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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내내 Dec 23. 2023

이런 것까지 해준다고?

극한직업, 유치원

이런 것도 해준다고?


유치원 특강강사는 유치원의 이런저런 행사에 참여할 기회가 많다. 신입생 오티, 발표회, 운동회, 김장행사, 산타행사등 뭔가 굵직한 이벤트에는 참여해야 한다. 담임선생님들과 같이 일을 하며 경험해 본 생생체험, 이런 것도 해준다고 모먼트를 적어봤다.


*이 글의 목적은 우리 학부모님들이 유치원 선생님들의 노오력을 알리는 글입니다.


1. 흰쌀밥 준비하기

신생아 시절과는 달리, 유치원에 들어오는 만 3세부터는 심각한 알레르기 반응은 많이 사라진다. 알레르기가 '엄청' 심한 친구들을 지금까지 본 적이 없을 정도로, 대체적으로 괜찮은 편이다. 6살 2학기 말부터는 잔반이 거의 안 나올 정도로 잘 먹고, 7살은 으른처럼 많이 먹는다. 문제는 5살. 아직도 노는 게 뽀로로 친구들이라, 식욕은 그다지 없나 싶다. 하긴, 이제 태어난 지 만 3년이 조금 지났으니 당연한가 싶기도 하고.


그중 몇 명은 '흰밥'만 고집한다. 이 친구들은 촉감이 예민한지, 맛에 예민한지 모르겠다. 밥이 뭐에 섞이는 걸 싫어하는 순정파인데, 밥과 섞일 수 있는 건 김 정도이다. 볶음밥, 카레라이스, 짜장밥, 스파게티 등 내가 소위 말하는 '유치원 특식'이 나오면, 이 친구들은 비상용 김과 흰쌀밥을 함께 먹는다. 양반김과 흰쌀밥의 조화를 사랑하는 우리 아이들은 전생에 양반이었나 보다.


2. 비닐봉지 한 번씩 열어놓기

독립성을 강조하는 유치원. 아이 스스로 생활할 수 있기 위해선 알맞은 환경이 중요하다. 예를 들면, 등원하고 나서 필수로 해야 하는 가방정리는 1) 가방을 놓아둘 곳 2) 물통과 숟가락통이 들어갈 곳 그리고 3) 가방정리를 하고 난 다음 루틴이 정해져 있어야 아이들 스스로 가방정리를 편안하게 할 수 있다. 이렇게 독립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장치들이 유치원 여기저기 놓여있다.

‘한 번 열어놓은 ‘ 비닐봉지 100장

발표회 날, 자신의 신발을 넣는 비닐봉지에 아이의 이름을 크게 적어놓았다. 하필이면, 새벽까지 눈이 와서 바닥이 질척거린다. 혹여나 하는 마음에 젖은 신발을 한번 더 넣을 수 있게 일회용 봉지를 준비하고, 비닐봉지를 한 번씩 열어 놓았다. 처음 쓰는 비닐봉지는 겨울철에 열기 힘들기 때문에, 유치원생이 비닐봉지를 스스로 열 수 있게 한 번은 열어 놓은 것이다. 100개의 비닐봉지를 열어놓으면서 느꼈다. 정말 세심하다, 세심해.


3. 손은 '이렇게' 모아서 올라가기

유치원 김장날. 아이들이 아끼는 엘사 팔토시와 앞치마에 고춧가루의 매운맛을 보여주는 날. 김치 양념이 묻을 수도 있다는 안내문이 두 번 세 번 나갔지만, 꼭 밝은 색 옷을 입고 오는 아이들이 있다. 혹여나 싶은 마음에 유치원 여벌옷으로 갈아입혔다. 어린이용 일회용 장갑을 끼우고 팔을 이만큼씩 걷었는데도, 몸에 김치 양념이 묻었다. 특히 남자친구들은 왜 머리도 짧으면서 왜 머리에 양념이 묻어있나.

손모양을 ‘요렇게-’ 해서 교실로 걸어가기

장갑을 벗고 물티슈로 대충 쓱쓱 닦아주고, 교실 화장실에서 한번 더 비누칠을 해줄 예정이다. 이 친구들에게 손을 "요렇게" 해서 올라가라고 두 번, 세 번 이야기를 한다. 혹여나 김치 양념이 얼굴이나 다른 곳에 묻지 않게.


이렇게 하는데도, 행사하면 안 좋은 후기가 한두 개는 나오는게, 역시 100명의 부모님을 100% 만족시키기란 불가능하다. 유치원 담임 선생님들의 눈물 없이 못 보는 배려심 에피소드는 여기서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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