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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내내 Nov 03. 2023

부자가 될 상인가

부모 직업 염탐기

나는 돈이 좋다. 돈이 있는데 행복하지 않으면 돈이 부족한 건 아닐까?라는 말도 있듯이, 어렸을 때부터 돈이 없는 것이 한스러웠다. 돈으로 뭘 하고 싶냐고 물으면, 걱정 없이 1) 여기저기 여행 다니고 2) 원하는 나라에 가서 원하는 공부를 하고 싶다. 미국에서 공부를 오랫동안 했지만, 유학생활의 절반은 돈에 대한 걱정이었다. 또 다른 절반은 공부였다. 한국에 오자마자 운 좋게 강남 어느 기관에서 근무를 할 기회를 얻었다. 일하는 동안 학부모 유형을 분석했는데, 돈이 많은 이유를 쫓아가다 보면 나도 돈을 많이 벌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케이스 1. 연예인 : 이름만 대면 대부분이 알 수 있는 1 티어 연예인들. 배우 출신 연예인들은 목소리 울림부터 다르구나! 를 알게 해 줬다. 물론 그들도 평범하게 자식 때문에 울고 웃는 부모였다.


케이스 2. 검은돈을 만지는 누구 : 학생 A가 고급 빌라의 어디를 가리키며 말한다. “저기는 00 삼촌이 살고요, 저기에는 00 삼촌이 살아요.”라고 한다. 어느 날에는 아빠를 만나러 일본에 간다고 말한다. 쓰잘 떼기 없는 상상력을 돌려본다. 출입국이 거부된 A의 아빠, 그리고 그의 수많은 삼촌… 혹시, 그 학부모는 검은돈을 만지는 건 아닐까?


케이스 3. 올드머니 : 구기동 할머니라고 부르는 걸 보니 종로구 단독 주택에 할머니가 사시나 보다. K는 부모님과 타워팰리스에 살고 있다. 겨울에는 일본에 스키를 타러 가고, 여름에는 미국에 가서 한 달 살기를 하고 온다. 부모님의 직업이 정확히는 모르겠다. 하지만, 명품 트렁크쇼에는 꾸준히 참석하는 편. 운영하는 의류 브랜드나 가방브랜드가 있긴 한데, 나 같은 무지렁이는 처음 들어보는 브랜드이다. 그들끼리 품앗이하듯이 인스타에 홍보도해 주고 사주고 협찬도 해준다.


케이스 4. 스타트업 창업자 : 이젠 대기업이 된 A그룹의 창업멤버도 있었다. 이 분들은 정말 바쁘고 똑똑하고 자기 관리도 열심히 하신다. 옷은 저커버그처럼 단벌 신사 스타일. 자식에 대한 스탠다드가 높아서 상담할 때 긴장을 많이 했었다.


케이스 5. 전문직 부부 : 전문직인데 그냥 전문직이 아니고, 강남역이나 압구정역에 엄청 크게 홍보하는 기업을 운영하는 수준의 전문직인지 기업인인지 모를 학부모. 아니면 건물주 집안에 장가 간 의사 학부모. 압구정 구축에 신혼집을 차리고, 옆 라인에는 친정이 산다. 압구정이 고부갈등이나 장서갈등이 제일 적다 카더라.


케이스 6. 전업주부, 하지만 애기 아빠는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실장님이라는 분과 항상 함께 다녔다. 실장님의 역할은 명품백 매장 매니저님들이랑 친하게 지내서 00백을 받아오는 그런 일을 하신다고 카더라. 모기업의 회장의 내연녀라는 소문.


케이스 7. 부동산 부자. 할아버지는 평범한 공무원이었는데, 할머니가 재테크를 잘하셨다나. 강남이며 전국 곳곳에 건물이 있다더라. *코인붐이 불기 전이여서 그런가, 코인 부자는 없더라


**** 위의 내용은 각색된 내용입니다. ****



이 케이스 중에 내가 도전해 볼 만한 건 뭐가 있을까?


연예인은 끼가 없고, 검은돈을 만지기엔 너무 소시민이다. 올드머니는 우리 부모님이 올드 (old)한데 푸어(poor)하시다. 전문직은 전문직인데 돈을 적게 버는 전문직이고 (유아교육전공), 누군가의 내연녀가 되기엔 내 애가 둘이요, 몸무게는 67키로다.



결국 창업인가 싶어서 고민해 본다. 창업은 뭘로 하지? 하며 사업아이템을 생각한다. 창업을 하자니 ”아는 걸 해야지“ 하면서 내가 가진 경력을 쭈욱 적어보니 너무 하찮고 보잘것없다. 유아 관련 무언가를 하자니 요즘 같은 저출산 시대에?라는 고민이 들고, 내 거 하나 차려? 하니 월세가 무섭다. 이래서 내가 아직도 엘리베이터 없는 빌라에 살고 있나 보다.


내가 근로소득 세계의 노동자라니. (출처 : 중앙일보)


우리 부모님은 강원도 시골에서 장사를 하셨던 분이고, 친인척들 모두 시골에 같이 살고 있다. 그들에게는 성실한 노동이 최고의 도덕이었고 가치였다. 그러니 자본주의 끝판왕인 미국에서 공부를 하면서도 경제학이나 회계학을 공부할 것이지, 적성에 맞다는 이유로 유아교육학을 선택했다. 쥐꼬리 만한 월급을 생각 못 했고, 여전히 근로소득의 세계에서 살고 있었다.



반면, 시어머님은 홀로 삼 남매를 키우시면서 여기저기 부동산 투자를 하셨다. 세를 끼고 매매해서, 그 전세를 월세로 바꾸기를 40년 동안 하셨다. 암으로 돌아가시고 나서도 해당 건물에서 나오는 월세로 삼 남매를 도와줬다. 건물을 팔면 생기는 돈은 삼남매의 든든한 뒷배가 되었다. 눈으로 보니 더 체감되었다.

나는 죽어도 부동산은 남는구나.


그런데 부동산을 어디로 하지? 매일 책도 수집하고 부동산 카페며 유튜브 강의를 들락날락거리는데 실행을 못한다. 역시 피는 속일 수 없는 걸까? 나는 여전히 근로 소득만 생각한다. 내가 일해서 돈을 벌기 위해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출근하고 해야 할 일을 생각하면서.

부동산도 시드머니부터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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