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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내내 Dec 08. 2023

딸기 가격이 왜 이래?

과일 앞에 평등할 수 있게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쯤, 꼬부랑 할머니 (외증조할머니), 외할머니와 우리 가족 4명은 바닷가 앞 전형적인 ㅁ모양의 한옥에 함께 살았다. 마당에 작은 창고가 있었는데, 그 창고에는 겨울 내내 과일이 끊이지 않았다. 나무로 만든 사과 박스 안에는 주황색 대봉감이 초록색 솔 잎에 덮여있었고, 한편에는 노란색 귤 한 박스가 놓여있었다. 반으로 쪼개면 꿀이 곳곳에 보이던 사과도 구석에서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대문으로 들어와 창고에 들려, 구멍이 슝슝 뚫린 핑크색 바구니에 귤과 감을 담아 내 방으로 들어간다. 손을 씻자마자 뜨뜻하게 달구어진 바닥에 누워 이불을 덮고 겨울바람에 차가워진 귤과 감을 까먹으며 만화책을 보며 키득키득거렸던 추억은 내 마음속에 남아있는 겨울풍경이다.


어린아이를 키우고 있는 집은 겨울이라도 과일이 마를 날이 없다. 그런데 이 과일 가격이 이상하다. 사과 8개에 18,000원, 귤은 한 봉지에 22,000원, 딸기는 500그램 한 팩에 16,000원. 과일을 마음먹고 한 번 사려면 할머니 카드 찬스가 필요할 만큼 비싸졌다. 옛날에 우리 집은 먹을 게 없어 과일을 먹었던 것 같은데, 이젠 과자가 더 저렴해진 시대가 됐다. 



겨울은 마트에 딸기가 보일 때 시작된다. 진열된 딸기를 보며 '올 한 해가 갔구나'라며 생각하고 있는데, 카트에 앉아 있던 둘째가 딸기를 사달라고 조른다. 아이들은 딸기를 정말 좋아한다. 문자 그대로 입에서 살살 녹는 식감, 은은하지만 존재감 있는 딸기향은 어린아이들조차 딸기홀릭으로 만든다. (같은 계열의 라이벌로는 복숭아가 있다.)


분명히 도로 옆 봉고차에서 작은 갈색 대야에 딸기를 한가득 담아서 만원에 팔았던 것 같은데, 이젠 500그램 한 팩에 17900원이라니? 아직은 딸기철은 아닌가? 괜스레 소비기한이 임박해 할인을 하는 카트에 혹시나 딸기가 담겨 있나 찾아본다.

오? 한팩 남았네.


30퍼센트 할인된 가격! 오예!


2020년까지만 해도 마트에서 500그램 딸기는 만원 이하의 상품이었지만, 2021년부터는 딸기 한팩이 만원을 훌쩍 넘어간다. 2021년 1월에 나온 매일경제 기사에 따르면, 다습한 날씨와 한파등으로 딸기 값이 116%가 올랐다고 나와있다. 그 이후로 딸기 500그램 한팩의 가격은 만원이 넘는다. 농산물 유통 종합 정보 시스템 (농넷)에서 2022년과 2023년 12월의 딸기 가격을 비교했더니, 실제로 딸기가 금값이 됐다.

작년도 대비 딸기 가격 변화 (출처 - 농넷)


가장 흔하게 먹는 논산딸기 1킬로를 기준으로 16,150원 하던 도매가가 21,660원으로 40%의 가격이 올랐다. 증가한 이유는 흔히는 말하는 인건비와 유통비의 증가도 있겠고, 해외 수출로 인해 내수용 딸기의 가격이 높아졌을 수도 있다. 설날이 지나고, 딸기가 본격 출하하는 2월 중순쯤에는 좀 더 저렴하게 먹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현대 사회에서 ‘건강한’ 식단을 유지하는 건 비용이 든다. 건강한 식단은 칼로리만 채우기 급급한 음식으로 구성된 식단과 다르다. 건강한 식단은 비타민과 미네랄등 풍푸한 영양분이 밀도 있게 꽉 찬 음식을 먹는 것이다. 푸드체인 데이터 전문가인 Dr. Hannah Ritchie에 따르면, 건강한 식단을 유지하는 데는 칼로리만 따지는 식단과 비교하면 4배 정도 더 비싼 비용이 든다. 그러한 이유로 전 세계 30억 명은 건강한 식단을 유지할 수 없다고 한다. (더 자세한 설명은 다음 사이트에서 읽어 볼 수 있다. 링크 - https://ourworldindata.org/diet-affordability )


고도의 서울 중심화로 “도시”국가가 되어버린 한국 사회도 점점 채소와 과일가격이 과자 같은 가공식품보다 점점 비싸지고 있다. 경제적 격차에 따라 혹은 개인의 소비 가치관에 따라 건강한 식단에 대한 접근성과 소비력이 양분화하는 과정에 있다. 이 양분화의 갭을 메꾸려고,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는 더욱더 “제철”과일과 채소를 경험할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식단을 짜고 있다. 


분기별로 구청과 교육청, 보건소에서 감사를 통해 급식 식단을 조사하고, 튀김류나 가공식품이 많으면 줄이라고 적극 권고하고 있다. (그러한 이유로 내 사랑 돈가스나 탕수육 빈도수가 줄어들고 있는 슬픈 현실.) 이렇게라도 다양한 제철 채소와 과일에 노출시켜, 건강한 식습관 태도에 대한 격차를 교육기관 내에서 만큼은 줄여보고자 하는 것이다. 유치원 식단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가공식품이 없고) 채소나 과일 위주의 반찬이 많아서 '맛'이 없다고 하는 건, 유치원이 절대 식비를 아끼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에게 더 건강한 식단을 제공하려고 하는 것이다.


(출처 - 고기 앞에 모두 평등하다 제주 본점)


'고기 앞에 모두 평등하다.'란 말은 '과일 앞에 모두 평등하다.' 라는 말로 바꿔야하는 시대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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