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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내내 Nov 01. 2023

아들, 넌 공부만 해

운동을 못해서 얼마나 다행인지


같은 반 친구는 툭-툭 묵직한 공소리를 내며 드리블을 하는데, 우리 아들은 똥꼬에 낀 팬티만 연실 빼내고 있다. '바지에서 손 빼!' 할 수도 없고, 결국 소리친다.

별이야! 공봐야지!!

첫째 별이가 5살부터 축구와 발레를 시작한 지 2년을 채웠다. 이사를 앞두고 있어 축구, 발레, 피아노 학원을 먼저 알아볼 정도로 적극적으로 “엄마주도"로 시킨 사교육이다.


2년 정도 꾸준히 시키니 옆에서 ‘운동시킬 거냐’부터 ‘잘하겠다’라는 등 다양한 이야기를 해준다. 특히 남자아이가 발레를 한다고 하면 “아이가 잘해요?”라고 물어보기도 한다. “잘”의 의미가 “good” 이라기 보단 “well”라는 의미로.


축구와 발레를 선택한 이유는 간단하다. 가장 큰 이유는 라이딩이 편한 곳이라 보냈다. 스트레칭으로 팔다리가 길어지는 건 덤이고. 돌이 막 지난 둘째를 데리고 갈 수 있는 학원 선택지가 몇 개 없었다.


발레와 축구는 결이 다르면서도 비슷한 점이 많다. (전문가가 아닌 순전히 엄마 입장에서 주관적인 시각으로 보자면) 두 종목 모두 명확한 규칙과 지시가 있다. 축구는 코치님이, 발레는 원장님이 지시한 미묘하게 다른 자세와 규칙에 따라 같은 동작을 반복한다. 당연하게도, 축구와 발레는 개인별 능력 (재능) 이 큰 영향을 끼친다. 똑같이 공 하나로 축구를 하는데도, 빈 공간을 찾아 미리 공을 받을 준비를 하는 손흥민같은 아이가 있다. 백조처럼 우아하게 버티면서 발레 동작을 하는 하는 아이가 있고, 자세를 따라가기 급한 아이가 있다.



똑같이 물에 떠 있는 새들 사이에도 눈에 띄는 새가 있지만, 그건 우리 아들은 아니다. (출처: 픽사베이)



우리 첫째는  축구든 발레든 따라가기 급급한 그룹이다. 발레는 E대학 박사 출신에 현 K 대학 무용학과 교수님이신 원장님에게 직강을 받고 있는데, 전공생들만 가르치시는 분이라 그러신지 미취학반 친구들에게는 “잘한다~잘한다~”라고 하신다. 엄마 눈에는 동물의 왕국에서 본, 막 태어나 걸으려고 비틀거리는 얼룩말처럼 보이는데 말이다. 옆에 같이 2년 동안 한 친구는 코어 힘도 생겼고 발목 힘도 생겨서, 우아한 폼이 살짝씩 나오는데, 우리 아들은 어째 아직도 저렇게 휘청거리나.


"축 개업" 집 앞에서 춤추는 풍선 인형처럼 흐느적거리면서 공을 쫓는 애가 내 아들이라니. 경기 중에 친구랑 부딪히면 툭하고 종이짝처럼 날아간다. 같은 반 친구공에서는 툭-툭 거리는 묵직한 공소리가 난다. 옆에서 우리 아들은 땀이 차서 인지 똥꼬에 낀 팬티만 연실 빼내고 있다. 땀 날 정도로 뛴 것도 아니면서. 수업 중에는 설렁-설렁- 산보인지 축구인지 모를 정도로 느긋하다가, 수업이 끝나고 비타민을 받으러 가는 줄에는 가장 먼저 가있다. 어쩔 때 보면 이러려고 보냈나 싶지만, 50분 고강도 운동에 기꺼이 참여하는 것에 의의를 둔다.


운동을 전공시킬 거냐 는 질문에 내 대답은 “엘리트 운동 시킬 깜냥이 안 돼 못 시킨다.”가 정답이다. 사실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어릴 적 선생님의 추천으로 도대표로 육상 선수생활을 하다가 재능의 장벽을 느끼고 공부로 도피했다. 남동생은 운동을 꾸준히 하다가 현재 체육협회에서 일하고 있다. 그래서 그 길이 얼마나 힘들고, 외롭고, 가성비가 떨어지는 일인지 잘 알고 있다. 잘해서 코치님께 권유를 받을 일도, 스스로 운동의 길을 간다고 할 일이 없다. 첫째는 평범하게 학교 공부만 하면 된다니.

아-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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