유치원이다. 영유나 놀이학교는 더 빡빡한 수업 스케줄이 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는 급식이 더욱 맛있어야 한다. 우리의 학창 시절에 그랬듯 점심시간을 기다리고, 식단표에 맛있는 음식을 동그라미 치고 기대하던 그런 설렘을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느꼈으면 좋겠다. 오늘도 나는 맛있는 유치원 밥을 기대하며 출근한다. 어른이든 아이든, 우린 밥심으로 살아가니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