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내내 Dec 15. 2023

남들과는 다른 아이들

나를 성장하게 하는 선생님팀 친구들


유치원, 영유, 국제학교등 만 3-5세에게 영어를 가르친 지 경력 10년 차. 새 학년, 첫 수업 40분을 하면 남들과 '다른'친구들을 찾을 수 있다. 현재는 흔히 말하는 '일반'유치원에서 수업을 하는데, 일반적이지 않은 아이들의 이름을 체크하고 담임선생님께 물어본다. 


느린 학습자 (경계성지능장애), 자폐 스펙트럼, (각성이든 조용한) ADHD 등 부모가 인지하고 조기개입을 하고 있는지와 학부모의 기대치는 어느 정도인지는 레슨플랜 중 'differentiated' 부분을 짜는데 필수적이다. 일하는 곳이 대한민국 교육 1번지 대치동이지만 조금 '다른' 친구들의 비율은 많으면 많았지 적지 않다. (혹여나 싶어 첨부. 영유에서 수업을 할 때도 '다른'친구들은 항상 있었으니 일반유치원에 더 많다고 오해 마시길.)


보건복지부 국립 재활원에서 말하는 특수아동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자신의 잠재력을 개발하기 위해서 특수교육 및 그와 관련된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아동을 말합니다(Hanllahan & Kauffman, 1994).


시각장애인이나 청각장애인은 특수교육이 필요하다고 쉽게 인지한다. 문제는 경미하게 '다른' 친구들이다. 느린 학습자, 자폐스펙트럼, 조용한 ADHD는 부모가 인정하기 힘들다. 강남. 그것도 대치동이라는 특성상, '내 아이가 설마?'라는 의구심을 품는 걸까. 대부분 '우리 아이가 좀 느려서요'라는 말로 조기개입을 거부한다. 



예전에 가르치던 7살 반에 자스(자페스펙트럼)로 의심되는 S가 있었다. S는 눈 마주침 없음, 무발화, 행동패턴화, 사회성 없음, 각성 등을 바탕으로 고기능 자폐를 의심했고, 부모에게 전문가에게 상담을 받아보란 제안을 했다. S의 부모는 '우리 애는 조금 느려요'라는 입장에서 보통의 공교육을 원하셨다. 이랬던 S가 만 5세, 유치원 겨울방학을 앞두고 갑자기 수업시간에 워크북을 하는데 내 팔을 꾹 꾹 누르며 말한다.

으으응. 모… 몰라.


처음엔 잘못 들은 줄 알았다. S의 만 3-4세를 지켜본 나는 S는 평생 무발화일 거라고 생각했다. 얼마나 오만한 생각이었을까. S의 갑자기 터진 말문은 "싫어요"와 "몰라요"에서 멈췄지만, 지금은 더 많은 발화가 이루어졌길 기도한다.



나는 유아교육을 전공한 '보통'의 특강 강사다. 내가 들었던 장애아동 관련 수업은 Autism (자폐스펙트럼) 2학점, Children with Speical Needs 3학점 (실습포함)이 전부였다. 실습은 경미한 장애를 가진 친구들이 모여있는 (사립) 특수학교에서 (학생들과 커뮤니케이션을 안 하는 조건으로) 관찰일지로 대체했다. 실습을 했던 곳은 보조교사가 한 명씩 붙어있었고, (안에서 바깥을 볼 수 없는) 미러룸 바깥에서 의사나 교수님들이 개별 아동의 발달과정을 체크하고 있었다. 이 아이들의 목표는 ‘보통’의 교육기관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현재 내가 가르쳐야 하는 교실은 현실이다. 40분 동안 가르쳐야 하는 아이들이 16명이고, 매달 끝내야 하는 진도와 교재가 있으며, 발표회, 학부모 참여수업등 자잘한 이벤트가 있다. 일반적인 아이들의 교육을 받을 권리와 장애아동의 교육받을 권리의 기대치와 능력치가 다르다. 그리고, 그 사이를 메꾸는 것은 순전히 교사인 내 역량에 달렸다. 보건복지부 국립 재활원에서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장애아동을 바라보는 교육적 시각은 결함보다는 능력을 고려하는 교육이 되어야 합니다(장애로 인한 차이점에 초점을 둘 것이 아니라 일반 아동과의 유사한 발달 및 행동 특성들을 지니고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일반 아동과 유사한 발달 및 행동 특성을 가졌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지만, 아무래도 '다름'이 존재하다 보니 교사입장에서는 손길이 한번 더 가야 한다. 덕분에 교실밖에서 항상 논문을 찾아보게 하는 친구들. 남들과 다른 이 친구들은 수업시간엔 일명 "선생님팀"이 된다.


선생님팀은 혜택이 많다. 평소에 노래하고 춤추고 게임을 할 때는 보통의 아이들과 같은 대우를 받는다. 하지만, '기능'적인 수업을 할 때 특별 혜택이 있다. 워크북을 할 때 선생님 옆에 앉을 수 있는 특혜, 손은 안 들었지만 먼저 앞에서 나가서 말해야 하는 특혜, 그로 인해 스티커를 먼저 받을 특혜 등이 있다. 이 특혜 배경에는 ‘그깟 영어가 뭐라고 아이들의 자존감을 낮게 만들면 안 된다’라는 나름의 나의 교육 철학이 있다. (혹여나 해서 첨부. 다른 보통의 친구들도 스티커를 다 주고 한 명씩 한 명씩 귀하게 가르치고 있으니 오해 마시길.)



최근 국내외 미술계는 발달장애 예술가에 대한 관심이 크다. 아르브뤼미술상 공모전을 개회한 국민일보는 위계를 둔 차별의 언어인 발달장애 대신, 다양성을 인정하는 차이의 관점인 '신경다양성'이라는 용어를 썼다. 지난 주말에 가족들과 함께 신경다양성 아동의 미술전에 다녀왔다.


유치원에선 선생님팀에 속해 손길이 한번 더 가야 했던 아이들이 미술전에서는 자신만의 고유한 색을 가진 엄연한 작가로 활동하다니. 자폐 스펙트럼 아동이 가진 고유한 행동 '패턴'은 작품 속에서도 확연하게 볼 수 있었다.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아이가 오히려 무궁한 잠재력을 지닌 작가님으로 보인다.

“내가 그린 오티즘“ 작품전. 자폐 스펙트럼 아동 특유의 패턴이 작품 속에서도 보인다.


오늘도 우리 선생님팀 친구들은 바쁘다. 말은 없지만 느릿한 손으로, 연필깍지를 끼워놓은 연필로, 내가 적어놓은 점선을 따라서 삐뚤빼뚤, 구깃 구깃 알파벳을 적는다. 얼마나 힘을 줬는지 손에는 땀이 흥건하다. 롤플레이 시간에는 앙상블로 불명확하지만 노래를 같이 불러본다. ‘탁탁탁’ 의자 위에서 엉덩이를 들썩이며 점프를 하는 아이에게 피젯스피너를 건네주니, 신나서 빙글빙글 돌리고 있다.


수업시간에는 어려워하는 선생님팀 친구들 속에는 어떤 잠재력이 숨겨져 있는지 궁금해진다. 작가가 될까. 음악가가 될까. 제조업 공장의 산업 일꾼이 될까. 선생님 팀, 한 명, 한 명이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받고 살아갈 수 있는 다양성이 존중받는 그런 사회가 되길 기도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딸기 가격이 왜 이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