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직업, 유치원
이런 것도 해준다고?
유치원 특강강사는 유치원의 이런저런 행사에 참여할 기회가 많다. 신입생 오티, 발표회, 운동회, 김장행사, 산타행사등 뭔가 굵직한 이벤트에는 참여해야 한다. 담임선생님들과 같이 일을 하며 경험해 본 생생체험, 이런 것도 해준다고 모먼트를 적어봤다.
*이 글의 목적은 우리 학부모님들이 유치원 선생님들의 노오력을 알리는 글입니다.
1. 흰쌀밥 준비하기
신생아 시절과는 달리, 유치원에 들어오는 만 3세부터는 심각한 알레르기 반응은 많이 사라진다. 알레르기가 '엄청' 심한 친구들을 지금까지 본 적이 없을 정도로, 대체적으로 괜찮은 편이다. 6살 2학기 말부터는 잔반이 거의 안 나올 정도로 잘 먹고, 7살은 으른처럼 많이 먹는다. 문제는 5살. 아직도 노는 게 뽀로로 친구들이라, 식욕은 그다지 없나 싶다. 하긴, 이제 태어난 지 만 3년이 조금 지났으니 당연한가 싶기도 하고.
그중 몇 명은 '흰밥'만 고집한다. 이 친구들은 촉감이 예민한지, 맛에 예민한지 모르겠다. 밥이 뭐에 섞이는 걸 싫어하는 순정파인데, 밥과 섞일 수 있는 건 김 정도이다. 볶음밥, 카레라이스, 짜장밥, 스파게티 등 내가 소위 말하는 '유치원 특식'이 나오면, 이 친구들은 비상용 김과 흰쌀밥을 함께 먹는다. 양반김과 흰쌀밥의 조화를 사랑하는 우리 아이들은 전생에 양반이었나 보다.
2. 비닐봉지 한 번씩 열어놓기
독립성을 강조하는 유치원. 아이 스스로 생활할 수 있기 위해선 알맞은 환경이 중요하다. 예를 들면, 등원하고 나서 필수로 해야 하는 가방정리는 1) 가방을 놓아둘 곳 2) 물통과 숟가락통이 들어갈 곳 그리고 3) 가방정리를 하고 난 다음 루틴이 정해져 있어야 아이들 스스로 가방정리를 편안하게 할 수 있다. 이렇게 독립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장치들이 유치원 여기저기 놓여있다.
발표회 날, 자신의 신발을 넣는 비닐봉지에 아이의 이름을 크게 적어놓았다. 하필이면, 새벽까지 눈이 와서 바닥이 질척거린다. 혹여나 하는 마음에 젖은 신발을 한번 더 넣을 수 있게 일회용 봉지를 준비하고, 비닐봉지를 한 번씩 열어 놓았다. 처음 쓰는 비닐봉지는 겨울철에 열기 힘들기 때문에, 유치원생이 비닐봉지를 스스로 열 수 있게 한 번은 열어 놓은 것이다. 100개의 비닐봉지를 열어놓으면서 느꼈다. 정말 세심하다, 세심해.
3. 손은 '이렇게' 모아서 올라가기
유치원 김장날. 아이들이 아끼는 엘사 팔토시와 앞치마에 고춧가루의 매운맛을 보여주는 날. 김치 양념이 묻을 수도 있다는 안내문이 두 번 세 번 나갔지만, 꼭 밝은 색 옷을 입고 오는 아이들이 있다. 혹여나 싶은 마음에 유치원 여벌옷으로 갈아입혔다. 어린이용 일회용 장갑을 끼우고 팔을 이만큼씩 걷었는데도, 몸에 김치 양념이 묻었다. 특히 남자친구들은 왜 머리도 짧으면서 왜 머리에 양념이 묻어있나.
장갑을 벗고 물티슈로 대충 쓱쓱 닦아주고, 교실 화장실에서 한번 더 비누칠을 해줄 예정이다. 이 친구들에게 손을 "요렇게" 해서 올라가라고 두 번, 세 번 이야기를 한다. 혹여나 김치 양념이 얼굴이나 다른 곳에 묻지 않게.
이렇게 하는데도, 행사하면 안 좋은 후기가 한두 개는 나오는게, 역시 100명의 부모님을 100% 만족시키기란 불가능하다. 유치원 담임 선생님들의 눈물 없이 못 보는 배려심 에피소드는 여기서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