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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내내 Nov 16. 2023

나도 발표회 준비가 싫다.

그래도 선생인데 해야지


옛날 옛적 초등학교 시절, 클론이 부른 쿵따리 샤바라에 맞춘 곤봉 무대에서 박자를 유난히 못 맞추는 사람이 바로 나였다. 몸치, 박치, 음치.



유아교육학에선 이론도 가득 배우지만, 결국 만능엔터테이너를 양성하는 과정이다. 기본적인 체육, 문학적 접근법을 위한 구연동화, 수학&과학을 위한 프로젝트수업, 그리고 노래, 노래, 또 노래하는 아이돌 연습생 같은 삶을 살았다. 유아 문학 시간에 (미국) 전통 노래 30곡을 외워서 친구들 20명 앞에서 시험을 본 날은 교생 실습 첫 날 보다 더 떨렸다.


다행히 미국에선 엄청나게 화려한 환경판 꾸미기라든가 피아노 연주는 안 해도 됐다. 이동 시간에 부를 노래는 문학적 요소가 들어간 동시로 대체했고, 아침엔 책 읽기와 시디음악을 몸으로 표현하기로 하루를 시작했다. 오히려 눈이 펑펑 오는 겨울에 놀이터 가는 게 제일 힘들었다. (이건 다른 날에 주제로 잡을 예정이다.)


현재 근무하는 일반 유치원에서는 노래를 정말 많이 가르친다. 우선, EFL (English as Foreign Language) 환경에 맞춰있기 때문에 교재 자체에 노래가 많다. 어린이들도 배운 노래를 집에서 흥얼거려서 부모 만족도도 높아진다. 하지만, 그걸 가르쳐야 하는 사람이 내가 될 줄을 몰랐지. 내가 이 시대의 댄스가수라는 마음으로 아이들과 앉아 있는 담임과 부담임 앞에서 온갖 노래와 율동을 해야 한다.


그래서 제 점수는요. (출처: America’s Got Talent season 18. from cincinnati.com)


코로나 시대엔 못했던 연말 공연에 대한 복수라도 하는 것처럼 요즘 원에서는 발표회 준비가 한창이다. 인스타와 유튜브가 흔해져서 엄마들의 기대치 역시 높아졌기 때문에 노래를 선정할 때부터 난관이었다. 발표회 플레이 리스트 화면에 깨알같이 작은 스크롤을 의미 없이 오르락내리락해본다. 어린이 동요같이 밝은 노래면서 엄마들의 눈물샘을 자극할 수 감동 있는 노래, 릴스에서 나올법한 트렌디 하면서 아빠의 향수를 자극할 수 있는 노래는 어디서 찾나. 역시 무난한 캐럴을 하려고 하니, 캐럴은 이미 다른 선생님이 핸드벨로 연주하신단다.

아차, 늦었다.

원장님은 교재를 언급하시며 아이들이 대화를 하면서 중간에 율동과 노래를 좀 추가하면 어떻냐고 지시 같은 제안을 하신다. 대사, 노래, 율동이 들어간 거, 그거 뮤지컬 아닌가요.


사진이 아닌 동영상의 세상으로 변했다. 춤선이 예쁘거나 동작이 깔끔하게 떨어져야, 동영상에 깔끔하고 예쁘게 찍힌다. 눈앞에 앉아있는 아이들을 보니 무대에 올려야 하는 30명 중에 남자애들이 24명이다. 극악의 난이도다. 가장 기본자세인 "배꼽 손"자세를 하는데 제 각각이다. 어떤 동작을 해도 흐느적 거린다. 그러면서도 뒤에서 누가 쫓아오는 것처럼 율동을 하고선 이내 나를 보며 쓰윽 웃는다. "저 잘하죠?"라는 눈빛을 보내며.


흑인 교회의 가스펠 스타일처럼 동선을 최대한 생략하고 율동은 상체만 쓰는 걸로 한다. 노래는 밝은 노래로 각 잡힌 멋진 춤보단 귀여운 걸로 바꾼다. 영어 대사는 최대한 헷갈리지 않게 등장인물을 줄인다. 그렇게 뮤지컬 한 편을 창작했다.


30명이 하니 예뻤던 춤이 자꾸 지저분해 보인다. 쳐내고 쳐낸 대사와 율동인데도 어려워한다. 결국 아이들이랑 "몸으로 표현하기" 과정을 거쳐 만든 율동으로 교체한다. 그렇게 아이들과 함께 창작한 뮤지컬 한 편이 나왔다. 무대까지 이제 한 달 정도 남았다.



미취학 아동을 둔 학부모이자 10년 차 강사인 나도 대관까지 해서 연말 공연을 한다는 말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아직도 발표회를 하는 유치원이 있어?


발표회. 인터넷에서는 그렇게까지 연습하는 아이들이 불쌍하다는 등 발표회를 아동학대라고 보는 시각이 있다. 무대에 올라가면 율동이 틀리는 아이, 가만히 못 서있는 아이, 아예 참여를 안 하는 아이를 봐야 하는 부모님도 반드시 생긴다. 도대체 모두가 고통받는 연말공연을 하는 이유는 뭘까? 발표회의 목적은 무대에 서보는 경험을 하기 위해서이다. 공교육 시스템에 들어간 이후에는 무대에 올라갈 수 있는 기회가 우리 아이에게 몇 번이나 주어질까?


아직도 노는게 제일 좋은 7살 교실 풍경


그릿과 작은 성취감은 또 다른 이유다. 노래와 율동 연습을 하면 할수록 잘하게 된다는 건 아이들이 스스로 안다. 처음에는 노래의 한 소 절도 못 따라 했는데, 같은 동작을 반복해서 외우고 대사까지 말하며 무대에 선다는 걸 온몸으로 체득한다. 고난스러운 과정을 겪으면 "결국 해낸다"라는 자신감이 생긴다. 누리과정이 놀이 중심으로 바뀌고 교사가 직접 주도하는 수업이 아닌 아이 주도 놀이로 변했다. 그중에 발표회는 몇 안 되는 교사의 직접 지도가 들어간 수업이다.


이렇게 좋게 생각하려고 그래도, 박치와 몸치인 나도 발표회 준비가 어렵다. 그래도 선생이니까 해야 한다. 오늘도 애들 앞에서 열심히 노래에 맞춰 궁둥이를 흔들고 있다. 이 시대의 치어 리더 마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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